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이션

by 이곤












기차를 타기전, 아빠차를 타고 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눈물이 났다.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눈물이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났다. 앞으로의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를 미래의 불확실성과 같은 상처를 또 다시 받을까하는 불안이 나를 흔들었다.


아빠 차를 벗어나면 맞이할 현실과 사회의 냉정함이 무서웠다.


솔직한 마음으로 아빠에게 울며 다시 본가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냥 이대로 직장으로 가기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다시 노력하며 잘 해낼 자신이 부족했다. 엄마와 아빠가 왜우냐며 사이드미러로 나를 힐긋였다.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났다.


중환자실에서 신경외과 병동으로 로테이션을 결정했다. 내일부터 병동으로 출근해야했고, 다시 공부하며 적응할 자신이 없었다. 물론 중환자실에서 일하며 일이 늘었다해도, 인간관계가 좋지 않으면 적응하지 못한 거란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여초사회 특유의 뒷담, 앞담. 그리고 선임들의 텃세와 줄세우기. 실수와 잘못을 그 사람 자체로 만들어버리는 낙인. 나는 어릴적부터 알고 있던 내 습성을 여기서 뼈저리게 느꼈다. 정치질을 못하는 내 자신을 말이다. 같이 욕을 하지도, 같이 싸바싸바하지도 못하는.


여태 괴롭혔던 이들이 퇴사하고 내가 타겟이 되면서부턴 모든 문제가 나에 있다 생각하며 자책했다.


유별나게 내 실수에 집착하며 가스라이팅하던 프리셉터, 작은 실수 하나에 잘걸렸다하며 소리지르던 선임, 내가 한 모든 일을 사람들 사이에 퍼트리며 분탕질하던 2년차.


이런 식으로 일할거면 요양병원이나 가라던 말도, 도대체 넌 뭐가 문제냐 질책하던 말도.


그 모든 말을 되새기고 잘못의 늪에 빠져 우울과 불안에 정신과 약을 먹게된 나까지.


그 끝에 나는 점차 병들어가고 있었다.


신경외과로 로테이션을 가게 되면서 나는 수많은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느라 힘썼다. 친구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내며 생각을 정리하던, 아빠에게 매일같이 전화하여 마음을 정리하던, 책을 읽던, 이 상황을 벗어나 갈 수 있는 다른 곳을 찾던.


지금을 버티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내가 인정해야 하는 사실은 여러가지 였다. 물론 운이 좋지 않게 겹친 상황도 여러개지만 그 과정 속 내 부족함도 여러개였다.


나는 인간관계에 서툴고, 사회생활에 미숙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 시선을 신경쓰고, 휘둘린다. 아주 많이.


일에 공과 사를 구분치 못하며 컨디션따라 일에 영향이 아주 많이 간다.


생각은 크고, 행동은 적다.


힘들때 혼자 이겨내기보다 여기저기 말하며 누군가가 나 대신 해결법을 알려주길 바란다.


남 탓보다 내 탓이 쉽고, 자책이 쉽다.



일단 이 병원에서 오래 있고 싶지는 않지만 경력은 만들어야만 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이 부디 도망이 아니길 빌며, 이 곳에 적는다.


올해 10~11월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했다. 9월까지 아이엘츠라는 영어시험 점수 overall 6.5 이상을 만들기로 했다. 5월까진 지금 있는 곳에서 어떻게든 경력 1년을 만들고, 그뒤로 병동에서 일해보며 괜찮으면 더 해보고 아니면 다시 본가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워킹홀리데이를 가면서 미국 비자도 신청해둘 예정이다. 비자 발급까지 2~3년이 걸린다고 했으니 말이다.


물론 해외 생활도 분명히 힘들거고, 도전이 계속 될거라는 거 나도 안다.


그런데 나는 일이 싫은 것도 아니고, 간호사라는 직업이 싫은 것도 아니다. 사람이 너무 힘들었다.


한국의 병원은 어딜거던 이런다고 하고, 나는 산업간호사나 보험, 공무원쪽으로는 뜻이 없다. 차라리 미국 가서 사람이 힘들어도 버티다가 간호사가 운영하는 nusing home을 만드는 게 내 적성에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되었던 경험이고 도전이고 방황인 내 나이가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큰 운이었다.


하다가 안되면 워홀가서 모은 돈으로 해외에 있는 대학 다른 과로 진학해볼까, 싶었다.


이 시기의 끝이 도망이 아니라 부디 새로운 도전이길 바라면서.


지금의 내가 할건 딱 두가지였다.


신경외과 공부와 영어공부, 병동 적응하기.


정치질은 못해도 열심히 할 자신은 있었다.

















그리고 올라가기전 아빠랑 롯데리아에 앉아아서 이야기했는데 괜히 미안했다. 아빠한테 아빠는 사람들 말때문에 상처받고 힘들때 어떻게 했어? 라고 물으니 그냥 버텼다고 했다.


내가 그게 뭐냐고 그러니 아빠가 말했다.


그래도 넌 아빠라도 있잖아. 나는 없었어. 넌 투정이라도 부리지.


웃겨서 웃다가 미안해졌다.


나는 미성숙하다는 생각이 요근래 계속 들기도 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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