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선_두번째
김미정
54세
경상북도 경주시 거주
Prologue by 딸 고소영
엄마는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 강한 동시에 여린 사람이에요. 특유의 예민함이 섬세한 배려로 나타나기도 하고, 정교한 감각이 되기도 해요.
저희 엄마는 소녀 같으세요. 드라마 대사처럼 무용한 것들을 가장 좋아하시거든요. 구름이 예쁘거나 바람이 좋은 날엔 산책 가실 생각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으세요. 산책 중엔 길가에 있는 식물들을 하나하나 보시면서 느긋하게 걸으시는 편이에요. 허리를 숙여야만 볼 수 있는 작은 꽃들도 한눈에 발견하시곤 해요.
가장 좋아하시는 건 커피와 꽃, 그림과 영화인 거 같아요. 여행 가는 것도 좋아하시고, 요샌 임시 보호 중인 강아지가 가장 큰 기쁨이시래요. 어제는 서쪽 하늘이, 오늘은 동쪽 하늘이 예쁘다는 사실에도 감동하실 만큼 맑고 순수하신 분이에요.
가끔 옛날 얘기를 해주시면 참 신기하면서도 오묘한 기분이 들어요. 제 눈엔 엄마 김미정만 보이는데 그 얘기 속엔 반장 김미정, 제자 김미정, 후배 김미정, 친구 김미정도 보이거든요. 분명 아직도 지금의 저보다 어리셨던 시절이 선명하실 텐데, 그 후로 몇 년이 지나고부터 지금까지 계속 고소영의 엄마로 지내셨을 거 아니에요. ‘엄마’라는 역할 하나 때문에 과하게 많은 걸 감내하시는 거 같아서 죄송할 때가 너무 많아요. 내 엄마로 지내느라 고생 많았고, 그래서 고맙고 또 미안하다고 꼭 말해주고 싶어요.
하나, 그녀의 처음
미정 님에게도 ‘처음’이라 미숙하고 어설펐던 경험이 있나요?
처음 운전을 했을 때요. 제가 20대 때 울산에서 6년 동안 연봉도 높고 안정적인 직장을 다녔어요. 사실 자유롭게 살고 싶었는데 큰 회사에서 속박당하는 기분이라 언제까지 다녀야 하나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사택이 나오긴 했지만, 본가인 경주에서 지내고 싶어서 돈이 모이는 대로 차부터 질렀어요. 면허도 없었는데 말이죠. 주말마다 오빠한테 운전 연수 몇 번 받고 나서 매뉴얼만 보고 새벽 2시에 혼자 몰래 차를 끌고 나갔어요. 동네 주변 몇 바퀴 돌았는데 시동을 몇십 번 꺼트렸는지 몰라요.
연수받자마자 차를 몰고 나가다니 정말 겁이 없으셨네요?
당시 스물셋, 넷 정도 됐을 때라 무서울 게 없었죠. 출퇴근을 위해 운전이 너무 절실했거든요. 그렇게 주말마다 집에 와서 운전 연습 열심히 하면서 급속도로 운전 실력이 늘었던 것 같아요. 그 길로 울산까지 직접 차를 몰고 갔어요. 면허를 따려면 휴가를 써야 했는데 회사 다니면서 시간 내기가 쉽지 않기도 하고 또 시험에 한 번 미끄러지면서 반년 정도를 그 상태로 다닌 것 같아요. 면허 시험 보러 가는 길에 제가 직접 차를 운전해서 갔다니까요.
그럼 면허도 없이 운전했던 거예요?
시골이라 차가 많지 않기도 했고 여성 운전자는 거의 없었을 때라 교통경찰이 많이 봐주기도 했어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제가 20대 땐 스포츠카 몰고 밤에 170-180킬로 달리고 그랬거든요(웃음).
하지만 임신하고부터 운전 습관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엄마가 된다는 것 자체가 이젠 나만의 삶이 아니다 보니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무조건 정속 주행이에요. 30년 넘게 운전했는데 접촉 사고 한 번 낸 적 없어요.
‘처음’이라 떨리고 설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첫 출산, 첫 딸을 낳는 순간이요. 태교를 위해 벽에 붙여놓고 매일같이 보던 똘똘하고 예쁜 아기 사진이 있었는데 이를 똑 닮은 아기가 태어나서 경이로웠어요. 제가 10개월 동안 날마다 태교를 열심히 해왔는데 그 결정체가 눈앞에 나와서 너무 기쁘고 행복했지요.
저는 원래 결혼할 땐 출산 계획이 없었거든요. 집안의 막내로 자라서 그런지 아이는 좋아하지만 제가 엄마가 되어 아기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더라고요. 장남이었던 남편도 상관없다고 동의해서 결혼했는데 덜컥 첫 아이를 임신하게 됐던 거죠.
원래 출산 계획이 없으셨는데 처음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쁜 마음보다는 놀랍거나 당황스럽지는 않으셨어요?
처음엔 엄청 당황스러웠죠. 그렇지만 막상 임신을 하니까 건강하고 튼실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에 태교를 정말 성실하게 했어요.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시간 정해놓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기록도 매일 했고요. 제 인생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 자체가 큰 전환점이 되었어요.
둘, 그녀의 일상
미정 님은 평소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미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서 미술관 다니는 걸 좋아해요. 서울에 올 때마다 미술관은 빼먹지 않고 들리고 큰 전시가 열리면 경주에서 일부러 올라오기도 하고요. 미술관은 일상이면서도 일상 같지 않은 공간 같아요. 미술관에서는 제가 아직 이루지 못한 오래된 꿈을 다른 작가들의 시간과 노력과 감각의 결과물을 통해 느낄 수 있고 그 순간은 나를 가장 나답게 느낄 수 있게 해 주거든요. 그리고 나 자신이 가능성을 지닌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 주곤 해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나요?
앙리 마티스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좋아해요. 그리고 프리다 칼로처럼 색이 강한 그림도 좋아합니다. 집 안 인테리어나 옷들은 무채색이 대부분인데 좋아하는 작품들은 색감이 강한 편이에요. 내면에 강렬한 욕구가 잠재되어 있나 봐요.
개인적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하진 않으세요?
따로 수업을 들으며 배우는 과정에서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제 작품이라고 할 만한 작업은 아직이에요.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나만의 것을 표현해내는데 두려움이 존재하거든요. 아직 제 마음이 안 열린 것 같아요. 언젠가 마음의 준비가 되는 순간이 찾아오면 그 틀을 깨고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미정 님의 작품 활동 기대가 됩니다. 요즘 가장 큰 즐거움은 뭐예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꽃동이와의 시간이요. 꽃동이는 아들이 활동하는 동호회 멤버의 카페에서 키우는 강아지인데 엄청 귀엽고 하는 행동이 예뻐요. 사람도 잘 따르고요. 어릴 때 한 번 파양 경험으로 분리 불안 같은 게 있는데 카페에서는 바쁘니까 잘 못 돌봐서 제가 석 달째 보살펴주고 있어요. 하루에 두 번씩 산책도 시키고 있고요. 서울 오느라 카페에 맡기고 나왔는데 따라오려고 해서 마치 아기 떼어놓는 심정이었어요.
셋, 그녀의 꿈
어린 시절 김미정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2남 2녀 중 막내 늦둥이로 태어나서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복 받고 태어난 거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마냥 예뻐해 주시고 제 존재만으로도 사랑해주셨지요. 어머니가 칭찬을 많이 해주고 항상 긍정적으로 말씀해주셔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 것 같아요.
제가 크면 공주처럼 궁에서 살 줄 알았다니까요(웃음).
진짜로 어릴 적 꿈이 궁에서 사는 거였다고요?
10대 이전까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릴 때, 공주처럼 자라서 그런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언제부터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색채와 미적 감각이 발달한 편이어서 자연스럽게 미술 쪽으로 진로를 생각했어요. 어릴 적부터 다양한 색으로 표현하고 매치하는 게 즐거웠거든요. 그렇지만 고등학교 때 미술 입시를 준비하다가 갑자기 진로를 변경하게 되어 미술 전공을 하지는 못했어요.
많이 아쉬우셨겠어요.
그랬죠. 제 뜻과는 다른 방향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제가 그걸 바꾸거나 거스르기보다는 처해 있는 환경 내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는 단기간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성향은 아니라 긴 호흡으로 무언가를 향해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거라고 믿거든요.
그때를 기다리며 준비하거나 노력하는 게 있으실까요? -
특별한 성취를 위한 건 아니고 일상에서 자연이나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고 들여다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사람을 볼 때도 껍데기보다는 내면과 그 사람 자체를 보려고 하죠. 평소 미술 전시도 자주 다니고요.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미적으로 표현하고 싶을 때가 오겠죠.
미정 님 일상 속에 이미 미술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또 다른 관심 분야나 새롭게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세요?
제가 공간 인테리어 쪽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건축 분야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하니까 열 살 많은 큰 오빠가 건축학과 진학을 권유하기도 했었거든요. 당시에는 건축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흘려들었는데 점차 구조적인 거나 건축물들에 흥미를 갖고 좋아하게 됐어요.
건축에 대한 프로그램도 많이 보고 건축가 승효상 씨를 좋아해서 그분 책은 나오면 다 보는 편이에요. 이젠 기억력도 나빠져서 본격적으로 수업을 듣거나 공부를 한다기보다는 멋진 건축물들 많이 찾아서 보고 즐기면서 감각을 기르고 확장시키고 싶어요.
그럼 나중에 직접 집을 지을 계획도 있으세요?
네, 가까운 미래에 예쁘고 작은 산을 사서 저의 집을 짓고, 꽃과 풀이 피고 지는 걸 보고 느끼며 살고 싶어요. 유행에 민감하지 않고 50년, 100년 뒤에도 지속 가능할 수 있는 주택을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집의 외형적인 부분을 고민하고 남편은 수익과 연계해서 안정적으로 사업화하는 방향에 대해 같이 그려나가는 중이에요. 전문적인 일은 이미 잘하는 분들이 있으니까 맡기겠지만 저는 온전히 나와 가족들을 위한 집을 고민하고 최적화된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보는 눈을 길러나가야죠.
이미 다 계획이 있으시네요. 너무 멋진데요?
계획이라기보다는 그냥 하루하루가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가는 거예요. 저는 엄청 자연을 좋아하거든요.
거기 가야만 호흡이 좀 잘 되고 깊이 되는 걸 느껴요.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다 보면 응어리도 풀어지고 내면에 잠자고 있는 욕구가 폭발되어 그림이 나올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느리게 가는 거죠.
Epilogue(by interviewer)
성인이 되고 꿈을 이야기하는 게 어쩐지 머쓱하다. 취업준비생이나 사회 초년생 시절 에는 ‘진로’나 ‘희망 업종/직무’같이 좀 더 현실적인 단어들로 대체되었다가 그나마도 한 해 두 해 지나며 대화에서 점점 자리를 잃는다. 모름지기 100세 시대인데 어린 시절 에만 꿈에 대해 묻고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는 건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미정 님과의 대화를 통해 인생의 속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단기간에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애쓰는 삶도 있지만 그저 주어진 하루를 어제와 같이 성실히 살아가는 삶도 있을 수 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하다면 꿈을 이루는 시점이나 속도는 크게 문제 될 것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