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직업인 인터뷰를 시작하며
약해진 틈으로 조용히 새던 어둠의 기운이 나와 가족들의 일상을 완전히 집어삼키고야 저는 ADHD를 알게 되었습니다. ADHD라는 진단명보다는 타고난 기질, 환경적 요인, 청소년기부터 은은하게 깔려 있던 우울감이 더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생각해 보면 ADHD를 모르던 시절에도 그럭저럭 살았습니다. 학창 시절 따돌림, 직장생활의 어려움, 타인에게 큰 피해를 입힌 큰 사건 같은 기억은 없습니다. 유난한 ADHD라면 친구관계의 어려움이 있다고도 하지만 제 곁에는 다정하고 용감한 친구와 동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단짝 친구의 감각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배추 선배에게 adhd 진단을 털어놓은 건 과거에 해명하지 못한 몇 가지 오해를 풀고 싶어서였습니다. 선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래? 야, 나도 ADHD인가 봐. 어디서 검사받니." 합니다. 촬영장에서 만나면 혹여 넘어질까 내 발밑을 먼저 살피는 주여니가 말합니다. "근데, 그게 왜요, 난 괜찮은데? 난 편집장님 같은 사람들 오히려 좋아하는데?" 따뜻한 햇살 오바비도 그럽니다. "그래, 네가 조용히 또라이였었지. 야, 근데 티도 안 났어. 우리 다 또라이였잖아." 이쯤 되면 ADHD가 원래 없던 것처럼 그냥 살아도 그만일 것 같습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ADHD에 대해 쓰고 있으면서도 ADHD에 대해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는 왜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이 ADHD라는 화두를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공론화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것을 보면 저는 ADHD를 잘 숨기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나만 아는 이상한 실수들이 ADHD가 가진 특징이라는 것조차 이제야 설명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죠. 더 정확히는 숨기려고 애쓰느라 어떤 집단에서도 저는 언제나 이방인의 감각으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ADHD를 인식 하게 된 것은 결혼과 출산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변화를 겪고부터였습니다. 많은 ADHD인들이 공감하겠지만 깊은 관계를 맺는 연인, 부부, 부모, 자식 사이에서 ADHD를 숨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가까운 사이에서 ADHD로 인한 문제들은 산만함, 어린애 같음, 유난스러움, 다혈질, 무신경함, 성의 없음, 정서적 불통, 존중 없음 등으로 나타나곤 하지요.
"너는 날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어."
"지난번에도 같은 걸 물었잖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도 이제 믿을 수가 없어. 이건 성의의 문제라고."
"주제를 벗어나지 말라는 거야. 왜 갑자기 다른 얘기를 하는 건데, 이게 대화야?."
"크림 파스타 하기로 했는데 왜 갑자기 삼겹살 재료를 사 온 건데. 크림파스타 먹고 싶다고!"
"엄마, 지금 내 얘기 듣고 있는 거야? 나 좀 봐봐."
숨 쉬듯 서로를 마주하는 관계에서 성격이나 개성으로 ADHD적 특성을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까운 관계의 상처는 더 깊게 베입니다. 그래서 ADHD에 대해 알면 알수록 과거의 연인, 가족,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집니다. 그동안 저도 모르게 얼마나 많은 마음의 신호를 놓쳤을지, 제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잊어버려 놓고 혼자 억울하다고 화만 터트렸던 건 아니었는지 많은 장면들이 스쳐갑니다. ADHD 치료제 콘서타의 효과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인간은 원래 한 번에 한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40년 만에 처음 알았으니까요. 노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던 실수담, 다름을 숨기느라 노심초사하던 수많은 날들을 떠올리면 억울한 마음도 듭니다.
ADHD를 알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들이 있습니다. 신경다양인의 정체성으로 바라본 세상을 일기처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은 시원했습니다. 저처럼 멀쩡해(속으로 안 멀쩡한데) 보이는 사회인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ADHD 직업인은 또 없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캄캄호라는 부계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인터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ADHD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어쩌면 실패담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안개가 드리워진 듯 뿌옇던 일상의 해상도를 높이고 보니 이제야 겨우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홀로 인생 시간표를 짜는 것이 두려웠던 스무 살 대학생 그랑에게(20대의 나), 머릿속 공상들을 친구들과는 도저히 나눌 수 없어 요괴 그리기로 숨어든 여덟 살 로카(나를 꼭 닮은 아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캄캄호 토끼 선장의 항해에 작은 응원 부탁드려도 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