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들이 오늘만큼은 누가 깨우지 않아도 눈을 번쩍 뜨지 않았을까.
우리 집 초등학생과 7살 유치원생도 마찬가지다. 깨우는 이 하나 없는 데도, 먹구름에 낮인지 밤인지 구분되지 않는 어둑 흐릿한 날씨에도, 두 아이는 눈을 번쩍 뜨면서부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우와아악! 엄마, 아빠! 일어나요! 아침이에요!"
의정부에서 함께 어린이날을 보내겠다 자처한 일명 '생각이 삼촌'이 어제 와서인지 아이들의 목소리는 더욱더 위로 치솟는 모양새다.
시끌벅적한 아이들 소리에 늦게까지 술로 여독을 나눈 '생각이 삼촌'과 아이들 아빠는 이불속에서 불쌍한 지렁이처럼 꾸물꾸물 대더니 이내 체념한 듯 깊은 한숨과 함께 일어났다.
"여보, 근데 밖에 비가 생각보다 좀 오는 데?"
아이들이 속상할까 봐 남편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어쩔 수 없지."
시크하게 남편은 일어나 씻고 외출준비를 했다.
남편과 삼촌의 기상 전에 부지런히 세수 치카를 끝낸 아이들은 어른들의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흥분이 점점 고조되는 듯 보였다.
두부와 손을 맞잡고 춤을 추기도 하고 아빠가 갖다 달라는 수건에 누가 더 빠른지 경쟁이라도 하듯 우당탕탕.
시끌벅적한 외출준비 후 함께 돈가스맛집에서 외식을 했다. 오늘따라 밥도 유난히 잘 먹는 아이들이었다.
"오늘은 아주 왕자님, 공주님 대접을 제대로 해줘야겠어. 오늘 호칭은 왕자님, 공주님으로 해. 수건 갖고 와서 요기 팔에 걸칠걸 그랬어."
나의 설레발스러운 장난에 아이들은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들이 큰소리로 답했다.
"엄마, 어버이날에 기대해요!"
이런 게 주거니 받거니인가.
비가 와서 아들과 약속했던 자전거 타기를 포기해야 해서 걱정했는 데, 엄마의 장난 한마디에도 아이들은 행복한 표정을 한가득 선물했다.
비 오는 건 아이들에게 아무런 타격도 못 주는구나.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와 사랑받고 있는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만약 그런 거라면 아이들이 매일을 어린이날처럼 살 수 있지않을까.
아니, 왜 나는 어린이날이어야 아이들을 위한 하루를 계획했던 걸까. 항상 아이들을 사랑한다면서. 사랑을 줄 때도 이유를 찾고 있었던 걸까. 매일을, 아니 순간순간 오늘 이 순간처럼 아이들에게 마음을 표현해야겠다. 엄마의 사랑이 당연하게 느껴지도록. 내년부터는 아이들이 어린이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도록.
비가 와도 그저 행복한 지금의 표정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매일의 표정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