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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꼭그래 Apr 21. 2019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팀 버튼의 상상 미술관

팀 버튼의 영화


팀 버튼은 미술적인 영상을 보여주는 감독이다. 팀 버튼의 영화는 미술 감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고, 듣고, 냄새를 맡거나 맛을 느끼는 것들로 이루어진 우리 앎의 실체는 감각기관이 얻은 정보를 우리 뇌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앎의 형태로 전환한 것이라는 것을 통찰하게 해 준다. 시각적 경험과 지적 사유의 결과가 왜 사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는지를 알게 해 준다. 2019년 4월, 현재까지 그가 창조해낸 영화 세계와 캐릭터는 시각 기관을 통해서 앎의 형태들로 고정된 것들을 미술적으로 분해하고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조합한다. 앎의 덩어리들을 분해하고 새롭게 조합해 창조해내는 것이 상상력이라 한다면, 그의 상상력은 영화적 공간과 서사에 기묘하고 괴상하게 성공적으로 들어맞는다. 그림이 우리를 매혹하는 방식과 다르기는 하지만 그의 영화가 갖는 매력이다.


다른 대상에 편입적 의미인 "들어맞다"는 표현보다는 사회적 의미인 "어울린다"라는 말이 그의 영화 세계를 설명하는데 더 적합한 표현일 듯싶다. 사회성과 인간성을 독려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보는 영화라 하기도 하지만 사회성은 어른들에게 더 필요하다. 사회성이 뭔지 잘 모르는 아이들은, 서로 잘 어울린다. 어른들이야말로 그들이 아는 방식으로 가르고 찢어내며, 따로 논다. 또 그의 영화에서 잔혹한 장면이나 가혹한 폭력에 의한 소멸이 보이지 않는 인간성 함양을 위한 동화에서 이야기를 가져왔다고 해서 어른들이 보는 영화가 아니라 하지만 어떤 영화들보다 캐릭터들의 신체를 분해하고 변형하며 서로 다른 부분들로 결합한다. 그의 범죄 행위가 비난받거나 처벌받지 않는 이유는, 다른 폭력영화와 마찬가지로 영화라는 가상 세계에 한정되어 있으며 살인자들의 반사회적인 폭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미술의 회화적 기법으로 사회성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신 행위이기 때문이다. 팀 버튼의 정신 활동으로 창조된 세계는 온전히 그의 것만은 아니다. 시대를 앞서간 미술가들이 그에게 모범이 되어 줬다.


미술가들의 고뇌라는 정신 활동으로 창작된 작품의 공간과 등장인물들을 참고해 팀 버튼은 자신의 상상 캔버스에서 새로운 공간과 캐릭터들로 재창조해낸다. 미술 작품 속 의미를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엾게도 완전히 무시당하고 팀 버튼만의 형태와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제 팀 버튼의 영화를 통해서, 이 글을 쓰는 동안에만 열리는 미술관일지도 모르는, 팀 버튼의 상상력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되는 그림들이 전시된 상상 미술관으로 가보려 한다. 그의 영화 전체에 관한 관람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이 글은 이번 4월에 열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관에서 몇 작품만을 감상하게 될 것이다. 


 요즘에는 이런 긴 글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서 아마 여기쯤 읽은 분들은 스크롤을 내려 보거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그럼에도 긴 글을 쓰는 이유는, 대가들의 긴 호흡과 넓은 시선으로 창작된 미술작품 감상에서 얻을 수 있는 내면으로의 도달과 지평의 확장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팀 버튼의 미술관에서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상상력의 한계를 넓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미술관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미술관 입구에는 커다란 시계가 보인다. 시간이라는 것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어가던 루이즈 캐럴의 시대를 연상시키는 이 시계는 상상의 세계에서만 작동된다. 멈춰있던 상상 세계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951년, 월트 디즈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작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 루이즈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아니다. 지금 봐도 상당히 잘 만들어진 월트 디즈니의 1951년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원작으로 삼았고 루이즈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재해석의 참고로 했다. 그렇기 때문에 루이즈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작을 참고하거나 비교할 필요 없다. 팀 버튼은 1951년에 제작된 월트 디즈니의 작품이 육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전 세계인들에게 루이즈 캐럴의 원작보다 시각적 앎의 형태로 고정된 것들을 분해하고 재창조해내려 했을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그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는데,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로 진입하는 방식에 의해서다. 디즈니 원작에서는 자신의 눈물바다라는 유아적 감성으로 이상한 세계로 들어가게 되지만, 팀 버튼의 영화에서는 회화의 주제로 진입한다. 이제 첫 작품을 감상할 차례다.


헤라클레스, 선택의 기로


안젤리카 카우프만(1741 - 1807), 자화상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안젤리카 카우프만의 자화상은 자부심을 한껏 고양시키려는 목적이었다. 문학가이자 철학가였던 괴테, 예술의 정점에 있었던 조슈아 레이놀즈, <고대 미술의 역사>라는 책으로 서양미술사의 고전주의를 열었던 미술사가 빙켈만과 가깝게 지냈으며 여성 최초로 미술아카데미 회원이 되기도 했던 그녀의 자부심의 흔적을 그림에도 남겼는데, "나, 안젤리카 카우프만이 그리다."라는 말을 써넣기도 했다.


그림은 악보를 쥐고 있는 음악의 여신 오른손에서 시작된다. 여신의 왼손을 오른손으로 붙잡는 안젤리카의 오른손으로 이어지고 왼 손으로는 미술의 여신이 들고 있는 팔레트를 겸손하게 가리킨다. 미술의 여신은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그림 속 이야기는 끝난다. 음악에도 타고난 재능을 가졌던 그녀가 미술을 선택하게 된 이유에 관해서 알려진 바로는 단지 종교 행사에 참여할 시간적 여유가 음악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그림 속에서 그녀의 손은 겸손한 재능으로 그려졌지만, 그녀가 그림 밖에서 생각한 자신의 손은 하늘을 가리키는 미술의 여신 왼 손이다. 자기 자랑이 하늘 끝까지 도달한 오만함의 극치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만이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부와 명성을 얻었던 당대 미술가들이 즐겨 그렸던 "헤라클레스의 선택의 기로"라는 주제는 작가 자신을 뽐내기에 좋은 주제였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한 때 자화상의 주제였던 "헤라클레스의 선택의 기로"에서 시작된다. 귀족 출신이며 부자인 아버지의 친구의 아들과 결혼해 평범한 여성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한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앨리스는 선택해야만 한다. 카우프만이 음악을 포기한 것과 같이 월트 디즈니의 원작에서 사용된 합창은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시각 세계를 앞에 배치하고 음악은 배경 너머로 처리했다. 아마도 원더랜드가 그리스 신화의 연극무대처럼 생각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그의 의도인 듯하다. 다음 작품은 조금 섬뜩한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이다.


프리다 칼로, 선택의 기로


두 명의 프리다, 프리다 칼로 1939년

욕망을 채우며 살아갈 수 있는 악덕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고난이라는 미덕을 선택해 후세에 명성을 남기느냐의 기로에서 헤라클레스가 선택한 고난의 과정은 신화가 된다. 헤라클레스의 선택이라는 주제는 다르게 변형되기도 하는데, 프리다 칼로의 두 명의 자화상이 그렇다. 이 자화상은 두 프리다가 등장하지만, 세 명이 등장하는 헤라클레스의 선택의 기로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프리다의 자화상에서 빠진 한 사람은 그녀의 남편 리베라다. 리베라가 그림에서 빠진 이유는 프리다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두 명의 프리다가 의미하는 것은 이성과 감성이라는 정신 행위다. 백색의 서양 의상을 입은 프리다는 의학도였으며 의학의 대상이 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아마비로 끝내 다리를 절단하기도 했으며 자동차 사고로 골반을 다쳐 임신할 수 없는, 의학적으로 여성이 아니게 된 프리다.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멕시코 의상을 입은 프리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프리다다. 난잡한 사생활과 심지어 자신의 여동생과 불륜까지 저지른 남편 리베라를 그럼에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프리다 자신의 정신과 마음의 표현이다. 실제로 그녀가 리베라와 함께했을 때 그림이 잘 팔리기도 했다. 이 두 명의 프리다의 모습은 영화에서 백색 여왕과 붉은 여왕을 의미한다. 안젤리카 카우프만과 프리다 칼로의 두 자화상의 공통점은 표면적인 모습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감정 세계를 그려냈다는 점이다.


원더랜드, 환영의 세계

안토넬로 다 메시나, 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


다음으로 보이는 작품은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성 히에로니무스의 서재"와 영화의 포스터가 나란히 걸려있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성 히에로니무스의 서재"의 모습은 초상화처럼 세로로 그려졌지만 공간은 풍경화 같다. 풍경화 같은 원근법과 정물화의 트롱프뢰유라는 착시효과 기법으로 안토넬로 다 메시나는 평면을 파낸듯한 독특한 공간을 창조해 냈다. 그림 속 공간의 크기를 짐작하게 하는 것은 액자 같은 돌 벽면에서 시작된다. 돌 벽면 안쪽에는 풍경이 원근법으로 펼쳐지고 하단의 공작새와 자고새는 눈 앞에 가까이 있으면서 근접한 공간의 크기를 벽돌과의 크기에 의해서 짐작하게 하는 트롱프뢰유 기법을 사용했다. 사실 이 그림은 작은 스케치북 정도(45 ×36cm)의 크기다. 팀 버튼이 창조해낸 원더랜드도 마찬가지다. 앨리스의 몸 크기에 따라 원더랜드의 공간은 커지거나 작아지기도 하는데, 원더랜드의 입구를 통과하는 앨리스의 몸 크기를 조절하면서 영화적 환영 공간을 시각적 사실로 적응하게 해 준다.


디에고 발라케스, 기하학적 존재들


(좌)디에고 발라스케스, 라스 메니나스, 1656년 경, (우) 파블로 피카소, 라스 메니나스 1957년

안젤리카 카우프만이 자화상을 통해서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고 있다면 디에고 발라스케스는 재능의 자랑뿐만 아니라 야망도 그려냈다. 라스 메니나스는, 벨라스케스 자신의 자화상이면서, 마르가르타의 초상화이면서, 왕에게 보내는 한 장의 커다랗고(세로 318 cm× 가로 276cm) 공손한 청원서다. 그림은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와 왕비 마리아의 초상화를 그리는 발라스케스의 작업실에 다섯 살 난 공주 마르가르타 테레사가 시녀와 광대를 데리고 찾아온 장면이다. 그림 속 주인공은 마르가르타 공주처럼 보이지만, 귀족 출신이라는 것을 증명해내지 못해 작위를 받을 수 없었던 벨라스케스가 자신의 재능만으로도 기사 작위를 받을 충분한 이유에 관한 청원서를 펠리페 4세에게 그림으로 제출한 것이다. 그림은 왕의 집무실에 걸렸으며, 라스 메니나스를 그린 뒤에 끝내 작위를 받아낸 벨라스케스는 후에 그림 속 자신의 가슴에 붉은 십자가 모양의 작위 상징을 더해 그렸다. 이 흥미로운 공간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그림만 40여 점을 그려낸 파블로 피카소처럼 팀 버튼은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다른 방식으로 대가들의 유희에 동참한다. 피카소가 공간을 변형시켰다면 팀 버튼은 시간을 통해서 등장인물들을 변형시킨다. 물감을 덧칠하듯 백색 여왕과 앨리스는 시간이 더해졌고 모자장수는 젊어진다. 미술관 입구에 놓여있던 상상 시계의 시간은 붓과 같이 사용되었다. 언뜻 보니 발라스케스의 얼굴의 묘하게 팀 버튼과 닮았다. 팀 버튼에게 캐릭터 변형에 관한 영감을 준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진실을 드러내는, 시간


진실의 베일을 벗기는 시간, 장 프랑수와 트루아, 1733년

장 프랑수아 트루아의 진실의 베일을 벗겨내는 시간을 보면,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딸인 "진실"이 위선자를 의인화한 여인의 가면을 벗겨내고 있다. 진실이 오른손으로 가리키는 네 명의 여인들이 있는데, 사자에 기대고 있는 여인은 "용기"를 의미한다. 칼과 천칭 저울을 들고 있는 여인은 "정의", 정의의 여인에 기대어 물병을 들고 있는 여인은 "절제", 뱀을 들고 있는 여인은 "분별"을 의미한다.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도 트루아 그림의 상징적 의미를 그대로 사용됐다. 용기를 의미하는 사자는 사나운 개 밴더스내치로 저울의 균형을 잡으려는듯한 손 모양을 하고 앨리스에게 칼을 쥐어주는 백색 여왕은 정의를, 모자장수의 다과 장면은 절제를 붉은 여왕의 괴물 위버재키는 분별을 의미한다.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장 프랑수와 트루아의 Time unveiling Truth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 네 가지 덕목을 통해서 앨리스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찾는 모험담이라는 이야기로 재탄생됐다. 그런데 팀 버튼의 영화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는 앨리스가 아니라 모자장수다.


티치아노, 삼중 초상화

티치아노 베첼리오, 신중함의 알레고리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등장인물은 모자장수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주인공인 모자장수는 월트 디즈니 원작에 등장하는 모자장수보다 젊어지고 삼중 초상화처럼 세명을 압축해 새로운 모자장수로 재탄생시켰다. 삼중 초상화가 대체로 정면과 측면을 그려 넣었다면 티치아노의 삼중 초상화는 티치아노 자신과 아들 오라초, 손자 귀도를 그렸다. 각각의 세대를 상징하는 동물들이 아래에 그려져 있는데 늑대의 영리함과 사자의 용맹함 그리고 순종적인 강아지를 의미한다. 그런데 티치아노가 이 그림을 그릴 때에는 아들 오라초는 페스트로 죽은 뒤였다. 삼부자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그림이 아니라 손자 귀도에게 어떤 귀감이나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해줄 목적이었을 것이다. 팀 버튼도 모자장수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어떤 사람들로 조합했을까.


모자 장수, 회환의 램브란트


자화상, 램브란트 판 레인, 1652년


램브란트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던 1652년, 대부분의 화가들이 화려한 의상과 말끔하게 정돈된 헤어스타일의 자화상이 유행하던 시대에, 푸석한 머리칼과 초라한 작업복 차림의 램브란트는 너무나도 소박하게 보인다. 절제의 미덕을 자랑하기라도 하는 듯 한스 홀바인의 헨리 8세의 초상화와 같은 자신감에 차있는 왕과 같은 포즈를 취하며 작업복 차림의 자신을 그려낸 자화상은 보이는 것과 다르게 위선적이다. 궁정화가로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램브란트는 절제라는 미덕을 입힌 자신의 모습을 미화한 모습과는 달리 예술품 수집이라는 고상하고 사치스러운 취미로 인해 파산하게 된다. 이 그림을 그린 5년 뒤인 1657년부터 자신이 모아 온 예술품들을 매각해야만 했으며 절정기에 비하자면 비참할 정도로 가난하게 생을 마감한다. 팀 버튼의 몇몇 영화들에서 사용된 고야의 이미지보다는 조니 뎁이 연기한 모자 장수는 우울하고 회환에 찬 램브란트를 보는 것 같다. 자신을 부정해야만 진실이 드러나는 램브란트의 개인사를 토대로 창조해낸 모자장수는 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과거의 진실을 드러낸다.


모자장수가 전하는 이야기, 르네 마그리트

르네 마그리트, 홀로 걷는 남자의 사색, 1926년

팀 버튼은 이 미술관에 대부분의 작품을 예술가들의 초상화나 자화상을 전시해 놓고 있다. 팀 버튼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그 작품들 안에 조금씩 담겨 있다. 예술작품을 대하는 태도처럼 오랫동안 열심히 세심하게 바라보아야겠지만 마그리트의 작품은 당혹스럽고 불쾌하더라도 꼭 보고 가야 할 작품이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결말과도 같은 그림이기 때문이다. 꼭 그래야 하나?. 그렇다.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누군가는 선구적인 작품을 그려내기도 했지만), 큰 흐름에서 서양의 자화상과 초상화 역사를 되짚어 보자면, 중세에는 종교적인 대상을 심리적으로 재현하려 했으며, 르네상스 화가들은 정물화처럼 물리적인 대상으로서 인간의 표면을 재현하려 했다. 자신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자화상을 그려 명함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인상주의 이후의 자화상은 심리적인 대상으로서의 나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현대 예술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시각적 재현에서 자부심의 상징으로, 현대에 이르러서는 심리적인 표현 문제로 자화상의 내용은 변해왔다. 대상도 종교적이며 심리적인 것에서 자연적 외관을 그려오다 자신의 내면을 심리적으로 그리는 것까지 변해왔다. 팀 버튼의 미술관에는 현대 자화상의 종말과 같은 르네 마그리트의 중절모를 쓴 남자가 있다.


1926년에 그려진 "홀로 걷는 남자의 사색 The musings of a solitary walker "이라는 그림에서 처음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중절모를 쓴 남자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의 사색을 보면 얼굴은 여성이고 몸은 남성이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로 합쳐진 듯한 흥미롭고 괴상한 사색을 즐기는 남자는 누구일까. 마그리트 자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림이 그려진 이후의 일화에서 남자의 정체를 짐작하게 하는 일화가 하나 있다. 1963년 그의 변호사가 자화상 한 점을 부탁한다. 마그리트는 흔쾌히 수락했지만 자화상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음을 친구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그토록 그리기 어렵게 했던 것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양심이라는 심리적인 문제였다고 한다. 기술적으로 대충 그렸으면 될 것을 타인이든 자기 자신이든 자화상의 대상을 분명하게 확신하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중절모를 쓴 남자는 자기 자신을 확신하지 못한 마그리트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예술가들에게 자기 자신을 확신하는 문제는 어떤 것이었을까.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확신했던 한 예술가의 초상화를 통해서 그 의문을 풀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이해할 정도의 밑바탕이 되어준 예술가가 있다. 그는, 빈센트 반 고흐다.


예술가의 초상, 빈센트 반 고흐


이젤 앞의 자화상, 1888 - 1888년 겨울



"오늘날 얼굴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술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말했다. 드 쿠닝은 그린버그의 말에 이렇게 응수한다. "맞습니다. 그리지 않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들의 말은 오늘날 사진과 같은 얼굴을 더 이상 화가들이 그리지 않으려는 것이기도 하면서 얼굴의 다른 면을 그려 내려는 의지는 화가들에게 분명 존재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자화상을 그려내는 것이 화가들에게 그리 쉬운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어려움을 선사한 화가가 고흐다.


고흐의 이젤 앞의 자화상이 그려진 시기는 난방에 쓸 돈이 없어 매우 추운 겨울을 보내던 1888년 1월이었다. 그가 그려낸 것은 겨울의 혹한이 아니라 내면의 생동감이다. 몸과 얼굴은 굳어 있지만 영혼의 온도는 너무나도 따뜻하다. 생애 단 한 점 밖에 팔리지 않았지만 이젤 앞의 자화상 속 고흐는 화가로서, 예술가로서 자신을 확신한 모습이다. 고흐에게 자화상은 고유성을 확보한 독립적 주체인 "순수한 나"를 확인하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화가들과 당대 유행이었던 것들에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순수하게 자신의 고유성으로 채워진 나를 통해 발생되는 창조력이 자신에게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으며, 그 순수한 자신의 에너지는 화가로서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고흐의 자화상이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의 예술가들은 자화상을 쉬이 그려내지 못했다. 자부심이 한껏 고무된 전성기와 생애 마지막을 장식하는 자화상 몇 점 만이 그려질 뿐이었다.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진 않았겠지만, 예술가들은 고흐만큼 자신을 확신하지 못했던 듯하다.


보통사람들에게 있어서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넌다는 말은 신중함의 미덕으로서 삶의 한 방식을 제시해 주기도 하지만 예술가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돌다리를 부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거나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아 방법조차 없었던 어떤 경계를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넘어서려 하기 때문이다. 분야가 어떻든 오로지 자신만의 사색과 경험을 토대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데 성취를 이뤄낸 그들을 우리는 창조자 혹은 예술가라 말한다. 고흐와 같은 예술가들이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상상력과 창조력의 출발은 순수하게 나로만 채워진 주체로서의 "나"에게서다.


생각과 행동의 출발점이 되는 "순수한 나"를 얻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대체로 가정과 사회, 국가에 의존적이다. 가족, 학교, 친구, 직장, 국가는 의존적인 생각과 행동을 요구하고 그 요구에 응할 때에 물질적 삶은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물질세계뿐만 아니라 정신세계도 마찬가지다. 장자의 수레바퀴를 깎는 윤편의 말대로 우리의 정신세계는 고전이라는 말의 찌꺼기로 채워져있기도 하다. 서양 철학이나 동양 고전을 배우는 학창 시절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성인이 된 뒤에도 우리는 그들의 말에 의존한다. 경계 밖으로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다.


그럴듯하거나 굉장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불현듯 떠오른 의문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지을 수 있는가? 매일 보던 어떤 풍경이 어느 순간 마음을 울리고 그 이유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할 수 있을까? 어느 시인이 강연을 다니며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가 "어떻게 하면 시인이 될 수 있습니까?"란 질문이었다 한다. 그 시인이 농담같이 말하기를 " 시인이 된다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나 노력보다 월 20만 원으로 살아갈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면 됩니다". 사실 그도 고흐가 그랬던 것처럼 시어의 세계에 참여할 것을 생각했을 뿐이지 그 시어의 세계가 선사할 초라하고 궁핍한 현실적인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 세계가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뿐이다. 수많은 도전이 실패하고 성공하지 못한 채 생이 끝나더라도 만족할 수 있다는 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한 고흐의 자화상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관" 마지막 작품이었다.


우리의 초상

영화의 한 장면

우리의 앨리스는 어떻게 됐을까. 꿈속에서 순수한 자신을 발견해낸 앨리스는 독립된 주체로서의 앨리스로 돌아온다. 결혼을 거절하고 아버지의 꿈이었던 중국으로의 해상로를 찾아 탐험선에 승선해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혼의 온도가 가장 뜨거워지는 청춘의 시기에 용기를 가지고 불안을 감당하며 불편함을 견뎌내며 자신만의 경험세계를 향해 찾아가라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성원이자 응원이며, 기성세대들에게는 그런 청춘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를 바라는 편지와 같은 영화다. 그렇다고 모든 청춘들이 그런 삶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몽상이나 희망이 아니라 고흐처럼 확신에 찬 나를 발견한 청춘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재미난 이야기와 숨겨진 의미를 즐길 수 있는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상상 미술관이었다. 미술관 출구에는 아주 커다란 전신 거울이 놓여있다. 팀 버튼이 이 거울을 왜 갖다 놓았는지 다들 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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