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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살이 Oct 31. 2021

걸어서 제주 한 바퀴! 3

세 번째 이야기, 나 자신을 알아간 둘째 주!

8일 차

 지난 일주일은 참가자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한 주였다. 결국 앞뒤 일정을 조정해 오늘은 가파도만 걷기로 했다. 바뀐 일정 덕분에 여유로운 아침을 맞았다. 게하 앞마당에서 조식으로 나오는 토스트, 샐러드, 커피를 먹고 나니 행복 회로가 마구마구 돌았다. 더 행복한 것은 숙소에 무거운 배낭을 두고 가벼운 차림으로 섬을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이다. 1시간쯤 차를 타고 도착한 운진항 대합실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전 11시, 여객선이 '뿌우우' 경적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가파도행 정기여객선 블루레이 1호


 가파도까지 10분 정도 걸리는데 출발하자마자 뱃멀미가 났다. 거친 파도를 만날 때마다 눈을 감고 속을 다스렸다. 배가 크게 출렁이는 순간은 배 안의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으아..!'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괴로움의 탄식인지 놀라움의 감탄인지 알 수 없지만 4D 영화관 같아 웃음이 났다.



가파도 터미널 근처에서 자전거를 대여하는 사람들

 가파도 선착장 근처 자전거 대여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빌리고 있었다. 한국 유인도 중 가장 낮고 평평한 가파도는 자전거를 타기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나는 탈 수 없었다. 당연히 올레길을 걸어야 하기도 했지만 오늘은 '클린올레'를 참여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클린올레'는 환경 캠페인으로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다. 가파도를 걸으며 센터에서 미리 받아온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길은 생각보다 깨끗했고 청보리 밭에 가니 스티로폼이나 커다란 비닐과 같은 농사용 쓰레기들이 더러 보였다. 부피가 컸지만 살뜰히 봉투에 주워 담았다. *줍깅을 하다가 필요한 물건을 사러 슈퍼에 들렀는데 주인분께서 '좋은 일 해줘서 고맙다'며 커피 한 잔을 내려 주셨다. '더 열심히 주울게요'라는 말과 함께 감사 인사를 드렸다. 슈퍼 주인은 앞으로도 '클린올레'를 하는 사람들에게 고맙다며 커피를 건넬 것이다. 가파도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는 건 자신의 동네를 사랑한다는 뜻 아닐까? 가파도를 사랑하는 그분의 마음을 본받고 싶었다. 나는 우리 동네를 얼마나 아끼고 있을까? 집에 돌아가면 쑥스러워도(?) 동네 쓰레기를 주워야겠다! 나아가 지구도 사랑해줘야지! 가파도에서 쓰레기 줍길 정말 잘했다!  


*줍깅 : 스웨덴어 '줍다(plocka up)'와 영어 '달리기(jogging)'의 합성어인 ‘플로깅(plogging)’ 봉사활동으로 걷거나 뛰면서 길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활동


평지로 이루어진 가파도 해안길


 


9일 차

 오전 7시부터 걷기 시작한 올레길 8코스 (예래동 해안가 근처)에서 조깅하는 사람을 보았다. 아침햇살로 반짝거리는 절벽을 보며 조깅하는 삶은 어떤지 묻고 싶었다. 저 장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질 것 같은데 말이다. 다시 한번 '제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일단 정착하려면 목돈도 필요하고 직업도 구해야 하는데 여기서 뭘 할 수 있지?' 고민하다 '에이~됐다! 지금은 아니다. 일단 살던 대로 살자'로 끝났다. 어느덧 중간 스탬프가 있는 주상절리에 도착했다. 입장권을 구매하고 들어간 주상절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깊고 맑은 바닷물이 절벽에 치솟아 하얗게 부서지는 장면은 눈과 귀를 시원하게 해 줬다. 주상절리인 다각형 돌기둥은 모르고 보면 누군가 반듯하게 깎아 놓은 것 같은데 100% 자연이 만들었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을 계속 읽었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튼 고온의 용암이 급격히 냉각되는 과정에서 수축작용에 의해 생겨난 "틈"을 말한다고 한다. 매혹적인 절경에 취해 30분이나 머물렀고 걸음을 재촉하다 중간 스탬프를 깜박하고 말았다. 모든 올레길의 시작, 중간, 종점에는 스탬프가 있다. 올레 패스포트에 모든 스탬프를 찍어야 올레 완주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일이다. 30분쯤 걷고 나서야 번뜩 생각이 났지만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건 아주 큰마음이 필요하다. 주상절리 입장권과 사진이 있으니 이거로라도 사정을 해봐야겠다 생각했는데 다행히 시작과 종점 스탬프가 아닌 중간 스탬프는 2-3개 정도 누락돼도 완주 인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주상절리대 (서귀포시 중문 위치)


 걷는 길에 마땅한 식당이 없기도 했지만 특별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이유는 그간 걸은 날 중 오늘이 가장 더웠기 때문이다. 아스팔트 위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내 속도 지글지글 탔다. 덕분에 너무 힘들면 내 입맛이 사라진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상태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를 때는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인정머리 없는 저 놈의 오르막은 쳐다도 보지 않고 땅만 보고 걸었다.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땅 속으로 에너지가 훅훅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걷는 것에만 집중한다. 상상 이상으로 걷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고장 난 로봇처럼 다리가 멈추질 않는다. 가령 이런 것이다.


올레길 안내문


 걷다가 '곶자왈'이 무엇인지 설명해 놓은 안내문을 보면 읽고 싶지만 다리는 그럴 생각이 없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는 앞을 향해 걷는다. 결국 안내문 중 초반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까지만 보게 된다. 한 문장을 온전히 읽지 못해 '그다음은 뭐지? 마구 자란다는 건가? 아니면 마구 버려졌다는 건가? 도대체 뭐지?' 혼자 생각하다가 결국 인터넷에 검색한다. '아.. 마구 엉클어져 있는 숲을 곶자왈이라고 하는구나..' 지나치게 운동을 하다 보면 도파민이 과다 분비돼 운동중독으로 이어진다고 하던데, 고장 난 내 다리도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지나고 평온함이 찾아들 때는 발걸음이 가볍고 속도도 빨라진다. 심한 경우 (짧게) 뛰기도 한다. 하하하하ㅏㅏ



 숙소 예약의 어려움이 있어 어제 묵었던 게하에서 연박을 하게 됐고 오늘 걸은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오후 5시쯤 최종 목적지에 도착해 숙소까지 차를 타고 이동했다.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뒷좌석에 앉아 하루 종일 걸어온 길을 빠르게 되돌아 가는데 기분이 요상했다. '엇! 저거 아까 봤던 건데!', '오늘 저기서 진짜 힘들었는데..' 걸으며 느꼈던 즐거움과 괴로움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차로 가면 이렇게나 짧은 거리를 나는 무엇 때문에 한 땀 한 땀 걸었던 것일까. 나조차 궁금했다. 이렇게 걷는다고 내가 가진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삼시 세 끼 줄 테니 매일 7시간씩 걸어볼래?'라고 누군가 제안한다면 해볼 의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걷기 중독인가?!)


이국적인 야자수 길


올레길 10코스 (황우치 해변 인근)


올레길 10코스 (사계리 해안 인근)



10일 차

 한 번에 여러 토끼를 잡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 주어진 길을 모두 걷는 것, 내 안을 들여다 보고 성찰하는 것, 아름다운 길과 자연을 만끽하는 것, 걷는 길에 맛집을 들러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 분야를 막론하고 무엇이든 깨달음을 얻는 것. 이 외에도 제주를 걸으며 이루고 싶은 것은 많았다. 하지만 걸으면서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맛집도 들르고 나 자신도 돌아보고 주어진 길도 잘 걷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중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 싶은가 고민했고, 주어진 길을 부지런히 걸으며 나를 알아가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었다. 이 모든 걸 두루두루 잘하는 참가자도 있었지만 내게는 그럴만한 재간이 없었다. ‘나는 왜 안 되지’ 원망도 해보고 따라도 해봤지만 결국 체력 소비, 감정 소모만 심해졌다. 폭풍 같은 내적 갈등을 겪은 후에야  '아.. 나는 안되는구나' 인정하고 내려놓게 되었다. (No pain, no gain!)


걷다가 만난 메밀꽃 밭




 어릴 적 보았던 노랑나비를 올레길에서 자주 마주쳤다. 나비도 육지가 살기 힘들어 제주로 이주한 건가? 아니면 내가 못 봤던 건가?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언제부턴가 노랑나비를 보기가 어려웠고 내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져 갔다. 초록이 무성한 제주 숲을 걷다 보면 가냘픈 날개를 팔랑거리는 노랑나비기 유독 눈에 띄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닐 때 나비를 그리면 항상 노랑나비를 그렸던 탓인지 어릴 적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무늬가 화려한 나비도 멋있지만 한 가지 색으로 이뤄진 민무늬 노랑나비는 자태가 곱고 순수하다. 거기에 귀여움까지 묻어있다. 심플 이즈 베스트다! 정말!  


제주 오설록 녹차밭


11일 차

 새벽 6시에 일어나 떠날 채비를 했다. 조용히 준비한다고 했는데 방음이 잘 안 되는 게하 특성상 다른 방에 주무시던 50대 중년 남성분이 잠에서 깨 로비로 나왔다. 준비가 일찍 끝난 나는 로비에서 일행을 기다리다 자연스레 중년 남성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후, 이른 아침부터 어딜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우리의 일정을 간단히 설명했다. 아저씨는 요즘 군대도 이렇게까지 행군을 안 시키는데 무리해서까지 걷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제주도를 걸으며 여행도 하고 삶에 희망을 찾으려고 왔는데 아직 희망은 못 찾고 다리만 아프다고 우스꽝스럽게 대답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아저씨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산을 내려올 때 가장 조심하고, 평지는 장시간 걷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50년 인생 서사를 간단히 읊었다. 본인은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했고 현재는 연애 중이라 했다. (와, 정말 자유로운 영혼!) 나는 조심스럽게 이혼 사유를 물었고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해주었다. 거리낌 없는 그의 태도와 해맑음이 신선했다. 얼마나 살아야 내 삶의 고통들을 처음 본 사람에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다시는 안 볼 사람이라서 그러셨던 걸까? 그분은 제주에서 만난 74세 형님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젊은 시절 아내를 잃고 홀로 자식들을 키운 형님은 다음 달 재혼을 하신다고 했다. 결혼 전 마지막으로 홀로 여행을 오셨고 오늘 하루 함께 다니기로 했다고 말했다. 내게도 '결혼은 안 하더라도 사랑(연애)은 끊임없이 하라'는 말과 함께 20분간의 짧은 대화가 끝이 났다. 나는 그들의 여행과 여생이 앞으로도 즐겁길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올레길 12코스에 있는 수월봉 전망대


 수월봉과 당산봉 둘레길에서 바라본 차귀도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하늘을 병풍 삼아 망망대해에 떠 있는 차귀도의 기상은 늠름했다. 한참을 바라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전망대를 내려왔는데 다행히 당산봉 둘레길에서도 차귀도를 볼 수 있었다. 2시간 동안 걸으며 차귀도 풍경을 감상했지만 이대로 끝내기가 아쉬워 차귀도가 보이는 카페를 찾아갔다. 해질녘 모습까지 보고 가겠노라 다짐하고 1시간을 넘게 머물렀다. 6시부터 슬슬 해가 지기 시작해 카페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붉게 변하는 하늘과 분홍 빛으로 물드는 너른 바다를 보니 '진짜 멋지다'는 감탄사가 육성으로 새어 나왔다. 이 멋진 순간에도 사진을 못 찍어 난리인 나 자신을 안타까워하면서 수십 장 사진을 찍었다. 더불어 이 환상적인 풍경이 사진에 다 담기지 않는다는 것도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수월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차귀도 풍경


올레길 12코스(차귀도 포구 가는 방향)에서 바라본 차귀도


카페 루프탑에서 바라본 노을 지는 차귀도


차귀도 포구에서 바라본 차귀도 저녁 풍경

 


12일 차

 2주 정도 매일 길을 걷다 보니 시간을 들여 풍경을 음미하는 구간이 있는가 하면 걷기에만 집중하는 구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길은 천천히 걸으며 최대한 많이 보고 오래오래 기억하고자 사진도 많이 찍었던 반면 걷기 힘든 시멘트길이나 도로에서는 최대한 빨리 걸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어두워지기 전에 길도 다 걷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도 조금씩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올레길 16코스 (고성숲길 인근)


 저지오름을 오르는데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오로라처럼 떨어진 빛줄기를 보니, 오랫동안 고민해온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결론이 번뜩 내려졌다. ‘그래,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 뭐!’ 그렇다. 나는 태어났으니까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이왕 사는 거 조금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더 자주 하며 살자는 결론이 갑자기 나버렸다. 눈물이 났다. 일하면서 생긴 우울증 때문에 주 5일은 죽고 싶었고 주 2일은 왜 살아야 하는지 꽤 오랫동안 몸부림쳤는데 이렇게 갑자기 정리가 되다니, 조금은 허망했지만 안도감이 들었다.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이제는 예전만큼 괴롭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인생은 짧다고. 그러니 다른 사람한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일 하며 살라고. 반 백 년을 사신 그분은 살면서 겪은 모든 고통이 결국 삶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라고 했다. 인간의 삶이라는 게 예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끝나기도 하는데 살지도 모를 미래보다 지금 살고 있는 현재를 더 중요시 여기며 충실히 살라고.


올레길 13코스(저지오름)


 올레길 14-1코스 중 우거진 나무 사이로 쭉 뻗은 시멘트길을 1시간 정도 걷는데 발이 유난히 아프고 지루했다. 그러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오설록 녹차밭에 도착하기 전 걸었던 곶자왈은 정말 아름다웠다. (곶자왈은 ‘곶’과 ‘자왈’의 합성어로 된 고유 제주어로서, 곶은 숲을 뜻하며,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 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표준어의 ‘덤불’에 해당한다) 자연이 만든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숲이 경이로웠고 이국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숲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무섭지 않았다. 조그마한 햇살이 떨어져 포근했고 아이처럼 신나게 숲길을 뛰다시피 누볐다. 길은 돌과 나무뿌리가 뒤엉켜 있어 고르지 않았는데도 넘어지지 않았다. 마치 숲에서 뛰는 게 훈련된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발에도 살이 좀 빠졌는지 요즘은 새끼발톱이 예전만큼 아프지 않았다.

    

올레길 14-1코스 (오설록 티뮤지엄 방향 곶자왈)



13일 차

 아침 7시, 비가 내렸고 이른 시간에 출발하느라 조식을 먹지 못했다. 걸은지 1시간 만에 배가 고팠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할까 고민하다 비까지 내리는 시국에 밥이라도 편히 먹어야겠다 싶어 식당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문이 열려 있는 식당으로 그냥 들어갔는데 선지와 당면, 소고기, 콩나물이 들은 시원한 해장국은 맛이 기가 막혔다. 다행히 잘도 얻어걸렸다. 해장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다시 또 걷기 시작했다. 적당히 먹었어야 했는데 너무 먹어 무거워진 몸을 달래며 쉬엄쉬엄 걷고 있는데 저 멀리 일행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다. '그동안 혼자 걸었는데 오늘은 같이 걸어보자'는 일행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역시 함께 걸으니 의지도 되고 서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주기도 하고, 상대의 새로운 모습을 알아가는 즐거움들이 있었다. 혼자 걷는 것보다 함께 걷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일행이 내게 말했다. 혼자 걸을 때는 자신만 신경 쓰면 되지만 같이 걸을 때는 상대의 속도나 상태를 봐야 하고 함께 상의할 것도 많기 때문에 더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니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심 어린 직언을 해주었다.


올레길 15-B코스 (한담해안 산책로 인근)



14일 차

 15.8km! 오늘은 한 코스만 걸으면 끝이 난다. 모처럼 여유로운 아침을 맞았다. 8시쯤 일어나 숙소 주변에서 아침 산책을 하고 조식으로는 야채 볶음밥과 컵라면을 먹었다. 든든히 먹고 해가 중천에 뜬 10시부터 걷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도 덥다고 생각한 적이 더러 있었는데 오전 10시는 시작 시간으로 아주 별로였다. 걸은지 10분 만에 땀이 주렁주렁 맺혔다. 해안가에서 바람이 불어왔지만 시원하지 않았다. 금세 얼굴은 빨갛게 익었고 마스크 안은 땀으로 가득했다. 더위와 땀으로 몸은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걸은지 1시간 만에 카페에 들어갔다. 차가운 커피를 한 잔 들이켜고 더위를 가라앉혔다. 정신을 단단히 부여잡고 카페를 나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후로 몸에 시동이 걸렸고 쉬지 않고 3시간 동안 걸은 결과, 제일 먼저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올레길을 걷는다는 건 각자와의 싸움이지만 그래도 1등은 늘 기분이 좋다. 헤헷!


올레길 15-B코스 (고내포구 아침 풍경)


조식으로 먹은 볶음밥과 컵라면


올레길 16코스(항파두리 인근 코스모스 군락지)




4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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