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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ys Oct 16. 2021

전직대통령의 목소리로 듣는 회고록 Part One

[북리뷰] <A Promised Land> by Barack Obama


20주를 기다려야 대출될 줄 알았는데, 누가 책을 일찍 반납했는지 생각보다 빨리 휴대폰에 대출 공지가 떴다. 책 한 권 대출 기한은 보통 이주인데, 일주일 내에 반납해야 하는 조건이다. 그 주 마침 휴가를 냈기에 오디오북으로 29시간 녹음 분량의 7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일주일 안에 끝내보겠단 요량으로 냉큼 대출했다. 원대한 심산과는 달리 책의 절반까지 읽고 대출기한이 다 돼 책을 반납해야 했지만, 육 주를 기다리면 다시 대출할 수 있어서 가뿐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오디오북으로 읽은 <A Promised Land>는 저자인 버락 오바마가 직접 읽어 주었기에 제삼자가 읽어줄 때와 달리 귀에 익숙한 목소리에서 오는 친밀감과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스토리텔링 하는 것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현장감마저 있었다. 한국어 번역본은 올해 7월 <약속의 땅>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걸로 안다.


이 책은 제44대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의 세 번째 회고록으로 자신의 정치적 커리어 가운데 백악관 입성과 그 생활을 중점적으로 기술한 책이다. 이전에 출판되었던 두 권의 회고록과 마찬가지로 뉴욕타임즈 넘버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2006년에 출판된 <The Audacity of Hope>를 읽어보고 싶단 생각을 했는데, <The Audacity of Hope>는 오바마의 유명한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 가운데 한 구절이기도 하다.   


알려진 대로 오바마는 1961년 케냐 출신의 미국 유학생이었던 아버지와 미국인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이다. 미국에선 이런 가정을 mixed race family라고 한다. 자신이 워낙 어릴 때 부모가 이혼했지만, 어머니의 재혼 상대 역시 인도네시아인으로 오바마는 mixed race family 안에서 성장하게 된다. 어머니의 두 번째 결혼 역시 실패로 끝난 후, 오바마는 여동생, 어머니와 함께 외조부모가 거주하고 있던 하와이로 이주한다. 오바마의 회고록에 따르면 자신의 어머니는 독립적이고(independent), 생각한 바를 솔직히 말하는(speaks her mind) 사람으로 서술하고 있다.


난 개인적으로 유명한 정치인이나 유명인사(celebrities)의 자서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왠지 자기 자랑으로 가득 차 있을 거 같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이유는 내가 모르는 것을 배우거나 경험하기 위해서다. 이는 꼭 지식적인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배울 게 있는 자랑이라면 개의치 않고 읽겠는데, 그게 아니라면 좀 시간낭비 같단 생각이 들뿐만 아니라, 지루해서 책을 끝낼 수가 없다.  


오바마의 회고록 <A Promised Land>는 자신의 정치적 승리를 자랑하기 위해 쓴 책도 아니고, 흑인으로선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성공한 정치인의 입지전적 이야기도 아니다. 게다가 소수인(minority)으로 주류 사회에 진입해 최고 사령관(Commander-in-chief) 자리에까지 오른 영웅주의를 기저에 깔고 있단 느낌도 들지 않는다.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이었고, 현재 46대 미국 대통령인 조 바이든이 근래에 했던 인터뷰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오바마의 '겸손한(modest)' 면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자녀를 둔 아버지가 바깥일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자녀 양육에 일조하기 위해 그리고 가사분담을 위해 일하는 아내와 의논하고, 때로는 아내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갈등하기도 하는 평범한 시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오바마의 정치 커리어가 시작된 후 임기가 끝날 때마다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데서 오는 재정적 압박 또한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 오바마 부부 두 사람의 막대한 로스쿨 학자금 융자 및 살고 있던 집 모기지 상환까지 합치면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2004년 버락 오바마가 연방 상원 의원 선거에 나가겠다고 했을 때 미쉘 오바마는 반대했다고 한다. 만일 선거에서 패배하게 되면 가정의 재정 상태가 더욱 악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회고록에 의하면 미스터 오바마가 미세스 오바마를 설득하기 위해 들고 나온 카드가 만일 승리하지 못하면 그의 마지막 선거가 될 것이고, 상원의원에 당선되면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쓰겠다는 계획이었다. 흑인이 상원의원에 당선되면 출판사가 관심을 갖고 책을 내자는 제의를 할 것이고, 그러면 책도 쓰기 전에 계약금을 받게 되어 재정적 상황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이 그 설명이었다. 그 책이 바로 <The Audacity of Hope>이다.


이 책이 다른 위인전류 자서전과 차별성을 보이는 다른 이유는 진정함(genuine)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치인의 이름만 걸고 남이 대필해준 그런 책과는 느낌이 다르다. 회고록 가운데 미쉘 오바마의 인용문은 진정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다. 그녀의 연설이나 토크쇼 대화를 들어본 사람은 미셀 오바마라면 진짜 저렇게 말했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2000년 친구의 초청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 대회 참가했을 당시 전당대회 장소였던 컨벤션 센터 안에는 통행증이 없어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깥에서 서성이다 쓸쓸히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돌아갔던 기억을 솔직한 어조로 나누고 있다. 다음엔 꼭 열렬히 환영받고 돌아오겠단 다짐 같은 건 없고, 당시 주변인으로서의 느꼈던 절망과 피로감 등이 글을 통해 배어나고 있었다.   


또한 이 회고록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어야 즐기며 할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 캠페인은 기초선거(Primary)로부터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 및 11월 대통령 선거일까지 약 1년 가까이 진행된다. 그리고 선거 활동은 지역 타운홀(Town Hall. 한국으로 치면 규모가 큰 사랑방 모임과 비슷하다) 미팅, 유권자 가정집 문 두드리며 일일이 방문하기 등 유권자와 개인적으로 대면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텔레비젼 뉴스에서 보여주는 몇 천명씩 모이는 대규모 집회는 전당대회에 가서야 가능하고, 지역 유세는 대부분 소규모로 진행된다.


따라서 대통령 후보는 선거운동을 위해 투어 버스에 몸을 싣고 몇 주씩 집을 떠나 있게 되고, 매우 빡빡한 스케쥴을 소화하며 끊임없이 유권자와 만나야 하기 때문에 잠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또한 하루에 적게는 한두 번, 많게는 서너 번 연설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자들의 질문에도 답을 해야 하고, 토론회 대비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준비과정 또한 만만치 않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대통령 후보로 나서서 캠페인을 할 수 있다는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절반까지 읽은 내용 가운데 가장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경호용 코드 네임이다. 백악관 경호실은 보안상의 이유로 대통령, 영부인 그리고 그 자녀를 코드 네임으로 부른다. 예를 들어, 빌 클린턴의 코드 네임은 이글(Eagle), 힐러리 클린턴은 에버그린(Evergreen), 그리고 첼시 클린턴은 에너지(Energy)였다. 그래서 대통령이 백악관을 나와 움직이면 무전기에 대고 "이글이 백악관을 나와 차에 올라타고 있다"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흑인 대통령의 코드 네임은 레니게이드(Renegade)였다. 레니게이드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 나라나 기관을 버리고 반기를 드는 사람이다. 어찌 보면 한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의 별칭으로 좀 께름칙할 수도 있다. 국민의 충성과 애국심을 북돋워야 할 사람이 '반도(叛徒)'라는 코드 네임으로 불렸다니...... 그런데, 이 책의 세 번째 챕터 제목도 '레니게이드'이고, 근래에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함께 스포티파이(Spotify)에서 런칭한 팟캐스트 역시 레니게이즈(Renegade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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