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도를 지키는 일은,
모두를 만족시키려 애쓰지 않는 일이었다.
제주 관광지 안의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속도를 재촉받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단체 손님들이 갑작스럽게 몰려와
다양한 음료를 주문하시고는
“버스 시간이 있어서요.
10분 안에 나와야 해요.”
라고 말할 때가 많았다.
음료의 퀄리티를 지켜서 내어드리고 싶었고,
커피를 소개하고 손님들과 소통하며 공간과 시간을 함께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분명했다. 하지만 관광지라는 환경은 그 마음을 종종 시험했다.
그래서 가능한 방법들을 하나씩 찾아 나갔다.
미리 전화로 단체 방문을 알려주실 수 있도록 가이드 분들의 연락처를 받기도 했고, 메뉴를 통일해 주시면 더 맛있고 빠르게 제공할 수 있다는 안내도 덧붙였다. 현실 속에서 지킬 수 있는 선을 찾기 위한 나름의 해결 방식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리 준비해도 환경이, 시간표가, 사람의 흐름이 나를 앞질러 가는 날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더 잘했어야 했나’
‘방향을 바꿔야 하나’
라는 질문 앞에 서곤 했다.
복잡한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출근 전,
아침 햇살을 맞으며 집 앞 바닷가를 걷고 쉬는 날이면 긴 산책을 떠나 올레길을 걸었다.
걸음이 이어지는 동안, 그 질문들은 조금씩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어제의 일과 관계를 떠올리며, 다음에는 어떤 선택을 할지 마음속에서 조용히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길 위에서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산책을 나설 때도, 등산을 준비할 때도 추위와 더위에 대비하고 길을 미리 살펴보지만 날씨는 시시각각 변하고 예상치 못한 우회로를 만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변수를 껴안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준비하되, 통제할 수 없는 순간까지 내 책임으로 끌어안지 않아도 된다는 것.
걷다 보면 바람이 거세게 불 때는 잠시 멈춰 서서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길이 험해지면 속도를 늦추거나 방향을 조정한다. 그 모든 판단은 앞으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서 이루어진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모든 상황을 해결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모든 기대를 만족시키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다했다면 그 이후의 힘듦은 의연하게 지나가도 된다는 것.
걷기는 나에게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
버티는 법이 아니라 넘어가지 않는 법을.
오늘도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길을 걷는다.
환경이 나를 재촉해도 내 걸음만큼은
나에게 남겨두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