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다르다. 빌렌도르트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비너스상 (우리가 보통 비너스 하면 떠올리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음...)은 당시 여성의 아름다움이 다산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위키피디아는 손에 쥐어질 정도의 이 작은 조각이 인류 역사 초창기의 다산 페티쉬를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고 기술하고 있다.
어쨌거나 당시에는 아름다움의 대명사였고, 욕망의 대상이기도 했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현대의 기준으로 봤을 땐 과거의 명성이 무색할 따름이다. 이는 마치 여성의 목에 금속 링을 하나, 둘씩 추가하면서 기형적으로 목을 늘리는 게 미얀마 카얀 부족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의 표상이고, 중국 한족의 경우 여성의 발에 전족을 해 아기처럼 작은 발을 유지하며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미인의 조건이기도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난 한국의 연예 프로나 드라마를 즐겨보는 사람이 아니어서 요즘 연예인들 가운데 낯선 분들이 많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추노>, <선덕여왕>까지는 팔로우업이 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업데이트가 더디게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간혹 한국에 나가 있다 보면 연예인들 사진 볼 기회가 많아지는데, 이분들 하나같이 미끈하고 고운 게 인형처럼 찍어냈단 느낌이 든다. 성형 기술의 발달은 얼굴의 불완전한 부분을 고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마저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내가 한국을 떠났던 2000년대 중반 무렵, 성형수술은 보통 쌍꺼풀 수술을 의미했고, 연예인들 따라 일반인들도 코수술을 하기 시작했다. 일반인들 가운데 몇몇 하드코어 분들은 가슴 수술을 하시기도 했는데, 매우 드문 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드라마에 나온 연예인들 회상해보면 물론 이쁘기도 했지만, 다들 개성 있는 마스크였다.
'아름다움=개성'이란 공식으로 밀어부치고 싶진 않지만, 사실 서구 사회(미국)에서는 그런 공식이 대충 통한다고 보면 된다. 독특함(uniqueness)이 아름다움을 결정하는데, 커다란 요소로 작용한다. 그래서 흑인인 루피타 뇽고가 랑콤 모델을 하고, 주근깨 투성이 동양 소녀가 알렉산더 맥퀸 모델을 할 수 있다.
물론 한국과 달리 미국은 다인종, 다민족 사회이므로 민족마다, 인종마다 다른 아름다움의 기준이 존재한다. 그리고 랑콤과 같은 다국적 기업은 백인뿐 아니라, 흑인과 아시아 시장을 대상으로도 마케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각각의 시장에서 통할 최상의 모델을 내세우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저 모델들이 하나같이 커다란 쌍꺼풀, 갸름하고 오똑한 코, 뾰죡한 턱, 낮은 광대뼈, 작고 갸름한 얼굴, 그리고 뽀얗고 잡티 없는 깨끗한 피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인공적인 노력 없이 남들보다 좀 더 나은 외모를 타고난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이 불공평하단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누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뻐 보는 사람들마다 이쁘다고 하고, 누구는 타고난 겸손한(?) 외모 덕분에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아름다움에 '커다란 쌍꺼풀, 갸름하고 오똑한 코, 뾰죡한 턱, 낮은 광대뼈, 작고 갸름한 얼굴 그리고 뽀얗고 잡티 없는 깨끗한 피부'라는 공식이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그런 사람을 보면 예쁘다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들 수 있다. 그렇다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다. 사람마다 외모든, 성격이든, 태도든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특함이 있다. 한 사람의 외모, 성격, 지성, 그리고 태도가 총체적으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이루고, 그 사람의 독특함(개성이라 할 수도 있겠다)이 그 정체성을 완성시킨다. 외모적 아름다움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이 정체성이고, 더 나아가 그 정체성을 지키는 본질(integrity)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