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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 비평

영화<노스탤지아>비평

과거의 유산

by Camille
ZLZEPke3C1Q_Pq982NDkYQ.jp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mNIUnpJanBiSW1KbklsMHNJbkFpT2lJdmRqRXZiRGcxWTI5b2NHMW9kMk5zWW1ScVp6a3dkbUlpTENKeElqbzRNQ3dpZHlJNk1Ua3lNSDAuSU9GU3U0ZlIzV2w2U1drbmhuY2wzRWFkNXNXZ0ZTZ3dpWFlEWlVTRnhNOA 출처: 왓챠피디아
잊힌 것들에 대한 찬가

내 생각에 타르코프스키는 반전주의자가 아닐까 싶다.

솔라리스에서도 그렇고 노스탤지아에서도, 타르코프스키는 이해와 공존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법으로 타르코프스키가 제시하는 건 신앙이다.

이 신앙이라는 키워드는 영화 노스탤지아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타르코프스키는 독실한 정교회 신자였다.

그는 일기장에 순교록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영화 곳곳에 기독교적인 상징이 등장한다.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기독교적 상징에 대한 이해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에 도착한 러시아 작가 고르차코프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고르차코프는 전대 예술가 소스노프스키의 생애를 연구하던 중 도메니코라는 남성을 만난다.

고르차코프는 온천에 들리는 데 온천욕을 하던 사람들은 도메니코를 비꼰다.

이유는 도메니코가 가족들을 7년 간 집에 가두었다는 것과 촛불을 들고 온천을 건너려 했다는 것.

어찌 보면 황당한 이유다.

온천에서 고르차코프는 도메니코를 만나고 고르차코프는 도메니코의 집으로 간다.

도메니코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 땅에 박힌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고르차코프에게 양초 하나를 건네며 불을 밝혀 줄 것을 요구한다.


성경에는 슬기로운 처녀의 비유가 등장한다. 해당 구절은 이렇다.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의 종말이 언제 올지 모르니 항상 대비하고 있으라는 메시지를 담은 구절이다.

이 영화는 현대 문명과 시대 상황을 비판하고 있다.

온천욕을 하는 사람은 영생을 기원하며 온천욕을 즐긴다.

그리고 불을 밝히려 하는 도메니코를 욕한다.

온천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은 도메니코가 바보라고 말하지만 피차일반이다.

영생을 기원하며 온천욕을 하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나 다름없다.


이 영화엔 물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도메니코의 집은 물이 흥건하다.

물은 불을 꺼뜨린다. 사람들이 불을 무시하는 까닭은 아마 흥건한 물에 침잠되어 있어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메니코는 불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영화 후반부 도메니코는 세상을 비판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른다.

그리고 그에 맞춰 고르차코프는 촛불을 들고 말라버린 온천을 가로지른다.

이 영화에서 불은 신앙을 의미한다.

타르코프스키는 기계 문명과 냉전으로 침잠된 사회를 되돌릴 방법으로 기독교 신앙을 제시한다.

잊혔던 신앙으로의 회귀, 그것이 타르코프스키가 내놓은 해법인 것이다.

마침 극 중 배경이 되는 로마는 가톨릭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극 초반 도메니코는 움직이지 않는 자전거 페달을 돌린다.

그리고 극 후반, 말라버린 온천의 바닥엔 자전거 하나가 버려져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기계 문명의 종말을 뜻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굉장히 철학적이다. 어렵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상징적이고 심오한 탓에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모든 철학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만큼 아름다운 영화고 잘 만든 영화다. 한 장면 한 장면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공을 들여 만들었다.

기독교적 상징에 국한되지 않고 다방면으로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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