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가교환의 법칙

by 카메라타 rin


남편이 생겼다.

임신과 함께 이십 대 중반의 인생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내 세계의 중심은 '나'로부터 어떠한

틈을 줄 여유도 없이 아주 갑작스럽게

'아이'에게 옮겨가고 있었다.


임신하고 만삭이 되었어도 악기를 내려놓질 못했다.

그 상황에서 나를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은,

스스로 소멸해버리는 듯한 기분을

매일매일 느꼈기 때문이다.

아이를 품었던 그 시간을 온전하게

기쁜 마음으로 보낼 수 없었던 나 자신을 자책했다.

불안감은 계속해서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오케스트라 오디션 준비와 육아를 병행하면서

원하는 대로 연습을 할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들에

부딪히며 지금은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고 한없이 지쳐갔다.

그래도 단원 모집 공고가 나오면

무조건 지원서를 냈다.

몇 번의 실패가 반복되더니 기회가 생겼다.

신생 시립오케스트라지만 지휘자도 단원들도 열심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곳에 입단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기회가 소중했고 감사했다.

집에서 거의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곳을

이른 아침에 출근하게 되면서

시어머니께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그리고 얼마 후

친정엄마의 '암' 소식을 듣게 된다.

결국 일 년도 활동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


참 부질없다.


수습할 것이 많았고,

가지 칠 것들이 많았다.


의사는 “3개월 남았습니다 ”

라고 얘기했지만 다행히 엄마는 수술 후

잘 견뎌주셨고, 현재까지 잘 지내고 계신다.

그 일을 겪은 뒤로 병원은 가장 최악의 상황을

보호자에게 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젠 의사 말에 쫄지 않는다.




나에서 ‘너’로 향하는 마음과

너에서 ‘우리’를 생각할 수 있었던 계기는

불쑥 찾아오는 '고통' 덕분이었다.

고통이 존재했기에

기쁨을 인지할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한 깨달음은 귀하디 귀했다.

아이를 낳을 때 겪는 어마어마한 진통을 견뎌내야

아름다운 생명체를 만날 수 있듯이,

그냥 인생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고.


"한 아이를 잘 양육하는 것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

이 문장을 마음에 다시 한번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