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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Oct 26. 2018

쾰른에서 만난 피리부는 사나이

쾰른, 본

이튿날 다시 라인강 따라 한 시간 반 만에 고색창연한 도시 쾰른에 도달한다. 여장을 풀자마자 지척의 본으로 갔다. 본은 쾰른 선제후의 궁정이 있던 도시이자 통일 이전 서독의 수도이다. 그러나 지정학적인 위치를 떠나 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기서 베토벤이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뮌스터 광장 앞 베토벤 동상은 어느 기념비보다 강렬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 광장 한 구석을 피리 소리가 가득 채운다. 레게 머리를 한 흑인 악사가 귀에 익은 독일 민요를 연주하는데 발뒤꿈치에 매단 작은 종으로 장단을 맞추니 광장 구석구석 청량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키가 150센티미터쯤 될 법한 피리 부는 사나이. 어느 나라에서 왔을까?


1827년 베토벤이 죽고 8년 뒤인 1835년,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이 동상 건립을 발의했다. 여론은 찬성 일색이었지만 정작 모금은 지지부진했다. 1839년 프란츠 리스트가 1만 프랑을 쾌척하면서 겨우 속도를 냈고, 베를리오즈, 쇼팽과 슈만 같은 동료가 힘을 보탰다.


슈만은 베토벤의 가곡집 ‘멀리 있는 연인에게’의 선율을 인용해 ‘환상곡’을 썼고, 출판 수익을 동상 건립에 보태달라고 했다. 그는 ‘환상곡’을 리스트에게 헌정했지만, 사실상 사랑하는 클라라를 염두에 둔 작품이었다. 당시 그는 아직 미성년인 연인을 두고 미래의 장인과 법정투쟁 중이었다. 마침내 동상이 베토벤의 고향 본에 완성되었지만, 제막식은 2년이나 미뤄져 1845년에야 이뤄졌다.

리스트가 편곡한 베토벤의 멀리 있는 연인에게

제막식 이틀 전 축하 공연에서 루이 슈포어가 ‘장엄미사’와 ‘합창 교향곡’을 지휘했고, 당일 아침 대성당에서 C장조 미사를 연주했다. 오후에는 리스트가 피아노 협주곡 ‘황제’를 연주했고, 교향곡 5번 따위를 지휘했다. 이렇게 해서 베토벤은 독일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작곡가가 인류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음악을 쏟아냈다는 사실은 적잖은 울림을 준다. 그가 프리드리히 실러의 찬가에 붙인 ‘환희의 송가’는 오늘날 유럽연합의 노래로 불린다.

소설가 토마스 만은 청각장애 작곡가의 아이러니한 조건을 그리스도에 비했다. 그가 반 실성 상태로 ‘장엄미사’를 작곡하고 난 뒤 허기에 지쳐 한밤 중에 하녀를 찾았을 때 그녀는 이미 난장판이 된 집을 떠난 뒤였다. 토마스 만의 베토벤은 ‘한 시간도 깨어 기다릴 수 없단 말인가”라고 절규한다. 그리스도가 올리브산에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잠든 세 제자에게 한 말 아닌가! 베토벤 자신도 칸타타 ‘올리브산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예술가가 어떤 존재인가를 부각했다. 그는 예술사상 처음 스스로 자기 작품의 ‘영웅’이 된 사람이다. 교향곡 3번 ‘에로이카’의 주인공은 나폴레옹이 아니라 베토벤 자신인 것이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토벤의 에로이카 교향곡

‘환상곡’으로 리스트에게 힘을 보탠 슈만은 만년에 이곳 본의 요양원에서 정신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의 최후를 지킨 사람이 아내 클라라와 제자 요하네스 브람스였다. 본 시내 공동묘지에 슈만 부부가 합장되어 있다.

라인강은 스위스 알프스 산정에서 발원한다. 동으로 흐르다가 다시 북으로 물꼬를 튼 강물은 스위스와 독일 국경 지역 보덴 호수에 크게 모인다. 이번에는 서쪽으로 향한다. 스위스 국경도시 샤프하우젠에는 라인폭포라고 부르는 엄청난 수원이 있다. 낙차는 크지 않지만 너른 강폭이 좁다 하고 터져 나가는 물길은, 처음 시작된 알프스의 높이와 앞으로 흘러갈 길이를 함축한다. 스위스의 유일한 항구 바젤을 끝으로 위로 올라가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을 이루며 스트라스부르를 지난 라인강은 만하임, 마인츠, 본을 거쳐 쾰른에 도달한다. 다시 그 위로 뒤셀도르프와 뒤스부르크를 거쳐 네덜란드로 가면 유럽 최대의 항구 로테르담을 통해 여정을 마무리하고 북해가 된다.

샤프하우젠 라인폭포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사람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찾아가게 마련이다. 경제와 종교, 인종의 차별 없이 기회가 평등한 곳으로 말이다. 이제 유럽연합에서 여행자로서 만나는 서비스업 종사자는 대부분 이민자이다. 크로아티아에서 왔다는 웨이터도 코리아라는 말에 남이냐, 북이냐를 묻는다. 이는 오히려 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뜻한다. 그도 최근 몇 달 동안 뉴스를 뜨겁게 달군 한반도의 정세 변화를 잘 알고 있다.


마침 한 스리랑카 노동자가 날린 풍등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는 어쩌다 경기도 고양까지 와서 고향을 그리게 되었을까? 실론티라도 한잔 마셔주고 싶다. 아마 피리를 불 줄 알았다면 독일에서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베토벤의 할아버지도 라인강을 거슬러 네덜란드에서 본으로 온 악사였다. 그래서인지 베토벤도 들리지 않는 것을 거슬러 남들이 한 번도 듣지 못한 소리로 나아갔다.

자연이 만든 대장정 라인강의 클라이맥스에 인간이 더한 장관인 쾰른 대성당이 서 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의 유해를 모신 성당이기에 맨 처음 시작부터 붐비는 곳이었지만 25년 전 처음 찾았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이 이제는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놀랍게도 어제 본에서 본 그 피리 부는 사나이가 오늘 아침 쾰른 돔 광장에서 같은 곡을 연주한다. 아마도 그는 오후에는 그림 형제의 동화에 나오는 하멜린으로 가지 않을까? 대성당 안팎을 장식한 수많은 조각상들이 하멜린으로 피리소리를 따라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소리에 홀리지 않고 더 북쪽으로, 함부르크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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