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세종고 박창순 선생님
폭우가 쏟아지던 여름날, 국어교사 박창순 선생님을 만나러 세종고등학교를 방문했다. 인터뷰를 시작하니 SNS에서 보던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선생님은 어디 가고 쑥스러워 뚝딱거리는 청년이 앉아있다. 이렇게 수줍음이 많아서 어떻게 교단에 서고, 학생들을 가르치는지 신기할 따름. 알면 알수록 그는 누구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하고재비이자,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인기쟁이 선생님. 오늘도 그는 학생들과 지역 곳곳의 문제를 찾아다니며 해결사로 활약 중이다.
어릴 적부터 장래 희망이 선생님이셨나요?
저는 어릴 때 부산에 있는 분교 초등학교를 나왔어요. 전교생이 4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시골 학교이다 보니 친구들도 많이 없어서 선생님이랑 가깝게 지내며 많이 놀았거든요. 그때 영향을 많이 받아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럼 교사 생활을 하면서 밀양으로 오신 건가요?
네, 세종중학교로 첫 부임하면서 밀양에 오게 되어 7년째 지내고 있어요. 밀양에 연고가 있지는 않고 대학교 때 MT로만 와봤던 곳이에요.
학생들과 잘 어울리시던데 비결이 있을까요?
특별한 건 없고 어릴 때 같이 놀아주시던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학생들하고 가깝게 지내면서 놀아주려고 하고 있어요. 어떨 때는 제가 학생들보다 철이 없을 때도 있는 것 같고요(웃음). 돈이 좀 들긴 하지만 학생들과 회식도 자주 하면서 친근하고 편한 이미지를 갖게 된 것 같아요.
학생들과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하셨던데요.
2019년부터 사회 참여 동아리를 하게 되면서 학생들이랑 다양한 주제로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주로 환경 친화, 노인 친화 도시를 만들기 위한 활동들을 진행했어요. 장애인복지관이나 종합사회복지관과 MOU를 맺고 노약자들의 키오스크 문제라던가 가로등이 부족해서 야간에 통행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어요. 밀양에는 전통 휠체어가 특히 많아서 야간 빛 반사 스티커를 제작해서 붙이는 활동도 했었고요. 환경 친화 활동으로는 농촌 지역에 분리수거함을 설치한다거나 밀양강 플로깅 코스 안내판 설치하는 일도 했었어요.
최근 세종중에서 세종고로 옮기셨는데 고등학생들과도 비슷한 주제로 활동을 이어가시나요?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현재 당면한 주제를 가지고 동아리 비전을 설정했거든요. 쓰레기 문제, 횡단보도 문제 이런 단편적인 주제였는데 고등학교 오니까 학생들이 동아리 비전을 ‘지속 가능한 밀양 만들기’로 설정하더라고요. 밀양이 지속가능하려면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하니까 밀양을 오고 싶고, 살기 좋게 하기 위한 방법들을 계속 고민하고 활동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깊은 고민이 묻어나는 비전이네요. 올해 진행 중인 프로젝트 내용 구체적으로 소개 부탁드려요.
학생들과 회의에서 밀양의 문제점이 뭘까 논의해 봤는데 ‘전통시장 살리기’와 ‘꿀벌 살리기’를 주제로 활동하기로 했어요. 주변에 파크골프장이 너무 많이 생기고, 농약 치는 것도 학생들이 많이 보다 보니까 이런 것도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서 학생들이 굿즈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활동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밀양의 시장과 주변을 소재로 학생들이 직접 디자인하고 주변 친구들에게 홍보해서 10대들도 시장에 오게 하려는 취지예요. 지난여름방학 때 학생들이 시장 상인들하고 고객들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고 상인들 글씨체도 받아서 ‘밀양 아즈매’ 폰트도 제작하고요. ‘밀양 아즈매’라는 어감이 다른 지역 분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거 같아요.
학생들이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이 크겠어요. 동아리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현재 총 16명이고 2~3학년생들을 중심으로 총무부, 기획부, 마케팅부, 디자인부로 나뉘어 있어요. 세종중학교 때부터 활동했던 남학생들이 절반 정도 되다 보니 중학생 때 못했던 부분들을 더 발전시키고 싶어 하고, 또 새로운 멤버들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시너지가 나는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회의하고 총무부에서는 회의록도 작성해요. 이런 과정을 모아서 연말에 활동 보고서로 책 한 권을 만들어 주면 뿌듯해하면서 가족들에게 자랑하기도 하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셨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처음에 동아리가 만들어질 때는 정말 사소한 동기에서였어요. 학생들이 등굣길에 우회전 차량으로 인해 위험했던 경험을 하면서 ‘이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어요. 동아리 학생들과 UCC를 찍어 올리고 지역 맘 카페에 하소연도 해보고, 우회전 차량이 많은 곳에 가서 피켓 시위도 했었죠. 지역 사회에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알리는 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경찰에서도 우회전 신호등을 만들었더라고요. 저희가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학생들과 이런 변화를 만들었다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고 그 후 여러 가지 활동들을 이어가게 되었어요. 우리 동아리에 지원하는 학생들도 많아졌고요. 학생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직간접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지역 안에서 공감을 얻고 개선이 되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활동들도 있고, 어려움도 있을 텐데요.
일단 프로젝트를 할 때 동아리 친구들만이 해낼 수 없는 것들이 많거든요. 지자체나 관련 기관에 협조 요청을 부탁드리는데 그때마다 거절의 답변이 나올 때가 많아요. 예전에 독거노인을 위한 팔찌를 만들어서 판매 활동을 할 때도 시청이나 국세청 쪽에 문의했더니 청소년이 그런 판매행위를 하는 건 안 되니 오프라인 판매 장소를 내줄 수도 없고 판매하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학생들이 크게 좌절했죠. 그런데 그걸 또 스스로 이겨내더라고요. 우리가 이렇게 해보면 어때? 이렇게 해보면 어때? 하면서 결국에 당근마켓을 통해 판매하고 밀양의 맘 카페에도 ‘세종중학교 학생인데 우리가 이런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도와주세요.’ 이야기하니까 밀양 주민들이 차를 타고 팔찌 구매하러 학교로 계속 오셨어요. 학교에서는 제가 대신 휴대전화를 맡았는데 계속 연락이 오더라고요. 활동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학생들 스스로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과정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기특하고 뿌듯하시겠어요.
학부모님들께서 이 활동을 긍정적으로 보시고 자녀를 세종중학교로 보내서 사회 참여 동아리에 들어가게 해야겠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어느 날은 지나가던 시민이 학생들 활동을 보고 먹을 것을 챙겨주시기도 하고요. 덕분에 저와 학생들도 또 뿌듯함을 느끼고요. 학생들에게 공이 돌아가야 하니까 저는 상장이라도 하나 더 주려고 교내상이나 인정받을 기회들을 계속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밀양은 인구 감소 지역이고 특히 청년 유출 문제도 심각하잖아요. 학업이나 일자리를 위해 대도시로 나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도 많을 테고요. ‘지속가능한 밀양’을 만들기를 위해 청년들에게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제가 느낀 거는 밀양에 있는 학생들이 사실 밀양에 대해서 잘 몰라요. 등교할 때도 부모님 차를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고 친구랑 놀러 갈 때도 대구나 창원, 부산 인근으로 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밀양 지역 내에서 직접 친구들이랑 놀아보고 구경 가보고 이런 경험들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밀양에 대해서 친구들이 좀 더 알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나 자신들이 직접 밀양에서 무언가 해낸 경험을 축적해 놓을 수 있으면 나중에 진학이나 취직으로 떠나더라도 고향에 애착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면 밀양의 어느 벽면을 맡아서 자기가 타일을 꾸미고 이름을 적어 본다던가,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을 수 있다면 애정이 더 커지지 않을까요.
저희 소통협력센터에서도 청소년들과 함께 프로젝트 진행해 볼 수 있는 기회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청소년들이 살기 좋은 밀양이 되기 위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요즘 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 복지관에서 하는 컴퓨터 게임 대회이더라고요. 이렇게 청소년들이 관심사를 바탕으로 모일 수 있는 곳들이 많아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행복 교육지구 사업으로 시장 쪽에 조성된 공간도 있기는 한데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기에는 거리감이 있어 보여요. 고등학생 중에는 춤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장소가 마땅하지 않으니까 그냥 운동장에서 카메라 틀어놓고 연습하고 그러거든요. 수업 늦게 끝나고도 시간에 구속받지 않고 언제든지 편하게 가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이 생기면 좋겠어요.
*해당 인터뷰는 2023.9.30에 발행된 뉴스레터 <먼슬리밀양>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