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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ys Oct 05. 2021

미국인의 마약류 진통제 남용은 심각한 사회문제

어깨 수술과 진통제


제가 두 달 전쯤 어깨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팔과 어깨를 연결하는 인대를 고치는 수술이라 몸을 움직일 때마다 팔과 어깨가 따로 노는 관계로, 수술 후 첫 주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제 수술을 담당한 의사는 수술 후 통증에 대한 경고를 미리 했었습니다. 그리고 수술 당일 퇴원시키면서 환각 진통제인 노르코를 처방해 주었죠.


환각 진통제는 다른 말로 마약류 진통제라고 합니다.  '마약'이 주는 어감 때문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엄연히 의료용으로 허가를 받은 약입니다. 문제는 제가 마취제 및 환각제 성분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관계로 심한 구토와 두통에 시달려 별 도움은 받지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불법 마약류의 제조와 유통에 대한 단속뿐만 아니라, 의료용 마약류 진통제를 규제, 관리하는 연방 기관을 DEA (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라고 합니다.  미드 <브레이킹 배드>에서 주인공 월터 화이트의 매제로 나오는 행크가 바로 DEA 에이전트입니다.  마약류 진통제를 처방하기 위해서 DEA 라이센스가 있어야 하고, 그 라이센스는 의료 종사자 중 의사(치과의사도 포함)에게만 발행된다고 보면 됩니다.


정리를 하자면, 의료용 마약류 진통제(혹은 환각 진통제)는 제약회사가 허가를 받은 후 제조하고, 의사가 환자에게 처방해주는 약(보통 알약 형태)입니다. 반면, 길거리에서 불법 거래되는 마약류(헤로인, 메스앰페더민, 펜티놀, 코카인 등)는 무허가 생산, 판매됩니다. 불법 마약은 알약, 가루, 덩어리 등 다양한 형태로 판매되고, 중독자들은 이것을 액체 상태로 바꾸어 빠른 흡수를 위해 혈관에 주사를 놓습니다. 따라서, 이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한편 주변 사람들 중 수술 경력이 있는 분들은 제가 수술 후 노르코를 복용할 수 없었다고 하니까, 다들 깜짝 놀라더군요. 수술 당일 바로 퇴원하는 외래 수술이 많은 관계로 미국인들에게 강력한 환각 진통제가 수술 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처방이란 걸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수술 후 일반 진통제인 모트린과 타이레놀을 4시간 간격으로 번갈아 복용하며 버티는 게 쉽진 않았습니다.   


한국과 미국, 통증에 대한 접근의 차이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허리가 아프시다', '어깨가 결리신다' 이런 말씀을 하시면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에 다닐 무렵부터 엄마도 '손목이 시리시다', '다리가 쑤신다' 이런 말씀을 하셔서 가끔 안마를 해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신체의 노화라는 자연스러운 과정의 부산물이었음을 깨닫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아랫목에 허리를 지지거나,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몸을 담그거나, 손자들이 안마를 해드리면 시원해하시긴 했어도 우리 할머니도, 엄마도 통증을 줄이기 위해 진통제를 드시는 건 못 봤던 거 같습니다.


미국인 역시 나이가 들고, 아프기도 하는데, 통증에 대한 접근이 매우 다릅니다. 일단 환자가 통증이 있다고 하면, 의사는 스케일 1부터 10 사이 어디쯤 위치하냐고 물어봅니다. 10은 출산의 고통쯤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통증의 정도에 따라 적절한 진통제를 처방해주는 건 미국에선 치료의 과정입니다. 가장 흔한 처방은 조금 이따 설명하게 될 비스테로이드계 소염 진통제(NSAID)입니다.


하지만 만일 환자가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입원했는데 고통이 극심한 경우, 의사는 정맥(IV)으로 마약류 진통제를 주기도 합니다. 허리 디스크 때문에 환자가 너무 아프다고 호소를 해도 복용하는 환각 진통제를 처방해 주기도 하고요. 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은 전 세계 마약류 진통제의 80 퍼센트 가량을 소비한다고 합니다.   


진통제가 만병통치약


미국에서 비스테로이드계 소염 진통제인 아이브프로펜(브랜드명 모트린 혹은 애드빌)의 소비량은 매우 높습니다. NSAID가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과 다른 점은 소염 기능입니다. 타이레놀은 소염 기능 없는 진통제이고, 모트린은 소염 기능 있는 진통제인 거죠. 그래서 타이레놀은 두통, 복통 등 그냥 통증만 죽이는 약이고, 모트린은 다리 삐어서 생긴 부종이나 약한 관절염 증상을 완화시키는 진통제입니다.


미국 가정 치고, 모트린이나 애드빌 한 병 구비 안된 집이 없습니다. 제가 아픈 어깨 때문에 처음 의사를 만나러 갔을 때도 물리치료(physical therapy)와 함께 권했던 것이 아이브프로펜입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염증을 완화시키는 소염 기능 때문입니다.


제 주변을 보면 미국인들 진통제인 애드빌이나 타이레놀을  자주 복용합니다. 저도 몸살기가 있을 땐 모트린 복용하고 쉽니다. 어깨나 무릎 아플 때도 사람들은 애드빌을 복용합니다. 두통엔 역시 타이레놀이고요. 미국에선 감기 걸려서 의사 만나러 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아이브프로펜 복용하고 집에서 쉬면서 회복합니다. 그래서 코스코에서 파는 대용량 용기에 든 타이레놀이나 애드빌을 사서 집에 쟁여 둡니다.


마약류 진통제 남용이 불러온 사회 문제


이처럼 미국에서 진통제의 사용은 상용화되었는데, 강력한 환각 진통제 처방을 받고 복용하던 환자들이 다수 환각제 성분에 중독되어 '중독자'가 되면서 사회 문제로 대두됩니다. 향정신성 의약품이긴 하지만,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구매하는 진통제이기 때문에 불법 약물이 아닙니다.


의사는 환자의 통증 정도에 따라 5등급부터 2등급까지 마약류 진통제를 적절하게 처방해 줍니다. 5등급이 가장 약하고, 등급이 올라갈수록 점차 강도가 높아져 2등급은 가장 강력한 환각 진통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신경치료를 요하는 심각한 치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수술받은 환자가 처방받는 환각 진통제보다 훨씬 약한 종류를 처방받습니다.


반면, 불법 환각제(마약류)는 대부분 1등급으로 분류되며, 중독성이나 환각성분이 의료용 마약류 진통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문제는 마약류 진통제를 복용하던 환자들 중 병은 호전되었지만 환각제 성분에 중독된 사람들이 의사 처방전을 구할 길이 없어지자, 불법으로 거래되는 마약류를 사서 복용하기 시작한 것이죠. 특히 펜티놀은 가격도 저렴하고, 환각 효과는 매우 높아 중독자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불법 환각제 중 하나입니다.  


현재 미국 중서부(Midwest)는 불법 환각제 사용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극심한 지역입니다. 특히 미국 자동차 산업이 전성기였을 때 포드, GM, 그리고 크라이슬러 공장이 있던 지역들은 일본차에게 시장 점유율을 내준 후, 공장은 문을 닫았고, 지역 경제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가 내걸었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대선 캠페인 슬로건이 이 지역 백인들에게 먹혔던 겁니다. 이들이 과거 풍요롭던 시절을 회상하며,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을 트럼프는 표로 연결시켰던 거죠.  


한편 이런 불법 마약류를 청소년이나 젊은 층만이 아닌, 자녀를 가진 부부도 사용하는 등 사용층이 매우 넓다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몇 년 전 부모가 펜티놀을 과다 복용하고 자동차 앞좌석에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됐는데, 차 뒷좌석에 네 살배기 어린아이가 타고 있어서 미국 중서부 지역의 약물 중독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려줬었죠.


제조사에 대한 연방정부의 수사 및 소송


2등급 환각 진통제 중 그동안 많이 처방되던 옥시컨틴을 생산, 판매해서 천문학적 수익을 올렸던 퍼듀 팔마(Purdue Pharma)는 새클러 가족이 소유한 비상장 회사였습니다. 이 회사는 1990년대부터 의사들에게 옥시컨틴은 중독성이 없다고 선전하면서 매우 공격적인 마케팅을 해왔죠. 이는 의사들의 옥시컨틴 처방 남용으로 이어졌고, 옥시컨틴을 처방받고 복용하던 환자들이 다수 마약류 성분에 중독되면서 불법 환각제에까지 손을 뻗쳐 사회 문제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미 법무부는 FBI 및 DEA와 연계하여 이 제약회사에 대한 오래 수사 끝에 국민들의 마약류 진통제 남용에 따른 책임이 불법 마케팅 활동을 펼쳐온 퍼듀 팔마에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수년에 걸쳐 끌어온 재판은 마침내 2020년 10월, 제약회사가 형사상 유죄를 인정하고, 연방정부에 끼친 민사상 손해액을 지급하겠다고 합의함으로써 종결되었습니다.


퍼듀 팔마는 형사 책임에 따른 벌금 55억 달러 (한화 6조 3천억 원), 그리고 10년 가까이 연방정부 의료 프로그램을 통해 지급받은 금액에 대한 민사 손해액 28억 달러 (한화 3조 2천억 원)를 연방정부한테 변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법무부는 제약회사와의 합의로 인해 형사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법적 책임마저 면하게 되는 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법무부는 이 거액의 합의금을 중독자의 재활 및 환각제의 위험과 중독성을 알리는 캠페인에 쓰겠다고 하지만, 이미 약물에 중독되어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제약회사의 도산과 앞으로의 과제


총 합의금 83억 달러(한화 9 조 5천억 원)라는 금액의 지급은 퍼듀 팔마의 도산을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따라서 올해 9월 1일 뉴욕주 법원은 퍼듀 팔마의 도산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새클러 가족은 45억 달러(한화 5조 2천억 원)를  나누어서 9년 동안 연방 정부에 지불할 것과 도산 후 재정비된 회사의 경영에 참여할 수 없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앞으로 이 제약회사는  신탁 관리로 운영되는 공영기업으로 영업 이익금 전액이 약물 중독 치료 및 약물 중독을 예방하는 캠페인 등에 사용함으로써 사회로 환원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회사는 도산했지만, 소유주였던 새클러 가족은 그동안 충분히 많은 이익을 챙겨 재산을 해외로 반출시켰다고 합니다. 해외로 유출된 재산은 미국 정부의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환수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의료용 마약류 진통제를 생산, 판매해서 국민 건강을 위태롭게 한 회사는 퍼듀 팔마 하나뿐이 아닙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죤슨 앤 죤슨 역시 마약류 진통제로 야기된 사회 문제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연방정부에  260억 달러(한화 30조 원)를 낼 것을 합의하였습니다.


현재 미국 중서부 지역의 불법 환각제 사용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약물 중독은 한 개인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약물에 중독되면 십중팔구 실직하게 되고, 사회에서 도태됩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중독자라면, 가정은 풍비박산 납니다. 중독자 부모의 자녀는 주정부가 다른 가정에 위탁 양육을 맡겨버립니다.  


직업도 없고, 재산도 탕진한 중독자의 재활 과정을 도와야 하는 것도, 재활 후 다시 사회로 환원하기 위해 직업교육을 받고, 고정 수입이 생길 때까지 생활보조를 해줘야 하는 것도, 위탁 가정에 지불되는 양육비 모두 사회가 감당해야 할 공공비용이 됩니다. 중독자가 재활 후,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상, 다시 중독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약물중독의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은 무한정 계속 진행돼야 합니다.


제약 회사의 탐욕이 불러온 결과치고는 사회에 미친 악영향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 제약회사들이 내기로 약속한 어마어마한 금액의 합의금으로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약물 중독으로 불거진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엔 택도 없이 모자란다고 하나 봅니다.  


*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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