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호스피스 돌봄을 받게 되는 분들을 처음 뵙는 날. 의료진과 함께 사회복지사가 동행을 한다. 현재 돌봄의 상태에 대한 전반적인 상담을 위한 동반이다.
60대 후반의 미영 님(가명). 기력은 없어 보이지만 환하게 웃으며 맞아 주신다. 미영 님은 현재 가장 어려운 점을 식사로 꼽으셨다. 밥 한 숟가락이라도 제대로 씹어 넘기면 기력이 좀 날 것 같은데 조금이라도 음식이 들어가면 복통과 오심 증세가 있어 힘들다고 하셨다. 입맛이 날까 해서 뭘 만들어 봐도 드시지를 못한다고 하셨고 그래서 기력이 너무 없음을 호소하셨다.
언뜻 보아서 혼자 앉거나 이동하기가 힘들어 보이는 상태, 식사를 직접 준비하시냐고 여쭈니, 자녀들의 삶이 바쁘니 부탁하기가 미안하고, 배우자님의 살림 솜씨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웃으시며 할 수 있을 때 까지는 본인 손으로 해야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평생을 부지런히 살아오셨을 게 분명하고 그 한 끗을 놓으면 모든 걸 놓게 되는 게 될까 봐 온 힘을 다하는 중이신 걸로 보였다. 기운이 없을 때의 움직임이 초래할 수 있는 낙상의 위험을 설명드리며 미안해하지 마시고 가족의 도움을 받으시라고 말씀드렸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간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오셨으니 이제부터는 도움을 좀 받으시면 어떨까요."
"이제부터는 에너지를 조금씩 나누어 쓰신다는 생각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무리하지 마시고 조금씩 기운을 나누어 쓰시면서 최대한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지낸다 생각하시고요."
'이제부터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제부터는'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붙이는 내가 거슬린다. 현재를 앞선 시간으로부터 잘라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지나갔다.
순간 아득해지면서 비슷한 말, 대체할 말을 빠르게 찾는 머릿속.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어 '이제부터는'을 빼기로 했다.
"혼자 이동하지 마시고 배우자님 손 꼭 잡고 이동하세요."
"힘든 부분 있으면 자녀분들께 의지해 보시고요, 요즘 날 좋은데 가을 경치 한 번 보시면서 쉬어가세요."
암환자가 된 순간, 전이를 발견한 순간, 말기암으로 더 이상 치료가 어려워진 순간, 밥 한 숟가락이 넘어가지 않게 된 순간 등 많은 순간 무수한 단절을 겪고 계신 분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얼마 남지 않은 앞날, 가장 큰 단절을 앞두고 계신 분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말 끗이었을 수도 있고, 또 말 끗하나 뺀다고 달라지는 게 없을 수도 있다. 다 알지만 아닌 듯이 자연스럽게 지내시기를 바랐던 맘에 생각의 오지랖이 발동되었던, 그런 날이었던것 같다.
가끔은 환자와 가족들이 처한 상황을 외면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모습에 용기 운운하지 않고 가만히 눈감아 줄 수 있는 주변의 배려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 직무에 위반하는 것일까.
미영 님이 혹여 '이제부터는'이라는 말에 앞선 시간과의 단절감을 느끼시지 않았기를, 배우자님 손 꼭 잡고 가을 경치 한 번 바라보시는 시간이 미영님께 허락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