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워너비의 김용준을 덕질 중이다. 덕생 4년 차, 많은 순기능이 있지만 그가 공연하는 지역 여러 곳을 여행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특히 그 목적지가 나와 연결된 곳이라면 더더 그렇다.
이번 목적지는 용두산 공원, 얼마만의 용두산 공원인지. 공연소식을 듣자마자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다.
어릴 적, 큰아버지 가족과 용두산 공원을 찾았던 날, 당시 부산의 유일한 랜드마크였던 부산타워에 오르냐 마냐로 의견이 분분했었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올라가자던 파와 높이 올라가면 어지러워서 그냥 있겠다는 파 사이에서 어떤 결론이 났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결혼 후 서울살이 중 남편이 부산으로 발령이 났고 어릴 적 그 용두산공원 나들이 멤버셨던 큰엄마의 소개로 남편의 사무실이 있던 남포동 위쪽,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던 영주동의 한 아파트에 1년 정도 살았었다. 그때 다시 들른 용두산 공원은 비둘기가 많고 연식이 느껴지는 곳이란 기억뿐인데, 2024년의 그곳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무엇이 그대로일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부산 도착. 중구의 영주동에서는 1년을 살았고 해운대구로 넘어가 10년 가까이 살았음에도 나에게 부산의 찐 향기가 느껴지는 곳은 중구다. 산복도로 위 꽉 들어찬 집들의 아우라가 반가웠다. 들르고 싶은 추억의 장소가 너무 많았지만 교육에 참여하고 내려오느라 일정이 촉박한(?) 관계로 바로 용두산 공원으로 이동했다.
남포역 1번 출구 쪽, 오르는 길부터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에스컬레이터가 생겼고 양쪽 벽면도 네온사인들로 채워진 게 언뜻 홍콩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제법 긴 에스컬레이터를 올라 다시 만난 부산타워, 높다란 랜드마크들이 많이 생겨 큰 감흥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여전히 위용 있는 모습이었고 그 옛날 어른들의 고민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축제 중인 덕분에 예쁜 마켓들과 체험 부스와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다 아기자기 하니 젊은 세대, 혹은 가족의 유입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쓴 듯했다.
해가 넘어가면서 가볍게 소나기가 지나갔고 이후 가을한 바람이 불면서 공원은 더 생기 있어졌다. 이번 방문의 이유였던 '컬러드콘서트'가 열릴 소박한 무대도 취향저격이었다. 내 기억 속의 용두산공원이 너무 스산했었던지 모든 게 감탄스러웠다.
공연의 마지막 날, 마지막 출연자였던 김용준 등장. 오랜만에 만난 김용준은 혼자 세월을 거꾸로 사는 건지 더 예뻤고 코디가 뉘신지 가을밤에 어울리는 착장이 아주 나이스였다. 거기에 세상 꿀맛, 꿀향 나는 미성은 그렇잖아도 감동 모드에 있는 내 마음을 제대로 뒤집어 놓았다. 본인의 솔로곡인 이쁘지나 말지, 어떻게 널 잊어, 한 끗 차이와 많이들 알법한 sg워너비의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 라라라, 해바라기까지 총 여섯 곡의 노래와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간 건지 , 왜 그렇게 시간은 늘 너무 짧기만 한 것인지.
덕생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운 것, 숙소로 돌아와 하이볼 한 캔을 놓고 덕메와의 긴 수다가 이어졌다. 보통 당일 공연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예전 공연을 추억하며 함께 영상을 보는 시간, 매번 비슷한 것 같은데 마치 처음인 것처럼 우린 너무 신나고 행복하고 그 순간은 아주 순수한 상태가 된다. 그날 밤도 이제 막 추억이 돼버린 용두산 공원에서의 공연을 이야기하고 영상 속 김용준의 표정 하나하나를 다시 뜯어보며 우린 정말 행복했다.
다음날 아침, 덕후로서 최애의 맛집을 지나칠 수 없지.
김용준이 극찬한 수변최고돼지국밥의 항정국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지난여름 콘서트의 열기가 뜨거웠던 벡스코의 앞마당을 한번 밟은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이대로 끝이라면 너무 아쉬울 텐데, 다행히 우리 집에도 용용이(김용준 팬의 애칭)가 산다.
좋은 건 크게 보라고 배웠기에 하이볼 한잔을 놓고 발 빠르게 유튜브에 올라온 공연 영상을 티비로 크게 보며 남편과 복습을 시작했다.
'용준이 얼굴 좋다, 용준이 옷 예쁘다. 오늘은 눈 마주쳤냐.'
이렇게 말해주고 질문해 주는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신나서 떠들고 남편과 함께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진 뒤풀이 시간을 마지막으로 나의 짧은 덕생 여행은 마무리가 되었다.
원래 그 자리에 머물러 왔던 것들이 중심을 잘 잡고 서있는 가운데 감성과 낭만이 더해져 더 이상 스산하지 않았던, 몽글함이 있던 가을밤 용두산 공원에서의 덕생의 시간의 한 끗이 또 이렇게 채워졌다.
용두산 공원이 고마운 건지, 김용준이 고마운 건지, 아무튼 고마움이 가득한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