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는 '월드클래스' 축구장이 있다!
대한민국에도 훌륭한 축구장이 꽤 많이 있다. 이 첫 문장부터 반박하고 싶은 축구팬들, K리그팬들이 있다면 제발 좀 참아주시길! 규모, 시설, 시야, 분위기, 역사…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첫 번째로 꼽는 경기장은 각기 다르겠지만,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숭의아레나’는 분명 월드클래스 문턱에 닿을 법한 훌륭한 스타디움이다.
어느 구역, 어느 좌석에서 경기를 즐기든 흠잡을 데 없는 시야로 온전히 축구를 만끽할 수 있으며, 생동감과 현장감에 있어서는 그 어떤 경기장에도 뒤지지 않는다. 압도적이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축구가 K리그 내의 경쟁 클럽들을 압도할 만큼 매력적인 것은 아니나, 튼튼하고 멋스럽게 지은 그들의 새 집은 돈 좀 있는 여느 팀들의 그저 그런 집들을 너끈히 압도한다. 압살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실 ‘옛집’ 문학경기장도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곳이었지만, 숭의경기장만큼 축구 관전에 최적화된 웰메이드 스타디움은 아니었다. 육상 트랙으로 인한 거리감이 꽤나 부담스러웠고, 지나치게 많은 좌석은 인천 유나이티드 구단에도, 인천 서포터스에게도, 인천 시민들에게도 여간 버거운 숫자가 아니었다. 물론 대구나 부산(아시아드)에 명함을 내밀 수준은 아니었다만… 그러나 평수를 절반 이상 줄여 이사온 도원동(not 숭의동!) 집은 인천 유나이티드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은빛 말굽 테두리에 블루블랙의 인유 컬러 스탠드가 어우러진 이 경기장은 덩치는 작지만, 매우 내실 있고, 강단 있어 보인다.
시야와 현장감에서도 문학을 크게 웃돌지만, 입지는 거의 비교불가의 영역에 있다. 사실 문학경기장의 대중교통 접근성도 크게 나무랄 데 없는 편이었다. 인천지하철 1호선 문학경기장역에서 내려 7~8분 정도 걸으면 스타디움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숭의경기장은 국철 1호선 도원역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면 3~4분 안에 다다를 수 있다.
지하철역과 맞닿은 K리그 경기장이 제법 있지만, 클래식의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챌린지의 부천종합운동장만큼 가까운 곳은 없다고 본다. (물론 서울월드컵경기장도 역과 매우 인접해 있으나, 그 거대한 규모 탓에 경기장에 들어서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단순히 내가 최적의 동선을 찾지 못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2만석을 살짝 넘기는 이 작은 구장을 얘기하며 ‘월드클래스’ 운운하는 것이 거슬리는 이들이 있다면, 굳이 말을 조금 바꿔 유로클래스라고 수식해주겠다. 2012년 문을 열어 이제 겨우 다섯 살이 된 이 경기장은 유럽의 중소도시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멋진 스타디움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축구장 중에서 이곳처럼 유럽 느낌 물씬 나는 경기장이 얼마나 더 있을까 싶다.
월드니 유럽이니 번갈아 쓰는 상투적 비유가 참으로 전해질지 우려 섞인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 경기장을 더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나는 알지 못한다. 수원의 빅버드, 전북의 전주성, 포항의 스틸야드 등의 관중석에서 좀 더 뜨거운 분위기를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나 인천이 가진 ‘최신식 유럽형 축구장’의 정체성에 흠집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유럽식 축구장으로 수식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그래 보여서’가 아니다. 경기장 자체가 유럽의 축구전용구장을 본떠 건축된 것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K리그 팬이라면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 굳이 ‘알쓸신잡’까지도 아니지만 이 경기장은 과거 블루 드래곤 이청용 선수가 활약했던 잉글랜드 볼튼 원더러스의 마크론 스타디움을 벤치마킹하여 지은 것이다. 선수단이 앉는 벤치가 관중석 앞쪽으로 들어가 있는 점만 봐도 제대로 유럽풍이다.
대부분의 국내 축구장에서는 벤치가 그라운드와 동일한 높이로 설치되어 있어 일부 관중들의 소중한 시야가 방해받지만,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는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얘기다. 관중석으로 들어온 벤치는 팬과 선수, 감독의 거리를 줄여줄 뿐 어떠한 뷰에도 태클을 걸지 않는다. 가까워진 벤치는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성에도, 눈살 찌푸려지는 욕지거리에도 똑 같은 거리를 내어준다. 탁 트인 하늘 아래, 싱그러운 푸른 잔디를 보며 쌍욕을 늘어놓는 악취미로 축구장을 찾는 이들이 있다면, 인천 만한 낙원은 어디에도 없을 거다.
좋은 점이 차고 넘치는 인천경기장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하나 있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라는 정직하고 꾸밈없는 이름이 그렇다.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들의 이름이 미자, 순자, 영자, 말자, 경자였던 것처럼 별다른 고민 없이 붙여진 듯한, 무색무취한 이름이 다소 불만스럽다. 이곳에는 좀 더 화려하고 폼 나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디 좋은 축구 작명소 없나? 축구팬들이 부르는 ‘숭의아레나’나 ‘숭의아레나파크’라는 닉네임도 큰 감흥이 없긴 마찬가지다.
나는 인천의 옛이름 ‘미추홀’을 빌려와 ‘미추홀릭 풋볼파크’라는 이름을 밀고 있다. ‘미추홀에 사는 축구 홀릭들의 경기장’이라는 뜻이다. 아직까지 이 이름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이들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더 좋은 이름이 생각날 때까지는 계속 그렇게 부를 예정이다. 아니면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공항과 항구를 가진 인천의 특징을 살려 ‘풋볼허브 인천’ 같은 이름을 붙여보면 어떨까 싶다.
숭의아레나는 유럽의 중소규모 축구전용구장을 표방하고 있지만, 보통의 한국 프로 스포츠 경기장들이 갖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다. 경기장의 양쪽 대각선 끝에는 커플들이 함께 앉아 여유롭게 축구를 관전할 수 있는 테이블석이 여유롭게 준비되어 있다. 여유롭다는 건 넉넉한 숫자를 뜻하기도 하나, 사실 대부분의 축구장에선 테이블석이 야구장만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지 않아 그런 듯도 하다. 테이블석보다 좀 더 분위기 있고 고급스럽게 축구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는 스카이라운지를 추천한다. 매우 합리적인 가격대로 제공되는 서비스라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축구팬들에게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
하지만 아이스하키 경기장도 아니고, 아쿠아리움도 아닌데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축구는 왠지 좀 낯설고 어색하니까 전반이든, 후반이든 절반만 이곳에서 즐기고, 나머지는 그라운드 가까이서 풋볼러들의 숨소리를 듣자! 인천축구전용구장의 탁월한 매력은 두 눈만으로는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 그라운드에서 파생되는 가지각색의 소리들이 귓속을 파고들 때 그 매력이 두 배, 세 배로 늘어난다. 축구장에서 시력만 쓰고 앉아 있는 건 너무나 순진한 일이다. 청력까지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할 때 당신은 비로소 진정한 축구 변태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인천 ‘미추홀릭 풋볼파크’는 그런 변태들을 양산하기에 매우 적합한 축구장이다.
- 글·사진 by 김다니엘 (스포츠투어리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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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축구전용경기장
별칭: 숭의아레나
개장: 2012년 3월
수용인원: 약 20,300명
주소 : 인천광역시 중구 참외전로 246 (도원동)
교통 : 지하철 1호선 도원역에서 도보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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