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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Mar 22. 2023

결정장애

23년 3월 22일 그림일기

결정해야 할 일이 생겼다.

전시가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처음 기획한 캐릭터 아이디어는 페인팅에 진척이 없다. 이번 주까지 전시도록에 올릴 작품이미지를 제출하라는 통보가 왔고, 주변 지인에게도 전시 시작을 물어보는 카톡문자가 왔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지고 밤에도 잠이 안 온다.


모든 작가가 그렇겠지만. 나 또한 전시를 바로 앞둔 시점에서 도망갈 구멍을 찾는다. 아예 전시를 포기하거나, 처음 기획했던 작품이 아닌 다른 대체 작품으로 전시장을 꾸미는 꿈까지 꾼다.


아~ 내가 왜 참여한다고 했을까!


전시를 한다고 혹은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인생에 큰 변화는 없을 텐데, 왜 나는 무리해서 준비도 안된 작업을 세상에 공개하려고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뒤따르는 후회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제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모든 이유를 뒤로 하고, 나 자신에게 내가 드로잉을 좋아하고 자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어본다.


내가 드로잉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에게 결정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에 길게 선을 뽑아내고, 내가 내린 결정의 완벽함을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자기 결정력에 대한 믿음이 강화되는 순간을 즐긴다.


그런데 페인팅은 다르다.


선을 한 번에 긋는 것이 아니다. 물감을 붓에 개어서 한 땀 한 땀 면을 채워나가야 하고, 따라서 순간의 결정력보다는 인내심과 고도의 전략적 집중력을 요구하는 전혀 다른 능력을 요구하는 분야이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이렇게 불안한 이유가 선명해진다. 붓과 아크릴 물감을 다루는 것은 콘테를 다루는 것만큼 익숙하지 않다. 순간 결정력이 아직까지 빛을 발하지도 않는다. 붓질을 하고 나면 한참이 지나서야 순간 결정에 대한 판단을 할 수가 있다. 내가 결정한 것에 대해 믿음이 쌓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연필과 콘테는 4년 동안 사용했지만, 붓과 물감은 이제 몇 달 사용했을 뿐이다. 생소함이다. 내가 초기에 콘테를 사용할 때도 비슷한 두려움과 낭패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낭패감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었던 것도 기억한다.


붓과 물감은 더 실험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순간 결정력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붓과 아크릴 물감과 캔버스 천과 젯소의 종류를 다 실험하고 조합을 찾아내야 한다.


이제 결정해야 한다.


낭패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낯선 세계로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내가 즐기고 편안하고 안전함을 느끼는 작품을 가지고 익숙한 세계로 들어갈 것인지.


여러 분이 비슷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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