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명희 Sep 15. 2015

카미노 데 산티아고 (프랑스) 1

프랑스 길 (Camino Frances)

프랑스 루트 중 생 쟝 피에 드 포트 St. Jean Pied de Port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 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까지는 약 800km. 31일간의 도보순례 중 만난 그 첫 번째 이야기.
(2015.06.9 ~ 2015.07.09)


                                                              

                                                                                                                                                                 

뙤약볕. 뜨거운 햇살이 따가움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등에 맨 배낭이 자꾸 땅으로 나를 잡아끈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가방끈을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나란히 들어 올리고 나니 한결 가볍다. 언덕 꼭대기에 다다랐을 즈음 허리를 펴고 주변을 둘러보자 저 멀리 우뚝 선 주황색 외벽이 눈에 띈다. 
"효진아~! 우리 다 온 것 같아. 저기 마을이 보여!"

                                                                                                                                                           

언덕 중턱에서 열심히 돌을 나르고 있는 효진이는 전 해군 중사이다. "누나! 오늘이 제2 연평해전 승전 13년 되는 날이에요. 저는 'PKM357'을 돌멩이로 글자를 만들어 놓고 갈게요. 제가 만들어 놓은 글자가 오래오래 이 자리를 지킬 수 있겠죠?"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 줘야 한다며 무거운 배낭을 벗어 놓지도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동그랗게 생긴 예쁜 돌들을 모아 나열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음.. 이상한데?'
걸으면 걸을수록 가까워지는 건물의 형체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건물 대신 하나의 큰 벽면이 우뚝 섰고,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큰 벽면 뒤쪽으로는 마을의 지붕 언저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새 가방 오른쪽 주머니에 꼭 맞는 사이즈로 들어앉은 물통에 손이 가있다. 찰랑찰랑 소리를 내며 가벼움을 자랑하는 물통을 다독이듯 툭툭 쳐 본다. 





터벅터벅..

쇳덩이를 짊어진 듯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멀리서 보았던 큰 벽면 앞에 섰다. 곧 한 남자가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Do you like watermelon juice?" 나에게서 나올 수 있는 최대치의 경쾌한 에너지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그에게 말했다. "Yes~! Yes~! I like watermelon juice!"

이 곳은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돈은 기부를 하는 형식이다. 도네이션(donation)함이 음료 매대에 아담하게 마련되어 있다.








여러 종류의 음료수들과 과일을 바로바로 갈아주기 위한 믹서기, 컵과 얼음. 부족함이라고 이야기할 것이 전혀 없는 음료 진열대는 그가 직접 디자인하고 페인팅을 하였다. 음료 매대의 바탕은 눈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초록색이고, 글자는 총천연색을 자랑한다. 상단을 보면 일렬횡대로 빨간색 하트가 자리 잡았다. 이곳에 대한 그의 애정이 느껴진다. 자전거를 타고 먼저 도착해있었던 다른 순례자가 나에게 다가와 자신의 두 번째 손가락을 펼쳐 매대 뒤쪽을 가리킨다. 그가 가리킨 곳은 모래 바닥. 모래 바닥 위에는 약간 도톰한 백색의 이불이 펼쳐져 있었다. 순례자가 말했다. "He staying here!"



나는 순간, 알 수 없는 기분으로 한참 동안이나 멍한 상태를 유지했다. 돌멩이로 'PKM357' 글자를 만들고 뒤따라온 효진이도 음료수를 마신 뒤 줄곧 말이 없이 앉아 있다.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보니 큰 벽면 하나와 음료 매대를 제외하면 비를 피할 수 있고 창고 역할을 하는 반쪽짜리 벽돌집이 전부였다. 

.

.

.

.

.

.

.

어쩌면 그는 내가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와 그가 소유한 것들과 그의 미소..'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워터멜론 주스를 두 잔이나 마시고 일어났지만 내 속엔 따뜻함이 남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