삔또가 하나씩 나간 어른들

by 이곤








"일단 니가 잘 나가봐. 그때도 재수 없으면 본연의 재수 없음이지"
"하... 재수없고 싶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삶이여 ~ "
"이제 이리저리 안 치이고 있으면 뭔가 불안하지 않아?"
"어. 그게 무서운 게 무서워. 그렇게 치이다가 퇴근길에 털레털레 걸으면 또 당당하게 걸어야 치한이 덜 붙는다고 힘들게 걷지도 말라네"
"응? 누가 그래?"
"뉴스가"
"아니, 내가 피곤해서 힘없게 걷고 싶다는데 왜 내 걸음걸이를 치한한테 맞춰? 미친 거 아니야? 못 나가는 것도 억울한데 치한까지 배려하고 살아야 돼?"




요근래 멜로가 체질에서 나왔던 이 대사가 떠오른다. 우울하면 우울한대로, 기분 나쁘면 나쁜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부정적인 감정들이 주 기분이 되는 그 순간을 나는 어떻게 대했던 가. 힘든대로 있으면 치한까지 덮쳐질 수 있으니 힘들지 말라는 말을. 나는 어떻게 대했던 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느끼면 느끼는대로 참았던 것 같다. 참았다. 그래, 참았고 어서 이 순간이 지나가길 바랬던 것 같다. 정신과 의사가 말했다.


참는 것과 힘든 걸 마주보는 건 다르다고.


나는 이때까지 내가 힘든 순간을 인정하고 지나보내는 게 마주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 그의 말은 아주 달랐다. 나는 여태까지 부당했던 모든 순간을 참았던 것이었다. 제대로 화라도 내본 적이 있었나? 제대로 그들에게 내 의견을 말했던 적이 있었나? 제대로 내 기분과 내 상황을 말했던 적이 있었나?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회피하고 왠만해서 맞춰줬던 것이었다.


나의 미성숙을 마주한다.


그건 나에 대한 실망과 함께 참으로 부끄러운 것이었다.


여태껏 성숙을 입밖으로 내뱉던 시간들까지도 전부 미성숙이었기 때문이다.







*








우울은 천천히 시작된다.


청소를 미루고, 밖을 나가는 시간이 줄어들고, 배달의 빈도가 늘고, 힘든 순간들이 더 크게 다가오고, 지나가는 게 아닌 쌓이는 순간이 늘어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되어 그건 어느 순간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되어 기분이 된다. 일까지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평소의 나와 같지 않은 오늘과 하루하루들이 고작 '우울'이라는 두글자로 끝나는 게 비참하기도 했다. 모든게 우울이라는 두 글자로 끝나지 않을 상황들이 었기 때문이었다.


얼마전 동기에게 서럽게 울며 말했다. 힘들었던 일들과 선생님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 말을 전부 듣던 동기는 말했다.


동기는 울고만 있어봤자, 이렇게 있어봤자 달라지는 게 없으니 해결방법을 떠올리라고 했다. 사람들에게 이미 너는 그런 애로 낙인이 찍혔고, 그런 낙인을 풀기 위해 그 사람들에게 대화를 걸기라도 하라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이때 깨닳았다. 얘는 지금 내 생활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구나.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않구나. 결국 얘에게는 스트레스 받는 상황 중 하나구나.


아니. 그냥 우리는 너무나 어리구나.


이해하지만 상처받았다. 그리고 더 이상 이런 하소연이 반복되면 얘에게 나는 질리는 사람이 되겠구나, 싶었다. 구덩이를 파다가 뒤척이며 잠에 들었다. 어쨌든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동기와 대화 다음날, 출근하고 집에 와서 방전된채로 침대에 누웠다. 2월이되고부터 근 2주간 내내 출퇴근하고 쉬는 날에 본가를 내려갔고, 여유가 생기면 피티를 받고 보청기 센터를 가고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갔다. 집에 있어봤자 우울하다는 생각에 더욱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쉬는 날. 계획이 없는 날. 멍하니 누워서 먹었다. 밥, 과자, 치킨, 감자튀김, 귤. 멍하니 드라마를 보며 입에 넣었다. 폭식을 인지하면서도 다 먹은뒤 꾸벅꾸벅 졸았다. 어쨌든 배불리 먹고 잠에 들어 쉬고 싶었다.


잊고 싶었다.


힘든 순간은 단 하루 이틀이면 지나가지 않는다. 몇달, 몇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머리로 글로 알고 있었으면서도 힘들어 무너지려 했다. 꺾여야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보통의 사람이었다.


정신과 의사의 말이 다시 머릿속에 맴돈다.



이곤님은 힘든 일을 해서 힘든 거에요. 아무 잘못 없어요. 잘못했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이곤님에게 하는 행동들이 다 맞다는 건 아니에요.



나는 그말을 듣고 받아들였다.


어떻게 모든 곳에서 에이스가 되고, 일 잘하는 사람이 되겠는가. 이곳에서 이런 사람이라면 저곳에선 저런 사람인거지. 그 한 문장은 그래도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받아들이며 내 미숙한 순간들을 인정했다. 설령 이들이 인정하지 않고, 나를 비난한다해도 나는 인정했다.


그렇지만 힘들었다. 여전히.



일이 많아 버거운 순간에도 다른 이였으면 당연히 도와줄 텐데, 나를 도와주지 않을때도.

모를만 한것도, 그것도 모르면서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냐 비난할때도.

무슨 말만 해도 믿지를 못겠다며 소리지를 때도.

바빠서 뛰어다니는 것조차 왜 뛰어다니냐 뭐라할때도.


지금 참고 있는건지 그냥 지나보내고 있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동기의 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거라 했는데, 나는 여기서 뭘 해야할까?


애초에 사람들이 마음대로 찍어대는 낙인을 바꿀 수는 있어?


나는 당장하는 내 노력으로 바뀔 거라 생각하지 않아.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 생각했거든. 이들에게는 지금 괴롭히고 욕할 사람이 필요한거야. 괴롭히던 사람들은 다 퇴사하고 없으니까.


뛰지 말고, 그냥 빠르게 걸어?

내가 바쁜 걸 알면서 일부러 옆에서 휴대폰만 하고 앉아 있는 이들한테 도와달라고 해?

알고 싶어도 생기는 모르는 순간을 미리 예측하고 알아내?

진짜라고, 믿어달라고 하소연 해?


내가 거기다 한두마디 했다고 선임들에게 말대꾸 하지말라고 혼났다는 거 알아? 도와달라고 했다고 선임들한테 일 시키냐며 싸가지 없는 신규 취급 받은 건? 마음이 급해 이미 발은 뛰고 있는데, 환자 상태가 안좋아질때 빠르게 걷기만 하는 방법이 있긴 해?


전에는 수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뭐라했는 줄 알아? 일부러 인계를 늦게해서 같은 근무시간때 일했던 사람들 늦게 퇴근 시킨거녜. 그게 말이 돼? 내 퇴근 시간도 늦어지는데.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겠냐고 내가. 그때 너무 너무 바빴는데!!



나는 어느 순간 위에 적은 내용들을 동기에 말하며 오열하고 있었다.



동기의 눈은 나를 동정을 담아 바라보고 있다.



"이곤아, 그래도 여기서 아무것도 안하고 이렇게 울면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 선생님들한테 사과하는 건 어때? 잘못했다고...나도 어떻게 될지는 몰라..그런데 사회생활이잖아....."



나는 울었다.



"그런데...그건...그냥 제발 저를 미워하지 말아주세요..하고, 납작 엎드리는 거잖아......그건 싫어...나를 버리는 거야...그건....."





결국 내 선택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 그리고 그 잘못이 얼마나 큰 태풍이 되어 돌아오는지 인지하는 것, 나는 지금의 선임들처럼 잘못에 사람 하나를 미친듯이 몰아가는 어른이 되지 않을 것.


그런 어른이 되지 않을 것.


지금이 적어도 나중에 양분이 되길 바라며.


다짐했다.





















실은 저, 누가 저한테 소리지르고 욕하고 탓하는 건 익숙해요.

금이간 기둥들 브런치 북을 읽으신다면 왜인지 아시겠지만....하...포장해보려해도 인정해요. 저도 남들만큼이나, 힘든 삶이라는 거. 괜찮은 척 긍정적인 척. 정작 힘든 순간이 오면 그 누구보다 힘들어하고 벅차하면서 제대로 무너지면서.


그래서 슬퍼요. 유년시절을 벗어나 나름 잘자랐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여전히 벗어났지 못했다고 생각하니까. 아니, 애초에 그런 곳에서 자란 게 티가 나서 마음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걸까? 싶어지더라구요. 자기연민을 가지고 싶지 않아도 생기게 되네요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은 그 누구하나 없는데.


왜 그걸 몰라줄까요? 그리고 왜 그들이 자라 나이를 먹고, 그런 어른이 될까요?


자라지 않는 어른들, 요새 선임들 중 몇몇을 보며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구던 삔또 하나씩은 나갔구나. 그리고 제대로 된 어른이라 할지언정 사람은 입체적이구나, 싶었어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함부로 막대해지는 사람이면 그냥 내가 잘못일까, 싶었거든요?


근데 이건 운이 안좋은 거에요.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은 그 누구 하나 없고 모두가 저마다의 작은 전쟁 중이니까. 인생은 모두에게 고귀한 거고, 직장은 분명하게 공과사가 구분이 되야하고, 직장에서의 일이 인생이 되지 않는 다는 것도 배웠어요.


그러니까 어릴때 받지 못했던 인정들을 직장에서까지 받으려 버둥거리고, 받지 못했다고 무너지지 말자. 알았지?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데 타인의 인정이 얼마나 가치있겠어? 그치, 이곤아.


그럼에도 여전히 인정받고 싶어하는 나까지도 입체적인 어른으로 자라는 중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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