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도시생활
대화가 참 편하다. 거실 침대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인터뷰인지 수다인지 모를 시간이 금세 지났다. 거실은 주 생활공간, 방은 책을 위한 공간. 소담의 집은 simplicity를 지향한다.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행복의 요소들로 채워진 집. ʻ거실에 침대ʼ라니. 누군가에게는 너무 특이할지 모르지만 소담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배치이기에 너무나도 특별하다. 단순하지만 특별한 소담의 집, 그리고 자기다움으로 가득한 그녀의 일상으로 한 발자국 다가가 본다.
류소담
12년 차 프리랜서 영화인. 본인 입으로는 현장에서 쓰레기도 줍고, 스태프들 식사 주문하는 일을 한다고 하지만, 배우 계약부터 예산 수립·지출 관리까지 담당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 영화 «챔프» «명량» «순수의 시대» «탐정 더비기닝» «백두산», 드라마 «공항가는 길» «킹덤 시즌1» 등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채워가는 중. 그리고 현재 넷플릭스 방영 예정 드라마 «고요의 바다» 후반 작업 중.
거주지 망원동
거주기간 4개월 차
구조 거실1+방2
면적 28㎡
마포구에서 산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5년 가까이 된 것 같아요. 제 고향은 청주인데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학교가 있는 마포구에서 첫 서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마포구를 떠나게 되었는데 그렇게 낯설 수가 없더라고요. 유명한 쇼핑몰, 영화관, 식당, 카페 등 온갖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동네였고, 2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을 살았음에도 여전히 남의 동네처럼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결국 집 계약이 끝나자마자 다시 마포구로 돌아왔답니다.
성인이 된 후 대부분의 시간을 마포구에서 지내셨군요.
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에게 마포구는 서울에서의 고향과도 같은 공간이에요. 부모님과 떨어져 처음으로 혼자 살 게 된 곳이 마포구였고, 안 가본 곳 없이 골목골목 많이 다녔습니다. 마포구라면 어디에다가 떨어뜨려 놓아도 집에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한 마음입니다.
집 현관 들어서자마자 거실에 침대가 보여서 놀랐어요. 방이 두 개나 있음에도 거실을 침실처럼 이용하고 있다는 게 독특하군요.
이전에 살았던 집은 1.5룸으로 거실과 침실이 있는 구조였는데 살다 보니까 제가 침실을 잘 안 쓰더라고요. 언제부턴가 거실에서 밥 먹고, TV 보고, 책을 읽는 저를 보며 ʻ아, 나는 거실 생활하는 사람이구나ʼ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사하면서 제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거실에 침대를 놓게 되었죠. 저는 이게 특이하다고 생각을 안 했는데 이삿짐 옮겨주시는 분들도 엄청나게 놀라시더라고요. 친구들도 집에 놀러 와서 다들 한 마디씩 해서 이제야 깨달았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개방된 침실이 좋아요. 제 생활 습관에 맞게끔 배치한 거니까요.
이외에도 이 집에 이사 오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요?
제가 갖고 있던 가구들과 톤을 맞추고 싶어서 화이트랑 원목 색상으로 하나하나 골랐죠. 태어나서 처음 해본 일이었어요. 그동안 월세와 반전세를 전전하다 처음으로 전세를 얻어 들어온 집이다 보니 새로 가구를 다 들여야 했어요. 옷장, 화장대, 식탁, 책상, 의자 등 직접 사이즈를 재고, 예산과 제원에 꼭 맞는 가구를 찾느라 비를 쫄딱 맞으면서 아현동 가구 거리를 싹 털었답니다.
고생하며 손수 고른 가구들로 집이 채워졌을 때 정말 뿌듯했겠어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직접 발품 팔아 산 가구를 집에 들여오던 날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어요. 그렇게 온전히 제가 원하는 모양으로 맞춰가며 사는 집이라 지금껏 살았던 그 어떤 곳들보다도 특히 더 애정이 가요.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나 물건이 있을 것 같은데.
가장 애정 하는 공간은 서재, 아끼는 사물은 책장과 책들입니다. 이삿짐 정리해주시는 분들께도 책은 손대지 말아 달라고 해서 제가 정리할 정도로 신경을 썼어요. 책 배치에는 기준이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별·장르별로 모아두려고 했어요. 주로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인데 국내 해외 작가를 가리지 않고 좋아합니다. 장르도 잘 가리지 않는 편이에요. 차분한 일본 소설이 읽고 싶어지면 일본 소설을 읽기도 하고요. 그때그때 끌리는 책을 읽어요.
본인에게 영감을 주거나 자기만의 세계로 빠지게 해주는 책이 있나요?
이 중 가장 좋아하는 책은 ʻ요 네스뵈ʼ라는 노르웨이 작가의 책들이에요. 책장 한 칸이 이 작가의 책으로 채워져 있을 정도니까요. 장르는 형사 시리즈물이에요. 이 작가 작품을 초기작부터 읽어와서 그런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느낌이고, 저도 이렇게 시리즈로 입문한 작가는 유일해서 챙겨 읽고 있어요.
오히려 영화 관련 물품들은 별로 안 보이는 것도 특별합니다.
같이 일했던 분들이 배우분들의 사인을 받아다 주신 영화 포스터 두 장과 대학 때 단편 작업했던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무비 슬레이트가 전부예요. 영화는 극장에 가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있다 보니 집에선 영화도 잘 안 봅니다. 심지어 DVD도 없어요. 그리고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괴로워질 것 같아 너무 폭 안 빠지려고 하는 경향도 있어요. 영화는 그냥 진짜 일로 좀 남겨놓고자 합니다.
최근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더라고요. 영화·드라마 제작 일은 막연하게 생각하면
주로 현장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소담씨는 어때요?
촬영이 끝나도 영상 편집, 음악, 색 보정, 후시 녹음 등 작업이 많이 있어요. 저는 그 작업을 진행해줄 벤더 계약부터 예산 집행, 일정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직접 컨펌해야 하는 일도 있다 보니 외부 일정도 종종 발생하지만 최근 들어 재택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불안을 해소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매일 밤 요가를 하고, 요가 다녀오면 서재에서 맥주를 마시며 책을 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에요. 서재에서 책 읽을 때는 음악도 잘 듣지 않고, 오로지 책과 맥주만 있으면 돼요. 그리고 산책을 좋아해서 집 근처 망원 한강 공원도 자주 걸어요.
영화 제작 스태프 일은 프리랜서가 대부분이라고 들었어요. 또 제작 기간 동안 집을 떠나 있거나 작품이 끝난 공백기에는 불안감에 휩싸일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일을 하면 할수록 마냥 어릴 때처럼 재밌고 좋기만 하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연차가 차면서 점점 설 자리가 적어지는 것 같아 불안해지더라고요. 일에서 오는 불안감이 커지다 보니 일이 아니어도 나를 지탱할 수 있는 게 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일에서 채울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좀 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집중할 별도의 완충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집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생긴 걸까요?
아무래도 밖으로 나가서 떠도는 일이 많다 보니 과거에는 제게 집은 중요한 공간은 아니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집에서의 생활이 깔끔하게 정돈되고 나만의 영역이 공고해야 집을 떠나 있을 때의 삶도 안정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에 좀 더 집중하며 살게 되더라고요. 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집을 구할 때나 가구를 들여오고 꾸밀 때 이런 부분을 많이 반영하게 되더라고요. 이 가구가 나에게 어떤 부분에서 중요한가, 내가 진정 좋아하는 건가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고, 그 고민의 결과물들로 집을 채웠어요.
소담 씨의 집에 대한 의미를 묻고 싶어요.
저는 한번 촬영을 나가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 이상씩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습니다. 한때는 집은 그냥 잠자는 곳이고, 촬영지에서의 생활이 오히려 내 일상인가 헷갈릴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촬영 나가는 것은 외출과도 같아요.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드디어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아요. 저에게 집은 ʻ나의 일상ʼ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