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면 클릭하고, 클릭은 광고가 된다
우리는 요즘 매일 분노한다.
정치 뉴스, 유명인의 실언, 기업의 무책임한 광고, 댓글 하나에 욱하고, 리트윗하고, 캡처해 공유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자주, 자꾸, 화가 나는 걸까?”
이 질문의 배경에는 단순한 개인의 감정 문제가 아니다.
구조가 있다. 시스템이 있다.
그 시스템은 당신의 분노를 아주 잘 ‘이해’하고 ‘이용’한다.
그 구조의 이름은 알고리즘이다.
그리고 그 알고리즘은 감정을 계산한다.
특히 ‘분노’를.
왜냐하면 분노는 클릭을 부르고, 클릭은 체류 시간을 늘리고, 체류 시간은 광고 수익을 키운다.
즉, 당신이 어떤 뉴스를 보고 분노했을 때,
당신은 그 콘텐츠의 도달률을 높이고,
광고 단가를 올리는 데 기여한 것이다.
마치 감정이 비즈니스 모델이 된 사회.
미디어는 더 이상 사실을 전달하지 않는다.
감정을 유도한다.
특히 분노, 혐오, 조롱. 그 감정은 정치적 전선으로 연결되고,
소비자 취향으로 전환되고, 플랫폼의 리텐션 전략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똑같은 알고리즘에 의해,
똑같은 방식으로 분노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말한다.
"감정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논의는 점점 평평해진다."
감정이 정치화되는 것이 아니라, 상업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막말이 여론을 분열시켜도,
언론은 유튜브 썸네일을 자극적으로 짜 맞춰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구조에서 모든 분노는 ‘수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조에서 우리는 점점 더 피로해진다.
왜냐하면 그 분노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 변화로 연결되지 않는 분노는 결국 허무와 냉소로 이어진다.
그리고 냉소는 다시 감정 소비로 돌아온다.
이 시대의 최대 감정 노동은, 감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내가 느끼는 이 분노는 누구의 수익이 되는가?” 그리고 그 수익 구조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감정은 나의 것이지만, 그 감정을 설계한 구조가 있다면,
우리는 그 구조부터 먼저 다시 말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감정을 사유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