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선_세번째
강혜선
52세
서울시 노원구 거주
그녀는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소녀였습니다. 무용을 배우고 싶었고,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었고, 책을 출판해보고 싶었습니다. 되는 대로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소녀. 그녀는 가끔 제가 부럽다고 말합니다. 하고 싶은 것은 해보고 마는 행동력과 다양한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것 말입니다. 사실 그녀에게 지금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그녀에게는 지금 거창한 용기보다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을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살아온 삶의 태도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그녀는 따뜻한 사람입니다. 미지근함에서 조금 더 따뜻한 온도를 지닌 사람. 그래서인지 미지근하거나 차가운 사람의 온도가 그녀에겐 더 차갑게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본연의 따뜻함을 숨긴 채로 찬물을 부어가며 원래 그런 온도인 것처럼 사람들을 마주했을 겁니다. 감사하게도 딸인 저는 그녀보다 차가운 온도를 가졌지만, 그녀 덕분에 따스함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를 닮아 감사합니다.
그녀는 등과 목이 굽은 사람입니다. 가끔 그녀를 볼 때면 마치 이 세상에서 주어진 과업을 수행해야만 하는 사람 같아 보입니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미안함과 책임감이 너무 두터이 쌓여 그녀를 굽게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저에게 “엄마의 딸이 너라서 자랑스럽다.”는 말을 하며 “너의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하더군요.
“엄마, 전 엄마의 딸이어서 행복하고 엄마가 저의 엄마라는 게 자랑스러워요. 엄마가 어떤 모습이며, 어떤 상태라고 할지라도 단 한 번도 엄마가 자랑스럽지 않았던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요. 그러니 내려놓고 굽어진 등과 목을 펼쳐 서서히 앞을 보세요. 엄마가 만들어낸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요.”
혜선 님에게도 ‘처음’의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신가요?
스물, 스물한 살 때 아는 언니를 따라 처음 춤추러 갔던 경험이 강렬했어요. 완전 신세계였죠.
처음으로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춤을 신나게 췄어요. 밤새도록. 당시에는 나이트(나이트클럽)가 새벽 4시까지 영업을 했는데 오후 6시 이후부터 준비해서 밤 10시 넘어서 나가서 새벽 6시 전에 집에 들어왔어요. 저희 엄마가 동네 사람들 눈에 띄기 전에 들어오라고 신신당부하셨거든요.
그래도 가지 못하게는 안 하셨네요.
원래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잖아요. 막는다고 안 갈 것도 아니란 걸 아셨던 것 같아요. 아빠는 짧은 치마도 못 입게 하고 엄격하셨지만, 엄마는 “지금 아니면 못 입어.”라는 입장이셨어요. 새벽에 대문도 엄마가 열어주셨다니까요. 나이트 한창 다닐 때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갔던 것 같아요.
어머니와 사이가 각별하실 것 같아요.
너무 각별해서 많이 싸우죠. 제가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는데 엄마한테 그런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괜히 더 자존심 세우고 그랬던 것 같아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고 못되게 굴고 뒤돌아서 후회하고 반복이에요.
‘처음’이라 떨리고 설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제가 제왕절개로 애를 낳았는데 너무 힘들어서 며칠 동안 애를 안 보러 갔어요. 수간호사가 병실로 찾아와서 엄마가 돼서 왜 아기 보러 안 가냐고 화내고 갔을 정도였어요. 당시에는 나를 너무 고생시킨 애도 밉고 다 싫었던 것 같아요. 4일째 되는 날에야 신생아실에 갔어요. 인상을 쓰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애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살면서 제가 그렇게 떨리고 설레었던 건 처음이었어요.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감동이 생생하신가 봐요.
죽을 때까지 이보다 더 감동적인 순간은 없을 거예요. 마치 바다에 파도가 치다가 모래사장까지 잔잔하게 밀려드는 것 같은 감정으로 오더라고요. 아직도 그때의 감동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살면서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아이를 낳게 해 줘서 항상 감사하게 여기고 있어요.
오늘 인터뷰 장소를 어린이 대공원으로 정하셨는데, 원래 자주 오셨었나요?
아이 어렸을 때 많이 왔었고 가장 최근에는 재작년쯤에 왔었던 것 같아요. 공원 걷고 분수 보고 동물원 구경하고 김밥 싸 와서 음료수 하나 사서 잔디밭에 앉아서 먹고 가곤 했어요. 무료이니까 부담 없이 아이 데리고 와서 놀았던 추억이 많아요. 사람이 많지 않고 나무들이 주는 편안함과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잖아요. 또 앉아 있을 수 있는 곳도 많고요. 쉼이 있어서 좋아요.
평소에도 공원이나 산같이 자연이 있는 곳을 자주 다니는 편이세요?
이렇게 산책을 할 수 있는 공원에 가는 것을 좋아해요. 집 근처에 있는 중랑천도 자주 가고요. 최근 갱년기가 오면서 모든 게 귀찮아져서 이전만큼 자주는 못 다니긴 하지만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집에서는 주로 뭐 하며 지내세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 좋아해서 1년에 100권 이상씩 읽곤 했어요. 천천히 문장들 곱씹고 몰입해서 읽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얼마 전부터 딸의 권유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책에 대한 추천이나 리뷰들 찾아보고 제가 인상 깊게 읽은 구절 찍어서 올리고 있어요. 하루 한두 줄이라도 느낀 점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 중이에요.
1년에 100권이라니 정말 많이 읽으셨네요. 좋아하시는 책이나 작가가 있으세요?
최근엔 노안이 와서 예전만큼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만화책이나 동화책 등 장르 안 가리고 다 좋아해요.
일본 만화를 엄청나게 좋아해서 젊을 때 일본 만화 번역하는 일을 하려고도 했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동화 <빨간 머리 앤>은 어렸을 적에 본 책인데 주인공이 다 자란 상태로 끝난 게 아니라 그 이후가 궁금하더라고요. 저도 앤처럼 상상력 풍부한 아이였던 것 같거든요. 앤은 결코 얌전하거나 순진하거나 조용하지 않은 캐릭터인데 그래도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모습에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앤의 배려 있고 용기 있는 면을 닮고 싶어요.
혜선 님에게 용기가 생긴다면 어떤 것부터 하고 싶으세요?
제가 딸이 일곱 살 때 일을 시작해서 올해로 18년째이거든요. 지금까지는 생계를 위해서 하기 싫어도 일을 해야만 했어요. 몸이 기억하는 대로 아침에 습관적으로 일어나서 너무 가기 싫은 데 출근하고 또 급여받은 만큼 일도 해야 하니 아무 생각 없이 일하다가 오잖아요. 이렇게 떠밀려 사는 삶을 딱 벗어던지고
정말 내가 원하는 걸 시작해보고 싶어요.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일은 어떤 걸까요?
제 주변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아주 어려서부터 박완서 작가님처럼 소소한 우리네 일상, 작은 행복을 그리는 글들을 좋아했어요. 마흔이라는 나이에 작가로 데뷔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마지막까지 살다 가셨거든요. 저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남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펜트하우스에 사는 사람들 아니고 일상적이고 평범한 우리 집, 너네 집 이야기요.
그런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거나 계획하는 게 있으신가요?
아직은 소소하게 혼자서 다이어리 앱 같은 거에 하루 한두 문장씩 적고 있어요. 출근길에 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문득 떠오르면 적어두기도 하고요. 미래에 책을 써야겠다는 계획은 있죠. 내가 작가가 돼서 빵 터뜨려야겠다(웃음).
그리고 딸과 책 한 권 만들고 싶어요. 은진이가 그림을 잘 그려요. 가끔 캐릭터나 일러스트 그린 걸 보면 되게 따뜻하고 예뻐서 제가 동화 작가 되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기도 했거든요. 꼭 정식 작가가 아니더라도 함께 작업한 책을 내면 재미있고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상상력과 감수성이 풍부하셔서 따뜻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비슷한 맥락에서 이야기 선생님도 해보고 싶어요. 제가 아이들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나이가 좀 더 들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 돼서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어요. ‘머리 허연 할머니가 읽어주는 이야기’ 이런 거요. 복지관에서 오디오북 목소리 녹음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원봉사도 하고요.
정말 좋은 생각인데요! 오디오북이 나오면 저도 꼭 들어보겠습니다.
혜선 님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50년 넘게 살아보니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믿어서 상처 받을 때도 많지만요. 대학생 때 어느 날 갑자기 집이 망해서 충격이 컸어요. 돈을 버는 방법도, 모으는 방법도 모르겠더라고요. 그전에는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거죠. 알바를 하긴 했지만, 경제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좌절도 크고 부모님 원망을 많이 했어요. 죽게 해달라고 빌기도 했고요. 그런 상황에 부닥치니까 진짜 친구랑 가짜 친구가 확연히 구분되더라고요. 제가 죽었을까 봐 매일 전화해서 확인하고 헐벗어 있을 때도 가서 옷을 사준 친구들이 있었어요. 받지 않는 전화에 계속 자동 응답기에 녹음하고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 걱정해줬어요.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네요.
이 친구들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버티고 열심히 살 수 있게 된 거예요. 정말 감사하죠. 국민학교 때 친구니까 40년 세월을 함께한 거예요. 가끔 삐칠 때도 있고 서로 바쁠 때는 연락 뜸할 때도 있지만 끈끈한 우정을 확인한 사이라 오랜만에 연락해도 어색하지 않고 참 편해요. 친구들 때문에라도 후회하지 않게 살고 싶어요.
그렇다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자신감 있고 당당하고 활기차게 살고 싶습니다. 이제는 제가 평생 직업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오늘이 기대되고 나가서 사람들과 인사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멋진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어요.
늦여름, 초록 잎이 무성한 공원에서 혜선 님을 만났다. 혜선 님은 대화 내내 ‘용기’, ‘자신감’, ‘활기’라는 단어들을 반복했다. 본인은 용기도 없고 변화도 싫어하는 사람이라며 자신을 낮추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가 만난 혜선 님은 여름 같은 사람이었다. 담대하고, 뜨겁고, 경쾌하고 활기찬 느낌. 계절은 바뀌었지만, 여름의 에너지를 지닌 그녀가 시선 밖으로, 두려움 밖으로 한 발 한 발 나가 더 멀리, 더 자주 나가보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