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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ys Oct 18. 2021

도널드 트럼프, 자아도취의 끝장판 Part One

[북리뷰] <Fear> & <Rage> by Bob Woodward


책 두 권을 읽고, 리뷰는 하나만 쓰기로 했다. 어차피 같은 작가가 쓴 책이고, 책의 소재도 같은 사람이고, 두 권의 책이 전편과 후편의 성격을 띠기도 하는 데다, 책 특성상 두 편의 리뷰를 쓸 만큼 특별한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지루함 없이 흥미진진하고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한 편의 리뷰만으로 족하다 싶다. 


전편 격인 <Fear: Trump in the White House>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당시인 2018년, 그리고 후편격인 <Rage>는 2020년 9월 대통령 선거 전에 출판되었다. 이 두 권의 바이오그래피는 역대 대통령들에 관한 저서를 수 차례 썼던 미국의 전설적인 저널리스트 밥 우드워드가 트럼프 주변 인물 수십 명뿐만 아니라, 두 번째 책은 트럼프 본인과의 직접 인터뷰까지 합해 몇백 시간분의 녹음테이프를 토대로 저술하였다.


첫 번째 책 <Fear>은 트럼프가 2015년 대선 참여를 선언한 이후부터 선거에 승리하여 백악관에 입성하는 과정 및 대통령으로서 초창기의 행적을 주변 인물의 생생한 증언을 기반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취임 전부터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통령이어서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일주일 만에 미국 내에서 백만 부가 팔렸다. 


공화당 당내 경선 초창기만 해도 많은 사람들과 언론은 리얼리티 쇼 스타에 불과했던 트럼프를 진지하게 대통령 후보로 여기지 않았다. 이런 트럼프를 대통령감으로 '알아본' 사람이 바로 스티브 배넌이다. 그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 캠페인의 핵심인물로 매우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미군 해군에서 7년 근무 후 제대하였고, 골드만 삭스에서 투자은행가(investment banker)로 2년 정도 일하다 그만둔 후에, 헐리우드 영화 프로듀서로 18편의 영화를 제작하였다. 또한 극우 내셔널리즘을 표방하는 브라이트바 뉴스(Breitbart News)를 창간한 사람 중 한 명이다. 


트럼프는 워싱턴 정치가들에게서 풍기는 엘리티즘의 아우라가 없는 대신, 평범한 사람 귀에 쏙 들어오는 말만 했다. 이것을 인지한 배넌은 일반인을 위해, 편법에 물든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파퓰리즘의 플랫폼 위에서 캠페인을 전개할 것을 트럼프에게 제안하였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걸 'popularist'라고 알아듣는다. 배넌이 populist라고 정정해주자, 트럼프는 다시 "알아, 알아. 난 popularist." 이런다. (영어에서 popular은 인기 있는 혹은 유명하다는 뜻이다. 거기다 ist를 붙인다고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트럼프가 파퓰리스트의 의미를 모른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속편 격인 <Rage>는 북한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대통령 탄핵,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트럼프 재임 중 초창기 팬데믹 정책 가운데 그나마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중국 여행 제한은 사실 트럼프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보건부 장관, 파우치 박사 및 다섯 명의 국가 안보 보좌관들의 조언을 따른 결과였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트럼프 탄핵의 시발점이 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와의 통화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럼프는 바이든 부자에 대한 검찰 수사를 부탁했다. 수사에 착수할 때까지 약 4억 달러($391 million)에 달하는 원조를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가성 청탁이었다. 이 사실은 익명의 휘슬블로어에 의해 언론에 흘러나왔고, 백악관은 곧바로 통화 녹취록을 공개해버렸다. 우드워드에 의하면 그냥 '썰'로만 끝날 수도 있었던 사안이 녹취록 공개로 인해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를 제공하는 셈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소위 바이든 부자의 부정부패를 밝히기 위해 청탁했다는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녹취록을 공개했다고 인터뷰에서 자랑스럽게 밝혔다. 외국 정부 수장에게 자신의 정적에 대한 수사를 부탁하는 것이 국가 원수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고, 의회가 결의한 원조를 사사로운 목적으로 대통령이 사용한다면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선다는 걸 트럼프의 안중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다음 대선에서 맞붙게 될 바이든에게 오점이 있다는 여론을 조성해 선거에서 이기는 것뿐이었다.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존재가 아니라, 헌법이 규정한 권력만을 행사할 수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행동이 탄핵을 받게 될 잘못이라는 사실은 염두에도 없이 자가당착에 빠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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