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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Jul 15. 2023

언젠가는 쓴다

23년 7월 15일 그림일기

마커는 잉크가 내장되어 있고, 펠트나 나일론 등의 거친 천 재질의 심을 가진 펜으로, 한국에서는 네임펜이나 매직으로 불린다. (나무 위키 참조)

                                                                                                                                                                                                                                                                                            미술 재료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교수님이 마커를 꺼내어 멋진 시범 그림을 보여주실 때면, 마커란 놈이 내 그림도 바로 멋지게 만들어 줄 것 같은 상상에 빠지곤 했습니다. 교수님이 수채화 물감을 사용하시는 모습에 반해 수채화 물감을 샀고, 독일제 로트링 펜을 사용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로트링 펜을 구매했습니다.


그리고는 미술 도구를 자주 많이 사용해야 그림이 멋지게 변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내 그림이 갑작스레 멋지게 변하지 않는 모습에 급 실망해서는 막상 사놓은 미술 재료를 거의사용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미술 재료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어, 미술 재료상에서 가끔 예쁜 색상의 마커를 보면 꼭 한 두 개씩 사 왔죠. 마찬가지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침 크로키 시간에 노란색 마커를 사용하여 그림을 마무리하고, 인스타그램에 올려보았더니, 50명이 넘는 "좋아요"가 달렸습니다. 보통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습니다. 그날은 그냥 노란색의 마커로 쓱쓱 신체의 밝은 부분을 칠해준 것뿐인데도 말이에요. 마커는 원래 전자 제품처럼 매끄러운 표면의 색상을 표현하는 데 쓰는 재료라고 배웠는데, 신체 피부를 표현하는 데 이런 식으로 써도 되나? 나만 재료의 특성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사용하는 거면 어쩌지? 하는 우려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 뭐 어때! 어차피 안 쓰면 말라 없어질 텐데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내 맘대로 써보지 뭐!라는 오기도 함께 발동했습니다. 그리고 마커 보관함을 둘러봤죠. 마커 보관함에는 내가 그동안에 하나둘씩 사모았던 마커가 꽤 있더라고요. 그리고 꺼내어 칠을 시작했습니다. 마커는 수채화 물감과 달라서, 혼색이 쉽지 않습니다. 대신 번거롭지 않게 한 가지 색상으로 면을 고르게 채우기는 쉬운 재료입니다. 뚜껑 열고 칠하고 뚜껑 닫고 하면 되는 식이죠. 아침 바쁜 시간에 그림에 생동감과 개성을 부여하는 데는 딱 맞는 재료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보관함에 쌓여 있던 재료들을 꺼내어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커를 꺼내어 쓰고, 색연필도 사용하기 시작했죠. 언젠가는 쓸 일이 있겠지 싶어 4~5년 전에 사놓은 마커와 색연필을 지금에야 사용하네요. 4~5년 전에 내가 이런 그림에 이렇게 마커를 사용할 줄은 미리 알고 있었을까요?


아니요. 전혀 몰랐을 겁니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마커를 구매하면서 미래의 나에게 그림에 대한 욕망을 심어 놓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지금 재미있게 마커를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지금 내가 구매하는 모든 것은 미래에 꽃 피울 욕망을 심어놓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사용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사용하게 될 테니까요. 단지 그 미래를 조금은 앞당겨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구에 익숙해지면서요.                                                                         


여러분이 오늘 구매한 물품 중에 미래의 욕망에 씨앗을 뿌려놓은 물품은 뭐가 있었을까요? 미래의 어느 시점에 꼭 쓸 것을 상상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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