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바로 당신이 승진하지 못한 이유다.
성과는 완벽하고 평판은 무결한데, 승진 명단에서만 내 이름이 지워졌을 때 우리는 흔히 ‘배신감’을 말합니다.
‘내가 부족한가’라는 자기 비난과 ‘조직이 나를 속였다’는 원망 사이를 오가며 커리어의 방향을 잃기도 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회사에서 승진은 과거의 성과에 주는 포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음 게임을 이기기 위해 가장 적합한 ‘말’을 전진 배치하는 지극히 차가운 전략적 선택입니다.
과거의 성과에 대한 인정은 보너스, 인센티브입니다. 맞죠?
저는 외국인 매니저로부터 승진은 또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라고 코칭받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친구들을 보면서 이 부분을 빼 놓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시즌입니다.
조직은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챙겨줘야 할 사람, 이번에 승진할 사람을 꼽는 건 20년 전 우리나라의 문화입니다. 회사는 오직 다음 국면에서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를 계산할 뿐입니다. 그 계산표 안에서 개인의 성실함은 상수일 뿐,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질문은 "내가 일을 잘했는가"가 아니라, "지금 조직이 설계하는 다음 장면에 내 모양이 맞는가"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 질문이 잔인하게 들리는 이유는,
승진은 당신의 노력과 무관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조직에서 승진은 ‘가장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 필요한 변화를 상징하는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외국 기업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중간관리자 A는 부서 내에서 꼼꼼하게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평판이 확고했습니다. 요즘은 유치하게 들려도 가끔 A를 표현할 때 칭찬 반, 비꼼 반으로 ‘Flawless’ 무결점이라는 말을 쓰곤 했습니다. 단 한 번의 운영 사고도 없었고, 팀원들의 신뢰도 생기고 있었구요. 그는 조직의 안정성을 책임지는 가장 단단한 '방패' 역할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미지 관리라는 말을 쓰지만, 정확히는 그 사람에 대해서 평판은 영어로 Perception Management라고 해야 한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인식, 인지 즉 Perception이 방패 역할의 훌륭한 수비수로 굳어져 가는데 아무런 관리(Management)를 하지 않았던 A 였습니다.
(이미지 관리 X, Perception Management O)
그러나 승진의 기회는 늘 잦은 마찰을 빚으면서도 공격적인 확장을 밀어붙인 옆 부서의 B에게 돌아갔습니다.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조직이 '리스크 관리'가 아닌 '시장 점유율 탈환' 혹은 우리 회사가 선별한 우수 고객사가 시장에서 경쟁사를 이기기 위한 전폭적 지원…이라는 공격적인 국면으로 진입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양상이 바뀌면, 조직은 가장 견고한 방패를 창고에 넣어두고, 조금 이가 빠졌더라도 가장 날카로운 '창'을 꺼내서 써야 한다는 최고위 경영진의 전략이 세워졌습니다.
A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조직이 필요로 하는 '무기의 종류'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첫 번째 승진 누락은 운이나 타이밍 같은 ‘사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누락은 명확한 ‘구조적 신호’입니다. 이 지점부터는 감정이 아니라 판세를 읽어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내 모양을 깎아서라도 바뀐 판에 맞출 것인가, 아니면 내 모양을 절실히 원하는 다른 판을 찾을 것인가.
조직의 요구에 맞춰 나를 재정의하는 것이 커리어의 확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적인 자기 부정과 소모로 이어진다면 그 선택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언젠가는 알아주겠지’라는 막연한 충성심으로 버티지만,
조직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직 결과를 침묵으로 답할 뿐입니다.
승진 누락을 두고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냉정한 ‘해석’입니다. 승진에서 누락되었다는 사실이 당신의 가치를 규정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 신호를 어떻게 읽고 어떤 패를 던지는지는 당신의 다음 10년 커리어를 완전히 갈라놓을 것입니다.
조직은 당신의 서운함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이미 조용히 다음 수를 생각하는 것이 조직과 최고위 경영진입니다.
혹시 아직도 지나간 판을 복기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