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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니엘 Caminero Aug 27. 2017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여행 이야기 - 5

걷고, 걷고, 또 걷는다. 나 홀로, 오래오래...

혼자서 게임을 하는 것도, 축구를 보는 것도, 라이브 공연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뭐니 뭐니 해도 혼자여서 가장 좋은 것은 여행을 할 때다. 특히 나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오래오래 걸으면서 여행을 즐기는 편이라 동행했던 이들의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기에 혼자 여행하는 것이 심적으로는 훨씬 더 편하고 좋다.

물론 일부러 상대를 불편하게 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만, 하루 종일(이럴 때는 왠지 ‘죙일’이라고 써줘야 할 것 같다.) 걷고 또 걷는 내 여행 방식은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괴로움을 주었음을 인정한다. 물론 나라고 괴로울 때가 없었던 건 아니다. 특히 내 발이, 양말이, 신발이 그 거리와 시간을 견디지 못했던 적이 꽤 많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그렇다.

보통 여행 중의 나는 7시쯤 일어나 씻고 아침을 먹은 뒤, 8시쯤 숙소를 나선다. 그리고는 웬만해서는 밤 10~11시가 되기 전에 숙소로 돌아오는 일은 없다. 중간에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큰 볼일도 보면서 앉아서 쉬는 때가 있긴 하지만, 보통 10시간 이상은 걷고 또 걸으며 여행을 한다. 하루에 15~20km 정도는 걸어서 움직이는 것 같다. 내게 있어 여행은 행군의 즐거운 버전이다.


그래서일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대개 체중이 2~3kg 정도 줄어 있다. 여행 중에는 끼니를 잘 거르지도 않고, 군것질도 평소보다 훨씬 더 자주 하며, 잠들기 전에는 매일같이 맥주를 서너 병쯤 마시지만, 몸무게는 언제나 여행 전보다 줄어 있다. 진짜 심하게 많이 걷나 보다... 그런데 난 왜 그렇게 걷고 걷고 또 걷는 것일까? 단순히 걷는 행위 자체를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이든지 하나라도 더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그러는 게 아닐까싶다. 뭔가 좀 아까워서...

천천히 걷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게 많다. 생각지도 않았던 멋진 명소가 반경 1~2km 내에 있다는 반가운 표지판을 보게 되기도 하고, 저렴하고 예쁜 제품, 독특하고 이색적인 먹거리도 눈에 들어온다. 또한 걸으면서 마주하는 평범한 모습들, 거리, 골목, 버스, 택시, 사람들, 아기, 개나 고양이, 광고판, 식당, 가로등, 가로수, 신호등, 담벼락, 담벼락 위에 그려진 낙서...특별하지 않은 풍경도, 때론 뭔가 좀 조악하고 어설픈 것들마저 나름 예쁘게 바라봐줄 수 있다.

처음 가보는 나라, 도시에서는 마냥 걷다가 길을 잃어 순간순간 불안한 기분이 엄습할 때도 있지만, 그 기분을 떨치고 나오는 것 역시 결국은 ‘걸음’이다. 아프리카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길을 잃었다는 것은 곧 새로운 길을 하나 더 알게 된다는 뜻이다’ 항상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하다보니 발걸음도 가벼워져 그렇게 많이 걸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물론 하루 종일 걸으면서 여행하는 게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땀을 많이 흘리게 되어 헤어스타일이 무너지기 일쑤고, 땀에 젖은 옷은 곧 흉측하게 모습이 바뀐다. 그러니 어디서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행색이 거지꼴에 가깝다. 시간이 지난 후, 여행 중 찍은 사진을 추려보면 쓸 만한 게 몇 장 되지 않는다. 오전에 찍은 사진만 그럭저럭 상태가 괜찮고, 오후나 저녁, 밤에 찍은 사진은 거의 모두 휴지통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매번 걸으면서 여행하다보니 아직까지도 여행지에서 차를 빌려 운전을 해본 경험이 없다는 게 아쉽다. (제주도 제외! 그마저도 제대로는 아니었고...) 20개 안팎의 나라, 50여 도시를 가봤지만 렌트카로 여행을 해보지는 못했다. 물론 운전 자체를 힘겨워 하는 내 성향 탓이기도 하나, 차를 타고 타국을 여행하는 내 모습은 쉬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냥 신발 밑창이 떨어질 때까지 걷고 걷고 또 걷는, 그래서 땀에 절은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어 있는 내 모습만 떠오른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운전을 하기가 싫다. 핸들을 잡기만 하면 온 몸이 경직되고 안 그래도 뻣뻣한 몸이 더 뻣뻣해진다. 운전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임산부가 타고 있던 차와 사고가 난 적이 있어 그 이후로는 거의 운전을 하지 않았다. 사실 아주 아주 살짝 스친 것뿐이지만, 내게는 꽤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지난 10년간 겨우 대여섯 번쯤 차를 몰아본 것 같다. 

걸음은 누군가와 충돌할 일도 거의 없고, 부딪힌다고 해도 큰 사고로 이어질리 없으니 좋다. 여행은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해, 행복한 기억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언젠가는 레인지로버나 익스플로러 같은 차에 아내와 아이들을 태워 함께 여행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있지만, 지금은 그냥 괜한 걱정거리 없이 거리를 걷고 싶다. 발과 다리는 지칠지언정 마음이라도 편하게 여행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사실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나보다는 나와 같이 차를 탄 사람들 그리고 도로 위에 수많은 운전자들이 더 걱정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는 마음 편히 하나라도 더 보면서 여행하고 싶어 걷는다기보다 타인의 안전과 사회의 안녕, 지구의 평화를 위해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말도 안 되는 개뻥~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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