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당신의 소비는 누구를 닮았는가?

by Simon park

현대인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자기를 위해 쓴다.
그런데 그 ‘자기’는 누구인가?


연말이 되면 카드사들이 ‘나의 소비 리포트’를 보내온다.
몇 시에 커피를 마셨고,
어느 동네에서 돈을 썼으며,
작년보다 외식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알려준다.


이 리포트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이건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샀는가’로 기억되고,
‘얼마를 썼는가’로 설명된다.
소비는 더 이상 생존의 수단이 아니다.
자기 표현의 언어가 되었다.


예전엔 패션이 나를 드러냈다.
지금은 결제 내역이 나를 설명한다.
스타벅스 리저브 2잔, 백화점 편집숍 1회, OTT 결제 3건.
이런 조합은 누군가에겐 ‘센스 있는 도시인’의 상징이다.


이제는 무엇을 샀는지가 아니라,
누구처럼 보이고 싶었는지가 중요하다.


문제는, 이 정체성이 ‘진짜 나’가 아니라 ‘설계된 나’일 수 있다는 점이다.
SNS에서 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서 제안한 취향,
콘텐츠가 심어준 욕망.
우리는 종종 욕망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소비를 욕망한다.


그 소비는 결제 한도를 넘고,
결국 카드값은 정체성이자 불안의 내역서가 된다.

더 비극적인 건,
이 소비가 ‘개인적 취향’인 척 포장된다는 것이다.
실은, 구조가 만든 선택지 안에서 움직였을 뿐인데 말이다.


20대는 커피와 배달과 렌탈을 소비하고,
30대는 육아와 보험과 리셀을 고민하며,
40대는 교육비와 부동산과 수입 브랜드를 고른다.
그 안에 진짜 내가 있었는지,
아니면 사회가 준 역할극을 수행한 것인지,
이제는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소비가
결국 자기 자신을 지우는 모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제 소비는 사치가 아니라 책임이 되었고,
취향은 즐거움이 아니라 증명이 되었다.


당신이 그 브랜드를 고른 이유는
그 브랜드가 당신의 정체성을 대신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고는 “이건 당신을 위한 제품”이라 말하지 않고,
“당신은 이런 사람이잖아요”라고 속삭인다.

그 속삭임이 반복되면,

우리는 결국 그렇게 살아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다.


카드값은 숫자지만, 그 안엔 감정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체성의 조각들이 있다.


내가 이걸 사서 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표현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아서 사는 건지.

현대의 소비는 점점 더
“사는 행위”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명”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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