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도, 출장도, 모든 여행이 멈추어 버린 지금 세상에 출간한 <오늘도 여행을 생각합니다>입니다. 브런치에 쓰기 시작한 글들이 브런치북이 되었고, 드디어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프롤로그 - 여행, 깊어져 가는 마음의 병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요즘이다. 팬데믹은 일상의 모습을 바꾸었다. 그리고, 모든 여행을 멈추어 버렸다. 휴가 시즌이 되어도 휴가 계획으로 마음이 들뜨기는커녕, 여행을 생각하면 깊어져 가는 마음의 병을 앓게 되었다. 여행 후 2주간의 격리를 감내하면 떠날 수 있는 곳을 일부 찾을 수 있지만, 쉽게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을 계획하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여행 상사병을 앓게 되었다. 치료 방법은 시간뿐이다. 1, 2년이 걸릴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를 일이니 마음의 병은 깊어만 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엘 아테네오>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19년에 떠난 지구 한 바퀴 여행을 준비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10년 전, 여러 나라로 출장을 다니던 어느 날 비행기 옆자리에 그 항공사의 임원 한 분이 앉으셨다. 항공사 직원이라 출장이 잦은 편이라고 하시면서 마일리지에 대한 깜짝 놀랄 만한 정보를 주셨다.
마일리지를 적립하면 항공사에서는 공짜 항공권을 제공해 주는데, 가까운 아시아 국가는 3만 마일리지면 왕복 항공권으로 교환할 수 있고, 유럽이나 북미의 경우 7만 마일리지를 적립하면 공짜로 왕복 항공권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나도 잘 아는 정보였다. 그런데, 14만 마일리지를 모으면 규정에 따라 항공 동맹, 얼라이언스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지구 한 바퀴, Round the World’ 항공권을 공짜로 제공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22만 마일리지를 적립하면 전 일정 비즈니스석으로 세계일주 보너스 항공권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도 주셨다. 해외 출장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많았던 사회 초년생 시절에 얻은 깜짝 놀랄 만한 정보였다. 출장을 마친 후에도 ‘지구 한 바퀴 보너스 항공권’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28만 마일이면 이코노미 좌석으로 세계일주 보너스 항공권 두 장을, 44만 마일을 적립하면 전 구간 비즈니스 좌석으로 비행할 수 있는 세계일주 보너스 항공권 두 장을 받을 수 있다. ‘R.T.W.(Round The World)’라고 부르는 마일리지 보너스 프로그램으로 총 9번까지 비행기를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올 수 있다. 약간 복잡한 내용이 있었지만 R.T.W. 규정을 읽을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로 마일리지 적립을 위해서 한 군데 항공사만 이용하기로 하고, 모든 대금결제는 마일리지 적립률이 높은 한 장의 신용카드만 사용했다. 항공사든 카드사든 ‘한 놈만 패자’는 원칙을 세웠다. 미국이나 유럽으로 장거리 출장을 다닐 때마다 적립되는 마일리지를 확인했지만 겨우 1만 마일씩 늘어났다. 도쿄 출장을 다녀오면 1,500마일 정도, 싱가포르 출장을 다녀와도 5,000마일 조금 넘게 적립이 늘어날 뿐이었다. 엄청난 마일리지를 ‘언제 다 모을 수 있을까? 가능한 일이기나 할까?’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커리어가 쌓여갈수록 해외 출장이 잦았던 직업의 특성 덕분에 1년, 2년, 5년… 10년을 일했더니 결국 45만 마일리지를 돌파하는 순간이 왔다. 중간에 여러 번 휴가를 위해서 적립된 마일리지를 사용할 뻔하였으나 10년을 꾹 참고 모았더니 45만 마일리지가 쌓여 있었다.
비행기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지구 한 바퀴 세계일주 여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백만 원이 넘는 세금과 유류할증료를 결제해야 한다. 긴 여정에 필요한 여행경비도 꽤 큰 금액이었다. 허니문으로 떠나는 45일간의 세계일주 여행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호텔도 꼼꼼하게 확인하고 예약하였다. 북반구와 남반구를 한 번에 다녀야 하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라는 변수도 있었고, 안전을 고려하여 루트를 정하고, 긴 여행이라 건강관리에도 신경이 쓰였다. 걱정도 되었지만 결혼식을 무사히 치르고, 6개월을 더 준비하여 뉴욕행 허니문 비행기에 올랐다. 10여 년의 기다림이 준 선물이 더욱 특별할 수 있었던 건 보너스 마일리지 항공권으로 떠나는 지구 한 바퀴 신혼여행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성장하면서 ‘특별한 시점’을 기준으로, 전과 후에 큰 변화를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가장 먼저 겪는 ‘특별한 시점’은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교에 입학하는 시점이다. 수능시험을 치르기 전에는 부모님의 보호와 지원으로 성장하는 시기이다.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하면 성인이 되어 독립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큰 변화를 겪는다. ‘결혼의 전과 후’, ‘출산의 전과 후’도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중요한 변화를 겪는 시점이다. 전에 없던 큰 책임감이 생기고, 큰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순간이다. 지구 한 바퀴 세계일주 여행이거나, 먼 나라로 떠나는 여행은 수능시험처럼 인생에서 의미 있는 ‘특별한 시점’이 된다. 여행을 사이에 두고 ‘여행 전’과 ‘여행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수 있다.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큰 즐거움을 경험한다면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과 감사함을 가슴에 담아 온다. 고생을 경험한다면 다음번 시행착오를 피해 갈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
오늘도 마스크 없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생각합니다
팬데믹의 ‘전과 후’에도 분명한 변화가 있을 것이다. 당분간은 비행기 캐빈에 앉아 여행지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카페에 앉아서 책으로, 소파나 침대에 누워서 영상으로 여행을 대신해야 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팬데믹이라는 변화를 피할 수도 없다. 다만 팬데믹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야 할 뿐이다. 여행, 깊어져만 가는 마음의 병이 되었다. 일상으로 돌아갈 긴 기다림의 시간만이 치료제가 되는 불치병이 되었다. 깊어져 가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언젠가 다시 깜짝 놀랄 만한 여행을 바라는 독자님께, 이 책 『오늘도 여행을 생각합니다』가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