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는 듣지 못하고

2025년 그리스 기행 (1)

by 정준호

2026년 4월호 노블레스 매거진 게재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내내 그리스를 탐구했다. 수학 시간, 이등변삼각형의 모양새를 규정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부터 시작해, 원의 둘레와 지름의 비율을 이르는 파이(π), 표준편차를 뜻하는 시그마(σ) 등 그리스 알파벳과 수없이 씨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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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 ‘동굴의 비유’로 이데아를 주창한 플라톤, 삼단논법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의 뿌리였다. 그리스와 무관할 법한 국어 시간에도 ‘카타르시스’(배출이란 뜻이다)라는 말을 배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이 관객에게 연민과 두려움을 자아내게 해 눈물 흘리고 감정을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 작가는 ‘삼일치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시간, 장소, 행위의 일치라고 맹목적으로 외웠다. 극 중 사건이 24시간 이내에,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고, 단일 사건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비극보다 셰익스피어를 먼저 읽었던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들은 수업에서는, 애초에 그것이 왜 필요했고 어떤 이유로 근대 들어 사라졌는가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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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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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 / 에우리피데스. 이상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선선한 늦가을 오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입구에 디오니소스 극장과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이 가슴 설레게 한다. 어렴풋한 형태만 남은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극장(Theater), 배경(Scene), 합창단(Chorus), 오케스트라(Orchestra)와 같은 말이 탄생했다. 그보다 온전한 형태로 보존된 헤로데스 아티쿠스는 사실 로마 시대 건축물이다. 나는 20여 년 전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회에서 이 극장을 처음 보고 압도되었고. 그 뒤로도 종종 야외 오페라가 상연되는 영상에 특별한 감흥을 받았다.

https://youtu.be/ZL_C51HVpWw?si=pRFn5KZ3MCZM4eoT

20251015_160027.jpg 아테네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고대 그리스 비극으로부터 시작해,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의 오페라, 그리고 영화에 이르기까지 판타지의 창조는 인류의 꿈이었다. 꿈같은 현실과 현실 같은 꿈을 오가며 탄생한 종합 예술의 걸작이 나의 삶을 지배했다. 내내 세계 각지를 떠돈 끝에 마침내 그 뿌리에 도착한 것이다. 극장이야말로 알파(α)요 오메가(ω)였다. 외우기만 했던 삼일치의 법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디오니소스 신에게 바치는 제의의 하이라이트였던 그리스 비극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DSC09481.jpg 비극의 소품

그리스 3대 비극작가로 불리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대략 기원전 6세기부터 5세기까지 활동한 세 사람은 차례로 획기적인 진전을 이뤄냈다. 원래 비극 무대엔 합창단과 배우 한 사람이 서는 게 전부였다. 주인공이 집단과 대화하는 원시적인 구조였다. 그때 아이스킬로스가 두 번째 배우를 처음 세웠다. 등장인물의 대화로 긴장과 갈등, 카타르시스가 증폭했다. 뒤따라 소포클레스는 배우를 셋으로 늘렸다. 그의 <오이디푸스 삼부작>은 오늘날까지 그리스 비극의 대명사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인간 중심 시각으로 푼 막내 에우리피데스를 그리스 비극의 모범으로 추켜세웠다.

image.png 실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술은 좀더 우아하다

이렇게 비극이 발전한 과정을 보면 그들이 삼일치를 지켜야 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한정된 인원이 서는 일차원적인 무대에서 신과 인간의 이야기를 보여줄 때, 그 전개가 복잡해서는 관객을 몰입시킬 수 없었다. 작가는 수십 년, 몇 세대의 세월을 겨우 하루로 압축해야 하고(시간), 십 리 밖의 일도 궁전 안(장소)에서 다 설명해야 했다. 내게 가장 이해가 어려운 개념은 행위의 일치였는데, 결국 장르를 특정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복수극인지, 모험극인지, 효심을 다룬 것인지 간에 하나만 택해야지, 모험 로맨스이거나 에로틱 스릴러처럼 줄거리가 복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공상과학 타임루프 로맨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곧 삼일치의 법칙은 판타지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따라야 할 지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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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2643.JPG 그리스 극장의 조감도. 마지막이 기계신의 원리이다

그렇지만 고대 극장 자체가 이미 놀라운 발명품이었다. 그리스 반원형 극장의 기본 구조는 동심원호의 연속이다. 위로 갈수록 등차수열로 좌석이 증가하기에 몇 열로 만들 때 몇 명을 수용할지 계산할 수 있었다. 에피다우로스 극장처럼 55 열이면 1만 4천 관객의 2만 8천 개 눈에서 눈물을 흘리도록 해야 했다. 좌석의 높이도 시야각을 고려해 뒤로 갈수록 앞 좌석보다 점점 높아져야 한다. 결정적으로 무대를 중심으로 포물선을 이루는 반원형 극장은 소리가 초점으로 다시 모이기에 음향 효과가 극대화되었다. 야간 조명이 제한적이므로 일조량을 고려해 극장은 남동향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자연광을 고루 받으면서도 역광은 피하게 배려한 것이다. 무대에 전능한 신을 등장시킬 때 그리스인들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크레인을 사용했다. 그런 장치를 가리켜 기계신(Deus ex machina)이라고 했으니, 오늘날로 치면 와이어드 액션이나 컴퓨터 그래픽(CG)에 해당한다. 그리스 극장 건축은 앞서 내가 배운 수학과 물리학으로 증명되었고, 로마 시대에 비트루비우스가 이를 <건축 10서>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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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6세기 이탈리아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건축 10서>를 바탕으로 비첸차에 테아트로 올림피코를 지었다. 1585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로 개관한 테아트로 올림피코에서 나는 코로나 시절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극 <병사 이야기>를 관람했다. 이 실내 극장의 붙박이 무대에 적용된 원근법 배경도 고대 그리스에 이미 고안했다. 바야흐로 오페라의 시대가 열렸고, 이탈리아인들은 그리스 극장의 ‘르네상스’를 선언했다.

DSC02376.JPG 그림자극의 원리. 토리노 영화 박물관

20세기 영화의 시대에도 소재가 현실이든 판타지이든 사건을 더욱 실감 나게 보여주는 것이 기술 발전의 일관된 방향이었다. 유성 영화, 컬러, 현지 촬영은 영화 속 세계를 더 실제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스튜디오의 세트, 와이드스크린, 스테레오 사운드, CG는 달랐다. 그것은 배우와 무관하게 오직 관객만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고대인과 르네상스인의 행위 가운데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음악을 무대 예술의 주인공으로 만든 것이다. 현실 같은 무대를 만들면서 실제와 동떨어진 노래를 소통 수단으로 삼았으니 말이다.

누가 부부 싸움을 노래로 하느냐는 말이다

종합 예술이 오페라 극장을 넘어선 영화의 시대에도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단지 중요할 뿐만 아니라 현실과 더욱 동떨어진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바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다. 영화에서 음악을 사용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역시 그리스 말에서 온 디제시스(Diegesis)와 비디제시스(Non-diegesis)이다. 디제시스란 등장인물에게 들리는 영화 속의 대사나 음향이며, 비디제시스란 등장인물과 무관하게 관객에게만 들리는 소리, 곧 대부분의 사운드트랙 음악(직접 연주하거나 부르는 것이 아닌)이다.

영상 속 소리는 주인공에게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으로 나뉜다

영화가 만든 이 획기적인 청각 경험은 사실 오페라에도 있었다. 그리스를 대표하는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가 ‘정결한 여신 Casta Diva’을 부를 때 그녀의 음성은 디제시스이지만, 오케스트라 반주는 비디제시스이다. 고대 드루이드족에게 무슨 관현악단이 있었겠는가! 영웅의 시신을 하늘로 옮기는 발퀴레에게 바그너의 관현악이 들렸을 리 없다.

그러나 이것은 디제시스 바그너로 이뤄진 영상

그러나 영화 속 비디제시스 음악 덕분에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날고, 빨간 망토의 사나이가 정의를 실현하며, 멀고 먼 은하계 저편의 전장(戰場)을 손바닥처럼 조망한다. ‘난 세상의 왕’이라는 대서양 횡단 여객선의 외침이, 쓸쓸한 마피아의 고뇌가, 멘토가 남긴 삭제된 무성 영화의 키스 장면이 비디제시스 음악이 없더라도 그만큼 감동적일까? 우리는 고대 로마의 음악을 모르면서 원형극장의 전차 경주에 멋대로 팡파르를 울리고, 끝없는 아라비아의 모래밭이나 혁명기 시베리아의 설원을 똑같은 장구한 서사풍의 음악으로 만난다. 영화보다 오래된 이러한 음악의 작동 방식이 AI가 뒤흔들 다음 국면에서도 유효할지는 알 수 없다.

20251015_200319.jpg 파르테논을 바라보는 전망 레스토랑

파르테논 위로 떠오른 총총한 별들이 현실과 환상의 틈새를 비집는다. 저녁나절 머리를 관통한 극장의 역사가 새삼 가슴을 웅장하게 한다. 종횡무진했던 내 상상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지중해식 샐러드와 양고기 꼬치 수블라키에 그리스 와인을 곁들여 건배를 외친다. “야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