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도시생활
취향, 그의 다채로움에 대하여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가, 아닌가?ʼ 모호하게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명확하게 자신의 취향과 호불호를 밝히는 사람을 볼 때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창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흠뻑 빠질 줄 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해 온 그림과 축구, 음악 관련 애장품들이 조화롭게 창은만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이창은
지방에서 6~7년 이벤트 사업을 하다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서울행을 결심, 소상공인과 벤처기업 대상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기 시작함.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편.
거주지 성산동
거주기간 2년 차
구조 1.5룸 복층
면적 38㎡
요즘 아주 바빠 보이세요.
최근 소상공인과 벤처기업 대상으로 인증서를 발급해주는 회사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게 되어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조금 정신이 없네요.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원래 20대 때부터 지방에서 매니지먼트와 영상업체 등 사업을 했었어요. 6~7년 정도 일하다가 유럽 여행을 떠나 제가 좋아하는 축구 경기를 실컷 관람하고 왔죠. 그때 ʻ30춘기ʼ를 겪고 있을 때라 문득 어릴 적 스포츠 캐스터가 되고 싶었던 게 떠올랐어요. 더 늦기 전에 어릴 적 꿈에 도전해보고자 작년 서울에 올라와 학원에 다니면서 스포츠 캐스터를 준비하기도 했어요.
30대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해 서울행을 결심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많은 걸 포기하고 올라왔습니다(웃음). 부산과 대구 지역에서 20대를 주로 보내기도 했고 사업도 하다 보니 바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고 1년쯤 후 기회가 되어 서울에 올 수 있었어요.
부산에서 태어나 김해, 진주, 광주, 대구를 거쳐 현재 서울에 거주한 지도 2년이 다 되어가네요.
원래부터 좋아하는 것에 거침이 없는 편인가요?
네, 어릴 때부터 호불호가 분명해서 ʻ내가 뭘 좋아하나ʼ로 고민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산다고 생각해서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려고 해요. 그때그때 제가 흥미를 느끼는 일을 하면서 사는 편이에요. 스포츠 캐스터도 그래서 도전하게 되었는데 최근 채용이 잘 없다 보니까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현재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네요. 제가 오랜 아스널 팬이고 어릴 적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후회나 아쉬움은 없습니다.
지금 사는 마포구 성산동이 서울에서의 첫 거주지인가요?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임시로 잠실 쪽에서 3~4개월 지내다가 이 집에 정착한 지 1년 반 정도 된 것 같아요.
서울에 오기 전부터 홍대·합정·상수·망원 지역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지라 이 동네에 살고 싶었어요.
꿈꾸던 동네에 살아보니 어떠세요?
코로나 터지고 이사 온 집이라 아직 충분히 즐기진 못하고 있지만, 가까이에 홍제천이 있고 한강이랑 경의선 숲길도 금방 갈 수 있어서 자전거 타기에도 좋아요. 종종 산책도 하고 있고요. 골목 지나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나 상점에 들어가곤 하는데 그게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이 동네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감성적인 개인 샵인 게 참 좋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내가 서울 홍대 지역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해요. 대구에서 사업할 때는 자전거도 거의 못 탔고 사는 내내 좀 답답했거든요. 그렇지만 이 동네에는 제가 좋아하는 취향을 즐길 수 있는 샵들이 많아서 되게 좋아요.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데, LP샵이나 그런 음악을 틀어주는 가게들이 연남동 쪽에 몰려 있더라고요. 그것 때문에라도 서울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음악을 되게 좋아하시나 봐요.
네, 처음 음악에 빠지게 된 건 중학생 때 브라운 아이드 소울을 좋아하면서부터예요. 중3 때 부산 KBS홀에서 열린 콘서트에 처음 가서 1열에 앉아 공연도 보고 팬카페 활동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점차 다른 뮤지션들도 알게 되어 음반을 계속 모으게 되었고 고등학생 때는 아예 제가 중창단을 만들었을 정도예요. 어릴 적부터 수집해온 테이프, CD, LP를 복층 침실 한쪽에 모아 두어 음악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이 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에요. 어둑어둑해질 무렵 여기서 음악을 듣고 있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위안도 됩니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위안도 됩니다.
좋아하는 음반은 어떤 거예요?
지금 흘러나오는 음악이 ʻ시가렛 애프터 섹스 Cigarettes After Sexʼ 앨범인데 최근 몇 년 동안 LP가 닳도록 들었어요. 브라운 아이드 소울 앨범은 전부 가지고 있고 직접 사인받은 CD도 많아요. 어쩔 수 없이 브라운 아이드 소울 이야기를 자꾸 하게 되는데 제가 가장 아끼는 것도 중학생 때 처음 산 브라운 아이드 소울 테이프예요. 테이프는 요즘엔 틀 기회가 많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테이프만의 감성이 있다 보니 가끔 들으면 반갑더라고요.
테이프 정말 오랜만이네요. 이 중에는 구하기 힘들었던 음반이나 희귀 앨범도 있을 것 같은데요.
ʻ앰프 피들러 Amp Fiddlerʼ라고 제가 처음에 그 가수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한국에 아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CD가 정식 수입도 안 됐거든요. 그때 어떻게 어떻게 해서 영어로 된 사이트를 들어갔는데 중학교 2학년 실력의 영어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거예요. 하나하나 번역해 가면서 한국에 수입이 안 되는 CD들을 구매하곤 했었어요. CD 한 개가 당시 가격으로 3‒ 4만 원이나 했고 배송받는 데도 한 달 넘게 걸렸어요. 친구들이 다 저보고 특이하다고 그랬는데 음악에 관심이 많다 보니 열정적으로 모으곤 했던 것 같아요.
요즘 음질 좋은 디지털 음원이 많은데도 구하기 어려운 음반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어릴 때는 디지털 음원이 없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음반 모으는 게 자연스러웠고 거기서 행복감을 느꼈어요. 이걸 지속하는 게 저의 역사가 이어지는 것 같은 의미가 있기도 하고 나를 되돌아보며 취향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니까 그 흐름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좀 있습니다.
집에서 쉴 때는 음악 들으면서 주로 뭘 하세요?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습니다. 여기 있는 책들이 최근에 읽은 것과 읽으려고 꺼내놓은 책들이에요. 저는 인문학 책들을 주로 읽어요. 어릴 때는 자기 계발서를 좋아했는데, 해외여행 다니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내가 성공이나 성장에 너무 매달리면서 살지 않아도 되는 구나를 깨닫고 나서부터 소설책도 읽기 시작하고 인문학 책들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을까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박웅현의 «여덟 단어»예요. 스물다섯 살 때 이 책을 읽고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본질을 생각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사업 시작하기 전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단순히 돈을 벌어도 ʻ왜 돈을 벌려고 하는가ʼ같은 질문들을 스스로 하면서 생각을 많이 해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건 스무 살 때 읽었던 김동영의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라는 책인데 라디오 작가 분이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여행을 하는 내용이에요. 그때 제가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가봤을 때라 이 책을 보면서 나도 20 ‒30대에 이런 삶을 살고 싶다는 낭만을 꿈꿨죠. 이렇게 두 책이 저의 20대를 지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책을 통해 배우고 해답을 찾는 편이세요?
네, 어릴 때부터 집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김해 시립 도서관까지 가서 «삼국지»나 «조선왕조실록» 같은 책들을 읽곤 했어요. 결정적으로 중학생 때 공부 방법에 대한 해답을 책에서 얻었던 경험을 한 후로 좀 더 책에 매달렸던 것 같아요. 당시 친한 친구들이랑 같이 학원 다니고 같이 노는데 저만 성적이 안 좋아서 고민이었거든요. 두뇌 활용법에 대한 책을 보니까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저랑 똑같이 놀아도 자기가 정해놓은 학습 패턴이 있어서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그 책을 읽고 저도 겨울방학 때 그대로 공부를 하고 전교 120등에서 30등으로 성적이 쑥 올랐어요. 그때부터 인생의 해답을 구하고 싶거나 고민이 있을 때 책에 의지를 많이 하게 된 거 같아요.
대형 액자들도 눈에 띄어요. 미술 쪽에도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원래 어머니 꿈이 화가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청소년 미술대회까지 나갔었어요. 어릴 적에는 미술을 한창 공부하다가 10살 이후부터는 그림보다는 운동을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축구부, 야구부 들어가서 운동하다가 중학생 때부터는 음악에 빠졌죠. 지금은 그림은 그리지 않고 감상만 해요. 전시 가는 거 좋아하고 제가 좋아하는 그림들은 집에 걸어두었죠. 진품은 아니지만요(웃음).
최근에 제일 기대하고 있는 건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전시인데 나중에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침대 위에 크게 걸어놓고 싶은 그림이에요. 제가 부산 사람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바다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예체능 분야에 두루두루 관심이 많으시네요. 어머님 언급도 잠깐 하셨는데 부모님 취향의 영향을 받은 것 같나요?
어머니께서 비비드 한 색상을 선호하시고 디자인적 감각이 있으시다 보니 곁에서 자연스럽게 보고 배운 것 같긴 해요. 사업할 때 디자인적인 요소를 적용할 때나 집 인테리어를 할 때 보면 제가 원색적이고 화려한 색감을 많이 쓰더라고요. 아버지께서는 저와 음악 취향은 다르지만. 오랫동안 음악을 좋아해 오셨고 카카오뮤직에서 활발히 활동하셔서 엠배서더 제안을 받기도 하셨더라고요.
부모님의 뛰어난 감각을 물려받으셨나 봐요. 창은 씨 집은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로 꽉 채운 느낌이에요.
제가 좀 맥시멀 리스트이죠(웃음). 저에게 집은 ʻ전시장ʼ 같은 곳이거든요. 저의 취향이 그대로 담겨있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집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위로받는 기분이 들어요. 안식처처럼요. 이젠 아무리 고급 호텔을 가더라도 불편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더라고요.
이 집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작년 여름, 집에 어머니가 오셨을 때요. 창밖의 풍경이 푸르고 쨍한 날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집이 카페 같다고 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사실 제가 작년 2월 이 집에 이사 오고 몇 달째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어서 혼자 집에서 우울하게 지냈거든요. 그날도 음악 틀어놓고 커피 마시면서 대화 나눴는데 늘 집에 혼자 있다가 어머니가 오셔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욕심을 낸다면 집에 어떤 것들을 더 채우고 싶으세요?
만약 집이 넓다면 큰 식탁을 두고 싶어요.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모이지 못하지만, 집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요리해 먹고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요. 혼자 있을 때는 주로 배달 음식을 먹기는 하지만, 친구들 놀러 오면 직접 요리해서 대접하거든요. 최근에 친한 친구 생일이어서 제가 미역국이랑 한식 요리해서 생일상도 차려줬어요. 그리고 집 천장에 미러볼도 달고 흑인 음악 틀어놓고요. 저희 집이 살롱 같은 공간이면 좋겠어요.
보통은 나이를 먹으면서 추구하는 집의 모습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창은 씨는 어떤가요?
제 취향대로 집을 꾸미기 시작하게 7년째인데 20대 때 바라던 집의 모습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디에 살든 집에 저의 취향이 담겨 있었으면 하거든요. 이런 상태로 40, 50대까지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노년에는 잔디 마당이나 바다가 있는 곳에서 자연과 함께 지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