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찬스는 끝났나? 아니, 더 교묘해졌다.

by Simon park

"부모 찬스"라는 말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고들 말한다.
입시 부정은 적발되고, 부동산 증여도 과세되고, 재산은 분배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정말 그 찬스는 끝났을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돈의 형태는 바뀔 수 있지만, 계급의 전략은 언제나 진화한다는 사실이다.


1. 부정은 사라졌지만, 불평등은 살아남았다

예전엔 ‘부모 찬스’ 하면, 위장 전입이나 인턴 증명서 같은 뚜렷한 위법 행위들이 먼저 떠올랐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부모 찬스는 더 교묘하고, 더 일상적이며, 더 당연한 듯 포장되어 있다.


예를 들어보자.
아버지의 골프모임에서 만난 대기업 상무가 조언을 건넨다.
“요즘 이쪽 업계로 가야 해. 인턴 자리 하나 알아봐 줄게.”
아이는 자연스럽게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은 ‘스펙’이 되고,
그 스펙은 다시 입시와 채용에서 유리한 자격이 된다.

법에 걸릴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불평등은 더 공고해지고 있다.


2. 新세습의 시대

이제 상속은 현금이 아니라 기회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유산보다 강력한 건 네트워크, 그리고 ‘정보 비대칭’이다.


강남에 사는 A는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 에세이를 쓰고,
미술관 큐레이터를 인터뷰하며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지방에 사는 B는 자소서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복사하고,
자격증 학원만 전전하며 경쟁의 뒤를 쫓는다.


둘은 동일한 ‘대입’을 준비하지만,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문제는 이 출발선의 차이가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게,
너무 조용하게 고착되고 있다는 데 있다.


3. 이 불평등은 왜 더 교묘해졌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노력 서사’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너도 열심히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말은 불평등을 가장 효율적으로 은폐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기회를 부모가 만들었든, 집안이 깔아줬든,
겉으로 보기엔 “열심히 산 청년”처럼 보인다.
그렇게 부모 찬스는 노력이라는 가면을 쓰고 유통된다.


그래서 요즘은 부모가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보다,
“도와준 티가 나지 않도록”이 더 중요하다.
‘능력주의의 시대’는 사실상 '은폐된 세습의 시대'가 되었다.


4. 결국 이 문제는 “가족”이라는 제도와 연결된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단지 공동체가 아니다.

가족은 부의 저장소이며, 자원의 전송 장치다.


그러니 교육, 주거, 건강, 취업 모든 영역에서
가족이 ‘능력’으로 작동하는 순간, 사회는 개인의 탓을 하기 시작한다.


“그건 니가 못해서 그렇지.”
이 말이 뿌리내릴수록, 가족이 가진 격차는 더 공고해진다.


5.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부모 찬스를 없앨 것인가?”가 아니다.
“어떻게 부모 찬스를 쓰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여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공정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있다.
지금처럼 노력과 운, 구조와 선택이 뒤섞인 혼돈 속에서는
누구도 진짜 정의를 말할 수 없다.


부모 찬스는 끝나지 않았다.
단지 티가 안 나게 고도화되었을 뿐이다.


계급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자기검열과 자격의 언어로 다시 등장할 뿐이다.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는 말한다.
“나는 부모 도움 하나도 안 받고 여기까지 왔어.”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말 뒤에 감춰진 것들이,
사실은 이 사회의 진짜 룰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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