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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화 Oct 06. 2021

미국인은 일 년 중 며칠을 쉴까?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쉬는 날 집안일을 하면서 왔다 갔다 텔레비젼에 방송되는 뉴스나 영화를 시청하게 됩니다. 한 자리에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이 아니라, 틀어놓고 귀로 들으며 일하는 거라 시청한다고 하기도 좀 그렇네요. 그때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텔레비젼을 틀어놓고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He’s Just Not That Into You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가 시작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제 생각엔 초기 스칼렛 조핸슨 출연작 중 이 영화만큼 그녀의 매력을 잘 표출하는 영화가 없는 듯합니다. 여자인 제가 봐도 참 싱그럽고 예쁘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내용을 소개하자면,  브래들리 쿠퍼는 제니퍼 코넬리와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만난 스칼렛 조핸슨과 썸을 타게 됩니다. 매우 컨트롤링한 성격의 제니퍼 코넬리는 남편을 정신적으로 꽉 잡고 있는데, 반항기가 돈 브래들리 쿠퍼는 부인에게 딴 여자랑 잤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 버립니다. 제니퍼 코넬리는 겉으로는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그게 잘 안되죠… 그래도 다음날 출근은 해야 되니까 일하러 갔지만,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습니다.


친한 동료 여직원의 근심 어린 상담에도 화를 누를 길이 없자, “I am going to take a Personal Day!” 이러고는 가방을 들고일어나 그대로 퇴근해 버립니다. '퍼스널 데이'는 도대체 무엇이고, 상사한테 허락도 안 받고 저렇게 막 퇴근해도 되는 걸까요?


한국의 무급 휴일과 유급 휴일


이 글을 작성하면서 웹서핑을 하다가 한국의 휴일에 대해 흥미로운 기사를 접했습니다. 한국엔 15일의 법정 공휴일(설 연휴, 삼일절, 광복절, 추석 연휴 등)이 있습니다. 그동안 관공서를 제외하고 대부분 사기업의 경우, 무급 휴일로 처리되던 것이 2020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체는 유급 휴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2021년 올해는 30인 이상 사업체로 확대되었고요.


그동안 무급 휴일이었기 때문에 예를 들어 삼일절에 쉬게 되면, 그 달치 월급에서 하루 임금이 줄어들게 되는 거였답니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법정 공휴일을 연차로 대체해 줄어든 임금을 보충했다고 하네요. 그래야 집으로 가져가는 월급이 지난달과 똑같게 되는 거죠. 또한, 삼일절에 나와서 일해도 '무급' 휴일이기 때문에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무급 휴일은 말 그대로 급여를 받지 않고 쉬는 날입니다. 그런데 무급이기 때문에 출근해서 일해도 급여가 없었다니,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입니다. '무급'은 노동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붙은 수식어이고, 노동을 제공했다면 급여를 지급해야 합당합니다.


그나저나, 15일의 법정 공휴일을 포함한 한국 직장인의 유급 휴일은 미국인의 그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년 15일의 유급 휴가가 제공되고, 게다가 주휴 수당은 일주일 중 15시간 이상 근무하면 하루 8시간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52일(일 년은 52주)의 유급 휴일이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근로법에 의하면, 한국 노동자는 일 년 365일 가운데 82일의 유급 휴일이 있습니다.


15(법정 공휴일) + 15(유급 휴가) + 52(주휴 수당) = 82


미국의 휴일은 복잡하지 않다


제가 거주하는 캘리포니아주의 노동법은 일주일 중 어느 요일을 휴일로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시급제 노동자는 일주일 가운데 닷새 일하고, 이틀 쉽니다. 따라서 A라는 회사가 월, 화를 쉬고 나머지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해도 아무런 문제는 없습니다. 아니면 화, 목을 쉬고, 나머지 닷새를 일해도 되고요. 문제는 사람들이 주말에 쉬고 싶어 하기 때문에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출근해야 되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할 사람들이 많지 않겠죠. 또한 휴일이 무급인지, 유급인지, 지정하지도 않습니다. 시급제 노동자의 경우, 일 안 하는 날은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그것이 시급제 노동의 개념입니다.   


중요한 건 정상 근무인 주 5일 40시간이 넘어가게 되면서 붙는 오버타임에 대한 규정입니다. 캘리포니아주 노동법에 따르면, 만일 노동자가 하루 8시간 근무량을 초과하게 되면, 초과분은 시급의 1.5배를 받게 됩니다. 하루 12시간 이상 초과분에 한에서는 시급의 2배를 받도록 합니다. 또한 주 5일 근무하고, 여섯 번째 날에도 일하러 나오면 임금 전체가 시급의 1.5배가 되고, 일곱 번째 날에도 일하러 나오면 시급의 2배를 받습니다. 이는 시급제 노동자에 한하는 규정이고, 연봉제 노동자는 이 규정에서 제외됩니다. 왜냐하면 연봉제 노동자는 일한 시간에 관계없이 약속한 급여를 받기 때문이죠.


정리하자면 노동 시간과 오버타임에 대한 법규정은 시급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일주일 중 이틀은 임금을 받지 않고 쉬는 날입니다. 또한 미국의 노동법은 주 관할이기 때문에 주마다 다릅니다. 한국의 근로기준법과 같은 법이 미국엔 50개가 있다는 뜻입니다.  


Paid Time Off (PTO)


캘리포니아주에서 한국의 유급 휴일에 해당하는 유급휴가, 연차나 법정 공휴일 등을 통틀어 'Paid Time Off (PTO)'라고 합니다. 번역하면, '돈을 받고 일하러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PTO 카테고리 안에 휴가, 공휴일 그리고 '퍼스널 데이'가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직장인의 일 년 PTO는 미니멈 20일 정도 됩니다. 휴가 10일, 연방 공휴일 7~11일, 퍼스널 데이 2~5일, 회사마다 이 수치를 믹스 매치해서 구성합니다. 공휴일과 퍼스널 데이는 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지만, 휴가일은 근무 년수가 오래될수록 늘어납니다. 제 직장의 경우, 근무 5년 차부터 휴가가 15일로 늘어나게 되고, 최고 25일까지 올라갑니다.


한국에 없는 개념인 퍼스널 데이는 개인 사정으로 갑자기 일하러 나오기 힘든 상황이 발생할 때, 노동자가 사용하는 날입니다. 영화 속 제니퍼 코넬리처럼 남편의 바람 때문에 속이 터져서이건, 갑자기 차가 고장 나서 차를 고쳐야 하기 때문이건, 결근을 하지만 그날 임금을 받습니다. 보통 휴가 날짜는 미리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과 달리, 퍼스널 데이는 당일 아침 전화해서 결근한다고 말해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좋은 예는 아니지만, 몇 년 전 제 직장 동료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경찰 조사 및 뒷수습하는데 퍼스널 데이를 썼습니다. 회사마다 일률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저 같은 경우는 일 년에 이틀이고, 제 아들이 다니는 직장은 5일을 줍니다.    


연방 공휴일과 캘리포니아주 공휴일


한국의 법정 공휴일에 해당하는 연방 공휴일과 캘리포니아주 공휴일은 각각 11일입니다. 그런데 아래 표를 보면 아시겠지만, 대부분 다 겹칩니다. 미국 공휴일의 특징은 한국의 공휴일처럼 날짜가 지정되지 않고, 몇 월 몇 째 주 월요일 아니면 금요일을 공휴일로 정해 주말과 이어져 사흘을 쉬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주말을 Long Weekend라고 합니다. 물론 미국 독립 기념일이나, 크리스마스처럼 날짜가 정해진 날은 그날 놀긴 하는데, 만일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걸리게 되면 그다음 주 월요일까지 놀아 역시 롱 위크엔드가 됩니다. 한국에선 이걸 대체 공휴일이라고 그러는 거 같더군요. 



캘리포니아 정부는 11일의 연방 공휴일 가운데 Juneteenth랑, Columbus Day를 빼고, Cesar Chavez Day랑,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블랙 후라이데이를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공공기관과 학교는 대부분 연방 및 주 공휴일에 쉽니다. 사기업의 경우, 11일의 연방 공휴일 가운데 통상 7,8일 정도 쉰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이건 기업의 재량이기 때문에 연방 공휴일 11일 플러스 캘리포니아주 공휴일 이틀까지 더해서 13일을 다 쉬면서 임금을 지급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반대로 더 적게 쉬는 사업체도 있을 수 있고요.    



미국의 공휴일은 한국의 법정 공휴일과 달리 법으로 정한 유급 휴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연방 및 주 공휴일에 회사가 문을 닫는다면 원칙적으로 직원은 임금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고용주가 이런 공휴일에 쉬어도 직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노동자의 일 년 수입을 보장함과 동시에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고용주는 법이 강제해서가 아니라 자발적 결정에 의해 사업체 문을 닫고, 직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공휴일을 정합니다. 공휴일 가운데 새해 첫날, 프레지던스 데이(워싱턴 생일), 메모리얼 데이(현충일), 독립기념일, 레이버 데이(노동절), 추수감사절, 추수감사절 다음날(블랙 후라이데이),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많은 회사가 공휴일로 정한 날입니다. 아무리 법적 강제성이 없다고 하지만, 한국으로 치면 명절에 해당하는 날에 출근해서 일하라고 하는 회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매업체조차 부활절,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엔 문을 닫으니까요. 가주 코스코(Costco)의 경우, 대부분의 연방 공휴일에 매장 문을 열지 않습니다.  


Employee Handbook 그리고 고용 문화


한국의 근로기준법과 달리,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사기업이 노동자에게 유급 휴가와 공휴일에 쉬면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법은 없습니다. 다만 만일 고용주가 유급휴가인 PTO를 제공하고 있다면, 노동자가 해당 연도에 쓰고 남은 PTO를 익년 이월 가능하도록 법으로 만들었습니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내 어떤 주보다 노동자에게 법이 유리하게 돼 있습니다. 노동자가 어떤 이유로 PTO를 다 쓰지 못했다면 다음 해에 받는 PTO 위에 작년에 남은 일수를 더할 수 있습니다. 다만 축적 한도가 있어서 일정 일수가 쌓이게 되면 더 이상 늘지 않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으면 손해가 됩니다.   


이렇게 축적된 유급휴가를 결혼식 후, 두 달 동안 신혼여행을 다녀오는데 쓴 제 상사도 있었고, 재작년 제 직장 동료도 3주 동안 스위스에 있는 친척을 방문했습니다. 저도 2주 휴가 내서 한국에 자주 다녀오곤 합니다. 올해 7월 말 은퇴한 제 직장 동료는 워낙 PTO가 많이 남아 있었던 관계로 이걸 정산했더니, 한 달치 월급에 가까운 금액이었답니다.


미국은 법에 의해 일괄적으로 직원들에게 유급 휴가를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마다 Employee Handbook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사가 직원에게 제공하는 각종 혜택(Benefits), 유급휴가, 휴식 시간뿐만 아니라, 회사 내 규칙 등에 대한 내부 법규입니다. 노동자는 Employee Handbook에 적힌 규정에 따라 일 년에 며칠 유급휴가를 받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Employee Handbook의 내용은 일률적이지 않고, 회사마다 다릅니다.   


미국의 모든 직장이 직원에게 유급휴가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노동 환경이 사업체가 위치한 주에 따라 편차가 심합니다. 예를 들어, 앨라배마, 미시시피, 테네시 주는 최저임금에 대한 규정조차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법에 규정이 없는 유급휴가를 직원에게 주는 이유는 그것이 이곳의 고용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 사업체를 가지고 높은 영업 이익을 내는 글로벌 기업이 법이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직원에게 유급 휴가 하루 내어주지 않는다면 매우 인색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또한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유급휴가를 제공하는 이유는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좋은 노동 조건을 제시해야 능력 있는 직원들이 오랫동안 그 회사에 근무합니다. 그래서 좋은 직장일수록 직원들이 돈 받고 쉬는 날이 더 많아집니다. 동일 업종 직업 가운데, 월급이 비슷하다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베네핏이 더 좋은 직장을 선택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일 년에 유급휴가 20일씩 내줄 형편이 안 되는 사업체도 분명 존재합니다. 직원 수가 적어서 한 명 결근해도 운영이 어려운 소규모 비즈니스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입 장벽이 낮은 커리어 초반 직종의 경우, 고용주가 베네핏을 제공하면서까지 인력을 유치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사기업이 직원에게 주는 유급휴가 일수를 나라가 정해주기보다는 기업이 알아서 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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