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를 지키는 삶>
순직 경찰관은 2013년에 21명, 2014년에 17명, 2015년에 16명,
2016년에 15명, 2017년에 11명. 2018년에는 7월 들어서 1명.
경북 영양경찰서 故김선현 경감에 대한 비보를 들은 때는 7월 8일 정오께였다. 나는 마침 상황실에서 당직 근무 중이었다. 고인은 신고받고 출동한 현장에서 흉기에 목을 찔려 순직했다. 웅성거림, 탄식, 그리고 이어지는 무거운 침묵. 상황실의 소란스럽던 무전도 일순간 그쳤다. 상황팀장님은 무전기를 들어 올려 입 가까이 대고 무어라 말하려다 새어나오는 한숨을 못 이기고 다시 내려놓았다.
고인은 준비되지 않은 때에 작별인사 한마디 못 하고 눈을 감았다. 어느 경찰관이든 제 몫의 위험을 안고 있으나 오늘 우리 몫의 위험은 그가 모두 거두어 짊어지고 떠났다. 그가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하고 생각한 것은 어느 순간이었을까. 다시 못 만날 사람들에게는 어떤 당부를 하고 싶었을까.
경찰 친구 하나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종이 날 위에 서 있는 거나 매한가지라고. 칼날만치의 두께도 안 된다고. 발밑이 허물어져 버릴까 봐 매 순간 두렵다고. 내가 딛고 있는 것이 여차하면 내 발을 베어 버릴 거라고. 세상을 떠날 때 한 마디 남길 수 있는 순간도 하늘이 보우하셔야만 주어질 것이라고.
살인사건 현장에 출동했던 동료들이 문득 생각났다. 피해자의 가슴에 칼을 내리찍고 있던 범인을 겨누고 테이저건을 쏘아 제압했던 이들. 긴박한 상황에 목표물을 조준하고 전극침 두 개를 명중시켜 쓰러질 때까지 방아쇠를 당기는 쉽지 않은 일을, 그들은 성공적으로 해냈었다. 그러나 다음날 피해자의 가족과 기자들이 사무실에 들이닥쳐 ‘만약에’, ‘혹시’, ‘왜’ 같은 단어들로 그들을 후려갈겼다. 한바탕 풍파가 지나고 나자 출동한 두
사람 중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칼에 찔려서 내가 죽…었으면 욕을 안 먹었겠지?”
“부장님, 그런 말씀은 하지도 마세요. 다들 모르고 하는 이야기에요.”
나는 마지막 말은 속으로 삼켰었다.
‘어차피 생살여탈권은 우리 손에 없어요. 그런 때가 오려면 언제든 와요.’
2018년 7월 10일. 故김선현 경감의 영결식을 사무실에서 인터넷 중계로 함께했다. 고인과 함께 근무하던 동료가 송별사를 낭독했다.
“만남과 이별은 반복되겠지요.”
세상을 떠난 이들은 숫자로 셀 일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만남과 이별은 계속될 것이다.
차마 못 부르고 눈물로만 나올 이름도 해마다 늘어갈 것이다.
최근 범인의 피습에 의한 경찰관 부상이 크게 늘었습니다. 2018년 한 해에만 범인의 피습에 의한 경찰관 부상이 520건 이상이었고, 지난 3년간 순직 경찰관은 총 45명이었습니다. 경찰관의 순직을 가장 괴롭고 슬퍼할 이들은 가족과 더불어 경찰관 동료들이겠지요. 국민의 안전을 위해 근무하다 순직한 경찰관, 그리고 만남과 이별을 계속하는 대한민국 경찰관들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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