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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Sep 22. 2022

9월 22일 그림일기

염라대왕 앞 10분 스피치

"3788897가나다677호, 무슨 일로 갑자기 이곳 심판장에 오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10분 스피치로 발표해 보세요!"


앞에 있는 염라대왕처럼 생긴 분이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네!"


어라! 염라대왕님이 존대를 하네. 내심 걱정했는 데 아직까지는 사후세계가 아니니, 심판장의 부드러운 분위기에 기대어 해야 할 말은 꼭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 네. 저는 아침 동틀 무렵의 새벽노을이 너무 아름답다는 지인의 이야기에 취해 새벽노을 감상을 위한 아침 산책 중이었습니다."


나름 멋지게 말문을 틔었다고 생각한 나는 빠르게 스피치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온전히 나의 것으로 채우는 하루가 될 것 같아라고 느끼며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있더니 정신을 잃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 이곳 심판장에 서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10분 스피치치고는 너무 짧은 나의 답변에 염라대왕은

"너무 짧게 말해서 내가 심판을 내릴 수 없군요. 조금 더 인생을 어떻게 살다 올라왔는지 자세하게 이야기해보세요!"

며, 짜증은 아닌 의아함을 표출하며 조금 더 근엄하게 이야기했다.


"아. 맞네요. 너무 짧게 이야기했네요. 그런데 제 삶에서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극명하게 구분하는 삶을 최근에 살아가는 데, 너무 감격한 나머지 제 인생에서 그 감동 부분만을 딱 떼어서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에 제 인생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그 경계지점을 알아차렸느냐, 알아차리지 못하였느냐가 중요한 설명의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그 경계선의 삶은요. 일단 두렵습니다."

"내가 내 것으로 하루를 꽉 채워나가면, 우선 가족은 누가 책임지지? 혹은 노후는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지? 지금 직장에서의 위치는 어떻게 하려고 해?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요동을 칩니다."


"이런 경우, 드라마에서는 흔히들 정신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주인공에게 이야기하죠."

"그런데 주변의 이런 우려의 목소리와 내면의 목소리는 반대로 이 고비를 조금만 넘으면 될 정도로 거의 다 목표지점에 도달했다는 긍정적 신호이기도 하거든요."

"이 지점에 도달하면요, 보통은 스승님을 찾게 됩니다. 스승님에게 지금까지 내가 잘해왔나, 잘했으면 정확하게 어느 지점을 잘해왔고,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모자란 지를 직접 물어보고, 직접적인 피드백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직접적인 피드백을 통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받고, 그 부분에 의도적 노력(deliberate effort)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동안 취미라고 여기던 것들에서 전문가의 길로 접어들어가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하여 어느 정도까지 투자할 수 있는지, 혹은 두려움을 견뎌낼 힘이 있는지 등의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고난과 함께요. 이 고난과 두려움이 지속하는 시련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무엇보다도 내가 세상에 내 것을 가지고 불가능한 일을 행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염라대왕님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인생 10분 스피치였습니다."

"과거에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이런 경계선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여 전문가로서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인간으로 더 살아가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서 심판받아서 평결이 어떻게 나던지 상관은 없습니다만, 이 경계선에서 새로운 업그레이드된 인생을 경험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저승으로 가게 된다면 개인적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세상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크나큰 손해가 아닐지 우려스럽습니다."


이렇게 10분 인생 스피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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