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혼자 걷는 시간에 대해

by 설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쌓인 스트레스와 실망은 어느 순간 마음을 비워 놓는다. 말들이 오가고, 표정이 겹쳐 지나간 뒤 마음속에는 설명되지 않는 공백만 남는다.


그 공허 앞에서 우리는 종종 깊은 허무 속으로 잠겨 버리고 싶어진다.


마주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은 극심한 고통 앞에서 살기 위해 외면을 선택한다.
그건 나약함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택하는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걷는다.


마음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을 애써 보지 않으면서, 밝아오는 아침의 빛을 빌려 밝은 낯빛으로 길을 나선다.


햇살이 얼굴을 스칠 때만큼은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오늘도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처럼 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피하는 시간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빛이 잠잠해지는 순간, 거두어진 빛 뒤의 그림자 속에서 나는 다시 허무와 마주한다. 밝은 얼굴로 지나쳐 왔던 마음이 그제야 제 자리에 서서 나를 부른다. 그때서야 비로소 도망치고 있던 마음을 다시 불러낼 수 있게 된다.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서. 혼자 걷는 시간은 그 알아차림이 조용히 시작되는 자리였다.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발걸음에 맞춰 호흡이 돌아오고, 흐트러졌던 생각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는 동안 나는 그 무엇도 빛내지 않아도 되고 잠식되지 않은 채로 나에게로 돌아온다.


돌아온 나는 흔들리지 않는 나이면서, 동시에 억지로 지금의 자리를 붙잡지 않는 나다.


내가 있고 싶은 곳에 머무를 수 있다는 감각은 그 길 위에서 조금씩 분명해졌다. 나로 있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 앞에서도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배웠다.


일에서의 나, 관계 속에서의 나는 ‘나’ 전체가 아니라 하나의 역할일 뿐이라는 것을 혼자 걷는 시간은 조용히 가르쳐 주었다. 그 역할이 흔들린다고 해서 내 존재까지 함께 무너뜨릴 필요는 없다는 것, 밝은 얼굴로 버티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로 남아 있다는 것을.


그래서 관계가 어그러질 때에도 나는 나 자신을 함께 버리지 않는다. 그건 도망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나를 지키는 쪽에 더 가까운 선택이다.


혼자 걷는 시간은 나를 세상에서 고립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사람들 사이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내 안의 숨을 고르고, 마음을 정비해 주었다.


텅 빈 마음을 억지로 채우지 않고, 아픈 감정을 서둘러 봉합하지 않은 채 빛이 사라진 길도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그 시간은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혼자 걷는 시간은 외로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시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기 위해 나를 정비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같은 길 위에

다시 서게 되었을 때,

조금씩 달라진 나로

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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