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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한 삶 Mar 21. 2021

민원이 들어오는 공부방

“선생님 같은 분이 광명에서 수업을 하니 너무 좋아요”

라며 내손을 꼭 잡고 고마워했던 학부모였다. 꼭 입학을 하게 해 달라 했지만, 빈자리가 없어 그 학생은 받을 수가 없었다. 수업과 수업 사이 쉬는 시간에는 아파트 앞이 승용차로 꽉 차 있었다.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학부모 차로 아파트 주위가 혼잡했다. 공부방은 1층이었는데, 거실 창을 통해 꽉 막힌 아파트 앞이 보였다.



입학이 불가하다고 말하자  어머니는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너무 많은 수업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의 불만 섞인 표정을 곧 잊어버렸다.



“ 차를 댈 곳이 없어서 멀리 주차해두고 걸어왔어요”

“ 아파트 문 앞에서 호출하면 빨리 문 좀 열어주세요”

“ 우리 아이 입학은 도대체 언제 할 수 있을까요?”

내 삶은 수업에 덮여있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삶에서 수업 외엔 어떤 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오전엔  어머니들이 상담을 하기 위해서 오고, 저녁이 되면 아이들이 수업을 하기 위해 왔다. 난 오전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공부방에만 머무르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은 새벽에 나와서 어두웠을 때 들어가고, 어느 날은 공부방에서 세끼를 다 때우며 수업에 집중했다. 자는 아들을 보는 날들이 많아졌다.



학부모 차 때문에 주민들이 손해를 본다는 경비아저씨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아파트 주민들은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내비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광명에 이런 공부방이 있어서 너무 좋다는 어머니는 안티가 되어 민원을 제기했다. 입학을 받아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때문이었다. 수업에만 신경을 쓰기에도 바쁜 생활이었는데, 그 외의 여러 일들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피곤했다.



소화할 수 없는 지경의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작은 학원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다니는 공부방, 대기를 해도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공부방, 여기서 배우면 영어는 걱정 안 해도 되는 공부방이 되었다. 결심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공부방 성공은 너무 기쁜 일이었다. 아이들과 학부모의 지지, 가족들의 성원으로 보람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발생했다.



H 엄마는 평상시에도 친한 엄마였다. 나보다는 손위였으나 서글서글한 인상에 학부모 중에 나에게 마음을 가장 먼저 열어준 사람이었다. H 문제로 자주 들르며 상담을 했고, 그러면서 우린 서로 속 얘기를 하는 사이까지 발전했다. 학부모와 공부방 선생에서 친구사이, 아니 친한 언니, 동생으로 바뀌는 관계가 되었다. 선이 모호한 관계였는데 그 당시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운영하는 공부방은 다른 곳과는 달리 규율이 엄격해 숙제를 꼭 해와야 하고, 공부습관을 만드는데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공간이었다.



어느 날 H 가 숙제를 안 해서 혼났다. 평소 친한 사이여서 H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 H가 숙제를 안 했어요. 계속 숙제를 못하면 우리 공부방에 다니기 어려운 거 알죠?” 관계 때문인지 애교 섞인 목소리가 자연스레 나왔다.

“ 어~~ 알지.  그럼. 주의 줄게.”



그 후에도 H는 계속 숙제를 안 해왔다. 문제는 아이도 숙제를 안 하는 것에 대해 그리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여러 번 전화를 했다. 그리고, 마음먹고 한 전화 한 통.

“ H 대신 L를 받을게요. 양해해주세요”

“ 말도 안 돼. 농담이지?”

“ 아뇨, 농담 아니에요. 제가 여러 번 전화드렸잖아요”

“ 자꾸 농담하지 마, 장선생.”



난 웃으며 대답하는 학부모가 황당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학부모와의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니 공부방 규율도 무너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싶었다. 결국 H는 다음날 공부방에 등원했으나, 난 돌려보냈다. H 엄마와는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학원을 오픈 한 이후에도 H 엄마 얼굴은 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학부모와 선생 사이가 언니, 동생이 되기 어려움을 알면서도 선을 넘다   나니까 말이다. 그래도  당시에는 언니라는 이름으로 챙겨주던 학부모가 갑자기 등을 돌리는  헛헛했다. 가까운 관계였으면 나를 이해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남았다.



그때 깨달았다. 관계에 대해서. 공부방이라는 한계도 있고, 내가 학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선을 긋지 못한 잘못 이긴 했으나, 어머니들과 정확하고 단정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혼자 아이들을 가르쳐서  손에  미치는 아이들이 생기는 것보단 조직을 만들어 조금이라도 소홀하게 관리하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는  바람직하다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 대학교 선배가 연락이 왔다. 이미 수학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선배였는데, 수학학원  학원 자리가 나왔다는 것이다. 자리를 보고 계약을 덜컥해버렸다. 사업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어있었다. 그때는   닥칠 폭풍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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