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매거진 2026년 3월호 게재
시칠리아에서 야간 페리를 타고 몰타로 가는 지중해 뱃길. 궂은 날씨 탓에 멀미를 앓는 사람도 있지만, 다행히 나는 포세이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았나 보다. 여객선 창밖으로 비바람 치는 바다를 보며 몰타와 얽힌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트로이 전쟁 뒤에 고향으로 돌아가던 오디세우스가 표류해 도착한 곳이 몰타라는 설이 있다.
뒷날 사도 바오로는 로마로 압송되다가 몰타에 난파해 몇 달 동안 머물며 기적을 행하고 기독교를 전했다. 셰익스피어의 만년 작 <템페스트>에서 일행은 튀니지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나폴리로 돌아가던 중 무인도에 표류한다. “몰타 인근 무인도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는데 어느덧 수도 발레타항(Valletta)에 도착했고 그사이 폭풍도 지나갔다. 어슴푸레한 리조트의 이국적인 야경이 시간을 넘나들게 한다.
이튿날부터 신기하게 나는 간밤 떠올린 이야기를 되짚는 여정을 밟았다. 고대 페니키아의 무역 거점이던 몰타는 이슬람과 기독교가 번갈아 거쳐 간 지중해 문명의 교차로였다. 성 요한 기사단은 예루살렘을 수호하던 십자군이었는데 1291년 성지 원정이 파탄한 뒤 로도스에 정착했다. 1522년 오스만 튀르크가 로도스를 점령하면서 떠돌이가 된 기사단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몰타를 할양했다. 전설에 따르면 막대한 부를 가진 기사단이 황제에게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을 헌정했다고. 일명 ‘몰타의 매 The Maltese Falcon’이다.
존 휴스턴 감독,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영화 <몰타의 매>(1941)는 누아르 영화의 효시로 꼽힌다. 17년 동안 보물을 쫓다가 악당이 된 범인들은 결국 몰타의 매가 가짜임을 알고 허탈했다. 탐정 역 보가트의 유명한 대사가 헛된 욕망을 냉소한다. “꿈을 이루는 재료는 이런 거야!” 바로 다음과 같은 <템페스트>의 대사로부터 가져온 말이다. “우리는 꿈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지.”
사실 <몰타의 매>는 이곳 몰타와는 별 관련이 없다. 영화 배경은 샌프란시스코이고, ‘몰타의 매’는 ‘피렌체의 비둘기’나 ‘부활절 토끼’로 바꾼다고 해도 상관없는 보물 이름이다. 이곳 몰타에서 촬영해 큰 화제를 모은 판타지 사극 <왕좌의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중세풍의 성곽이 있는 곳이라 선정되었을 뿐, 몰타의 역사나 정체성과는 무관한 줄거리이다. 그럼에도 현지 안내인은 <왕좌의 게임>을 뿌듯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몰타의 매>라는 영화는 처음 듣는다고 한다. 드라마에 나왔다는 건물 앞에서 흐드러지게 핀 꽃을 배경으로 사진 찍느라 여념 없는 사람들.
대성당과 카라바조
발레타 심장부의 성 요한 대성당은 정말 꿈으로 만든 듯이 휘황찬란했다. 유럽 곳곳의 교회를 훑고 다닌 내게 이곳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주세페 마추올리의 제단 조각은 교회의 사명을 상징했기에 눈길을 끈다. 세례자 요한이 허리 굽힌 그리스도에게 세례 주는 그림은 많이 보았어도 조각을 본 기억은 없다. 보통 그리스도가 못 박힌 십자가를 놓을 자리에 세례 조각상을 둔 까닭이 의미심장하다. 인류의 죄를 대신해 죽음을 택한 것이나 죄 없는 사람이 물로 씻김을 청하는 것이나 상식에 맞지 않지만, 그것이 기독교의 핵심 가치이다. 몰타는 대개의 교회와 달리 자신의 수호성인을 그리스도와 함께 주연으로 제대에 올렸고, 그 점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화려한 벽감이며 온통 금으로 칠한 집기를 보며, 기사단이 성지 수호의 대가로 얻은 부가 황야의 세례자 요한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관람로를 따라 성당 안을 이동했는데,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내 눈에 진짜 황금 매가 들어왔다. 의외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다. “누구나 같은 꿈을 꾸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사진에 담았다. 사실 몰타에서 가장 보고 싶던 것은 따로 있었다. 거의 출구에 다 가서야 바로크 회화의 거장 카라바조가 그린 <세례자 요한의 참수>를 만났다. 셰익스피어가 <템페스트>(1610)를 쓰기 직전인 1607년 카라바조는 살인을 저지르고 교황의 사면을 기대하며 몰타로 도망 왔다. 15개월을 머무는 동안 그가 남긴 그림이 몰타의 으뜸 보물이다.
제단의 세례 조각상이 요한의 영광이었다면, 카라바조는 그의 치욕을 그렸다. 감옥 밖에서 목을 베이는 요한은 바닥에 얼굴을 눌린 채 주검으로 변해간다. 살로메가 그의 베인 머리를 놓을 쟁반을 내밀고 헤롯이 그것을 가리키는 연극 같은 구도와, 뚜렷한 명암이 주는 대비에서 카라바조 특유의 긴장감이 폭발한다. 화가는 요한에게 뿜어 나오는 선혈 위에 자신의 서명을 남겼다. 스스로 저지른 죄를 참회하는 뜻으로 읽힌다. <몰타의 매> 저리 가랄 ‘누아르’이다.
<세례자 요한의 참수> 옆에는 카라바조가 몰타에 남긴 두 번째 그림 <글 쓰는 성 예로니모>가 걸려 있다. 세속을 벗어나 동굴에서 성서를 번역하던 추기경이다. 곁에 놓인 해골은 “죽음을 기억하라”라고 말하며 예술가에게 참회와 겸손을 주문한다.
오디세우스의 억류지
고조는 몰타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항구를 제외하고는 거의 황량해 보이는 벌판 한가운데에 타 피누 대성당(Ta' Pinu Basilica)이 있다. 주위와 어울리지 않게 규모가 큰 외관에 비하면 내부는 매우 아늑했다. 원래 이곳은 작은 경당이었는데, 1883년 한 여인이 지나다가 “세 번 성모송을 바치라”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얘기를 들은 친구가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에 와 병을 고쳤다. 치유의 순례가 꼬리를 물자, 1920년대에 경당을 둘러싼 교회를 크게 지었다. 페루지노의 <성모승천>이 걸린 중심부가 옛 경당이다.
1990년과 2010년, 2022년까지 모두 세 번이나 다른 교황이 방문했던 곳이기에 고조 사람들은 이곳이 프랑스 루르드나 스페인 파티마처럼 공식적인 성모 발현지로 인정받기를 기대한다. 성지에 갈 때마다 독실한 신자이거나 일반인이거나 할 것 없이 저마다 은총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코로나 격리가 막 지나간 시기에도 사람들이 줄 서 성물에 손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기복(祈福)은 인간의 본성이다. 성모 발현 따위에 관심 없는 관광객들은 성당 뜰의 아름다운 모자이크에서 다시 추억을 담는다.
선선한 11월이지만, 바다의 기운을 만끽하려는 극성을 말릴 수는 없다. 높은 파도 탓에 안전 바를 붙잡고 선 남자들이 해수욕을 즐긴다. 바닷물을 가둔 벌집 모양 해변은 적어도 수백 년, 길게는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천일염전이다.
멀지 않은 곳에 칼립소가 오디세우스를 억류했다고 전하는 절벽이 보인다. 트로이에서 10년을 싸운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다시 10년이 걸렸다. 그 가운데 칼립소와 보낸 세월이 7년이다. 그녀는 영웅에게 젊음과 영원한 삶을 제안했으나 오디세우스는 아내 페넬로페를 잊지 못했다. 결국 제우스의 명령으로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놓아준다. 스위스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의 그림이 떠오른다. 고조처럼 보이는 해안에 오디세우스가 망부석처럼 섰고, 수금(竪琴)을 든 헐벗은 칼립소가 그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그녀의 음악은 더는 그를 사로잡지 못했다.
오늘날 몰타는 사람들에게 어떤 매력으로 다가올까? 19세기 이래 영국령이다가 1964년에 독립하면서 영연방으로 남았기에 영어가 공용어이다. 이곳에 어학연수를 오는 한국 젊은이도 많다. 그러나 꿀이나 양젖 치즈, 소량의 와인 외엔 딱히 특산물이랄 것도 없다. 과연 <왕좌의 게임>이 제일 큰 자랑거리일 법하다. 나는 이곳 태생의 테너 조셉 칼레야를 좋아한다. 마리오 란차가 주연한 <위대한 카루소>를 보고 오페라 가수가 되기로 한 그는 타고난 미성과 훈훈한 무대 매너로 호평을 듣고 있다. 그는 분명 몰타의 성벽 위에서 하늘을 나는 매를 보며 꿈을 키웠을 것이다. 몰타의 매처럼 비상을 꿈꾸며 그리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