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반납함!? 그 책이 왜 거기서 나와?
도서관 외부에는 무인반납함(또는 무인반납기계)이 있습니다. 무인반납함은 도서관 운영시간 외에 이용자가 반납할 자료를 넣는 함(또는 기계)을 말하며 도서관 운영이 끝날 때쯤 함을 열어둡니다. 즉 도서관 문을 닫은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반납함에 이용자가 책을 넣으면 직원이 반납하는 것이죠.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많은 도서관들이 운영시간 내에도 무인반납함을 상시 열어둡니다. 반납만 하는 이용자들이 굳이 도서관까지 출입하지 않도록 말이죠. 대부분의 도서관은 오픈 준비시간에 무인반납함 자료를 처리합니다. 직원들은 반납일자가 전날이 되게끔 변경한 후 이용자가 넣은 자료를 한 권 한 권 반납합니다. 만약 전날이 휴관이었다면 도서관을 운영했던 그저께 일자로 반납일자를 변경합니다.
자료실에서 붙박이 근무를 하다 보면 무인반납함 도서를 매일 처리하는데도 간혹 반납이 누락된 채로 서가에 꽂히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런 실수를 하고 나면 더 꼼꼼히 확인하지만 무인반납함 외에도 여러 직원들이 수많은 도서를 운영시간 내내 여기저기에서 반납하기 때문에 처리가 안된 채로 서가에 꽂히는 책들은 꾸준히 나옵니다.
"분명히 그 책도 다 같이 반납했다고요!"
민원을 담당할 때, 어느 이용자 한 분이 '며칠 전 무인반납함에 분명히 책을 넣었는데 지금 연체가 됐고 자료실 직원이 대출을 못해준다더라,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헛걸음을 해야 하냐, 지금 당장 책을 찾아보라'며 화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흥분한 사람한테는 설명보다 즉각적인 액션이 좋겠다 싶어 대출이력을 확인하고 책을 찾으러 곧바로 서가에 갔습니다. 역시나 책은 해당 자리에 없었고, 혹시나 다른 곳에 꽂혔을까 싶어 주변 서가도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가능성을 열고 다른 자료실에서 그 책과 동일한 청구기호가 있는 자리를 확인했지만 여전히 책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혹시 모르니 집에서 다시 한번 찾아봐 주시길 부탁드려요"
이용자에게 '책을 찾아봤지만 현재로서는 책이 보이지 않으니, 오후에 다시 한번 책을 찾아보겠다. 이용자님도 집에서 한번 더 찾아보시고 연락을 주셔라. 만약 저희가 먼저 찾으면 연락드리겠다'고 안내했습니다. 하지만 도서관의 실수라고 믿는 이용자는 'CCTV를 확인해라! 난 분명히 그날 반납할 책을 무인반납함에 모두 넣었고 도서관측이 일처리를 잘못한 건데 내가 이 책(오늘 대출할 책)을 빌리러 또 와야 하냐'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현재로서는 누구의 실수인지 알 수 없지만 그분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가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도서를 대출해드렸습니다. 그제야 이용자가 떠나고 소강상태가 됐습니다. 무인반납함을 비추는 CCTV를 확인했지만 화질이 좋지 않아 권수를 헤아리긴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책을 넣는 모습이 확인됐고 그분의 확신도 매우 강했기에 다시 한번 직원들과 도서관 서가를 샅샅이 둘러보았습니다.
책이 제자리에 꽂혀 있으면 쉽게 해결될 문제지만 책의 행방을 알 수 없을 때는 여러모로 곤혹스럽습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이용자 편의를 위해 무조건 대출을 해드리면 직원들도 편하겠지만 일부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편한 대로만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가령 본인이 도서를 잃어버리고 반납했으니까 대출이나 빨리 해달라고 무례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다른 도서관에서 이용자가 책을 잘못 반납했다며 저희 도서관으로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음)
제 경험상 '빌린 책 다 반납했는데 여전히 책 한 권이 대출 중으로 남아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7~8할은 결국 자택에서 책을 발견했습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책이 얇아서 다른 책 사이에 끼어 있었다, 소파 밑에 있더라, 남편이 반납한다고 가져갔는데 차량 뒷좌석에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 가져갔더라, 다른 도서관에 반납했다' 등등. 자신의 착오임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용자도 있지만 어물쩍 넘어가거나 잠적하는 이용자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직원 실수로 누락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서들은 최선을 다해 행방불명인 책들을 짧게는 하루, 길게는 며칠 동안 찾아야 합니다. 그날은 결국 책을 찾지 못하고 하루가 끝나버렸습니다.
"찾았다!!!! 근데 이 책이 왜 여기에 들어있지?"
다음 날, 도서관 오픈 준비를 하며 무인반납함 도서를 처리하는데 오매불망 찾던 책이 서가가 아닌 무인반납함에서 나왔습니다. '혹시 누가 반납이 안 된 채로 꽂힌 그 책을 가져갔다가 반납함에 넣은 건가'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머지않아 진범(?)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책을 찾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려 이용자에게 몇 번이나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고, '부재중 기록이 남았으니 전화 주시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퇴근할 때쯤, '아... 이용자 착각이었구나!' 생각이 들었고 그 책을 찾기 위해 여러 직원이 온 서가를 샅샅이 뒤지며 많은 시간을 들였는데 알고 보니 도서관에 없는 책을 찾으려 했다니, 괜한 허탈감과 배신감마저 들었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