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나기 전까진 소화기를 사지 않는 나라
한국은 위기의 나라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위기 직전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나라”다.
매번 되풀이된다.
재난이 터지면 '대응 매뉴얼'이 없었음을 자인하고,부동산 거품이 터질 듯하면 ‘금융 규제’를 외친다.
출산율이 바닥을 찍어야 육아 정책을 논하고, 기업이 탈출해야 규제 완화를 검토한다.
한국 사회의 개혁은 늘 위기 이후에 도착한다.
마치 이미 침수된 마을에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처럼 말이다.
위기가 시스템을 만든다. 문제는, 너무 늦게 만든다는 점이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나서야 안전이 중요한 사회가 되었고,
‘코로나’가 덮치고 나서야 공공의료가 절실해졌고,
‘강남 부동산’이 폭등하고 나서야 공시지가를 다시 들여다봤다.
늘 터지고 나서 고치겠다고 말하고,
사고가 뉴스가 되고 나서야 제도를 검토한다.
어쩌면 우리는 위기를 고치는 게 아니라,
위기에 반응하는 방식에 중독된 사회인지도 모른다.
왜 미리 못 고칠까? 구조보다 심리는 더 뿌리 깊다.
문제는 단지 행정의 느림이나 정치의 무능 때문이 아니다.
더 깊은 곳에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회피 문화가 있다.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결정을 미루고,
실수를 두려워해 개선을 피하고,
이견을 피하기 위해 모두가 현상 유지의 묵계를 맺는다.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않고,
모두가 “조금 더 상황을 보자”고 말하는 사이,
시스템은 낡고, 현실은 고장 나고, 결국 파국이 닥친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의 위험한 환상.
한국 사회는 종종 위기를 기회로 포장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라는 표현은 기사 제목의 단골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패턴은 말해준다.
그 기회는 늘 준비 없는 자들의 것이었고,
그 개혁은 늘 절반짜리로 끝났으며,
그 결과는 또 다른 위기의 씨앗이었다.
세월호 이후 만든 해경 개편은 제대로 작동했는가?
코로나 이후 확장한 공공의료는 유지되고 있는가?
부동산 대책은 폭등과 폭락의 사이를 오가며 신뢰를 잃었다.
한국의 개혁은 위기를 넘기기 위한 일회용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근본적인 변화는 “예방적 사고”에서 시작된다.
진짜 개혁은 위기가 없을 때 준비되어야 한다.
위기란 늘 늦게 온다.
그 순간에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미 ‘피해 복구’이지 ‘개혁’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시스템이 아니라 문화다.
‘문제는 언제든 올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예측하고 토론하고, 실패를 허용하는 안전한 사회.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사고가 나야 감사를 시작하고, 비판이 터져야 정책을 돌이켜본다.
모두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모두가 동시에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
이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한국 사회는 늘 위기 속에서 개혁을 말하는 사회로 남을 것이다.
“위기가 개혁을 부른다”는 말은 틀렸다.
그 말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위기를 기다려야만 개혁이 가능하다는 논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진짜 변화는,
아직 고장나지 않았을 때 구조를 점검하고,
아직 뉴스가 되지 않았을 때 문제를 제기하고,
아직 모두가 조용할 때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위기를 기다리지 않는 사회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게 가능하려면,
우리는 이제 ‘뒤늦은 반응’이 아닌 ‘예방의 정치’를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