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구나에 둥둥 떠 싱크로나이즈 수영도 하고, 알티플라노 경관도 즐기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넘어가 버렸다. 진작부터 배고파 죽겠다며 컴플레인이 시작되고 있다. 오는길에 조그만 식당을 봐두었다. 식당처럼 보였던 거의 유일한 곳이다. 미니버스 두대가 정차해 있다. 늦은 점심시간임에도 빈자리가 없이 손님이 가득하다.
상황이 안좋게 돌아간다. 어딜 끌고 다녀도 배만 채워놓으면 문제가 없다. 제때 먹여주지 못하면, 그땐 온갖 불평 불만이 쏟아진다. 무슨 아빠가 먹이지도 않고 끌고 다니냐고 작은아들 던진다. 큰아들은 엄마가 평소엔 양이지만, 배고프면 사자가 되는걸 모르냐며 엄마 핑계를 댄다. 진짜 무서운건 와이프. 아무소리 안하고 있다. 어려서 부터 아이들 배고프면 난리치는 것 때문에, 어딜가든 항상 엄마가 비상식을 챙겨다니지만, 오늘은 아침먹고 남은 오렌지 조각 조금 플라스틱 타파에 넣어온 것뿐.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에 아침부터 문을 연곳도 없었고, 도시를 벗어나고 부터는 가게는 커녕 인가를 찾기도 어려운 곳이다.
‘이사람들 방금 들어온거 같은데… 마냥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는데, 눈치있는 점원이 오더니, 조금만 내려가면 식당이 하나 더 있다고 알려준다. 조금 전 바글거린 식당과는 달리 손님이 한명도 없다. 지금 무슨 맛집을 찾고 할 때는 아니다. 슈하스코(햄버거빵에 얇게썰은 고기와 야채를 넣은 칠레식 샌드위치)를 하나씩 시키고, 오늘은 평소 금하던 탄산음료도 먹어라 하니, 애들은 금방 또 신나서 조잘댄다.
살라 데 아타카마 (Salar de Atacama)
스페인어로 소금이 Sal이다. 소금사막을 살라(Salar)라고 한다. 미국 서부사막에도 일부 비슷한 지질대가 있지만, 세계적으로 규모가 제법 된다하는 소금사막은 대부분 남미에 위치한다.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국경이 마주한 지역에 대부분 위치하고 있다. 영어로 된 가이드북들에도 그냥 Salar라고 쓰이는 것을 보면 스페인어뿐 아니라 영어 보통명사로도 쓰이는 듯 하다. 가장 크고 유명한 소금사막은 볼리비아 살라 데 우유니 (Salar de Uyuni), 우기에 살짝 물이 고여있는 소금사막에서 동틀때 찍은 사진을 접한 많은 여행자들이 여행버킷리스트에 꼭 넣는 곳이기도 하다.
점심을 먹고 찾아 나선곳은 살라 데 아타카마. 산페드로데아타카마와 알티플라노 사이에 위치한다. 입장료를 내고 간단한 안내도를 보니, 크게 한바퀴 도는 루트와 약간 작게 돌아보는 루트가 있다. 욕심 안내고 짧은 길을 선택한다. 소금사막이긴 한데 조금 못났다. 꼭 한국겨울에 함박눈 온 다음에 고무래로 눈을 길옆으로 치워놓으면, 처음 하얗던 눈이 녹으며 먼지와 눈이 섞여 있는 그런 비슷한 모습니다.
뜨거운 태양아래 그닥 내키지 않지만, 아이들은 맘에 드는 모양의 소금결정체를 하나씩 찾는 재미로 걷는다. 갈면 소금이 되긴 하겠지만, 실은 흰색돌이나 다름없다. 천연소금이니 좋을거라면서 집에가서 갈아 먹쟈고 하는데, 아빠 엄마 반응은 영 시큰둥하다.
얕게 물이 고여 있는 라구나가 있다. 제법 많은 플라멩고들이 보인다. 아침에 봤던 플라멩고하고 똑같다. 다들 열심히 고개를 박고 먹이를 찾고 있다.
아이들 어릴적 서울대공원 동물원을 숫하게 다녔다. 주말에 와이프 쉬라고 하고, 혼자서 두녀석 끌고 간적도 꽤 있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이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을 갈때, 서울대공원 주차장을 이용하지 않는다. 대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동물원이든, 놀이공원이든 입구까지 가기위해 리프트를 타던지, 또는 코끼리 열차를 타야 한다. 비용도 비용이고, 어린 아이들 둘 데리고 움직이면, 막상 동물원 들어가기 전부터 지친다.
대공원동물원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은 바로 과천 현대 미술관 주차장이다. 대공원 입구 거대한 주차장을 그냥 지나치고, 현대미술관 이정표만 죽 따라 들어가면 서울대공원 놀이동산을 외곽으로 돌아돌아 미술관 주차장에 도착한다. 차를 대고 유모차를 끌고 나오기도 편하다. 바로 동물원 후문으로 연결된다. 리프트 승하차장 바로 앞이다. 하지만 철칙이 있다. 어중간한 시간은 안된다. 주차장이 꽉차서 다시 정문 주차장으로 힘들게 돌아나가야 한다. 동물원 문여는 이른 아침 또는 폐장 가까운 시간에 오는거다. 개인적으론, 일요일 오후 느즈막한 시간이 좋았다. 문닫기 한두시간 전 쯤. 남들은 구경다하고 집에가는데 우린 그때 룰루랄라 입장한다. 차 없는 널직한 대공원 안, 막 걷기 시작하는 아이들 풀어놓고 걸음마 연습시키기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살라 데 아타카마 이야기중에 갑자기 서울대공원 동물원 이야기로 빠졌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들어가면, 정문이든 후문이든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사육장이 바로 플라멩고, 홍학사육장이다. 하루에 몇번씩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홍학쇼가 펼쳐진다. 이국적인 모습으로 대공원 동물원에 있던 플라멩고도 꽤 이쁘다고 생각하긴 했다. 색다른 느낌을 주긴 했지만, 더운여름에는 털도 듬성듬성 빠져있고, 색도 핑크색이 많이 바랫던 그야말로 동물원 안에 있는 새의 모습이었는데…
아타카마 고산지대 플라멩고는 완전히 다른 새다. 화려한 색상이 청초하면서도 기품있다. 동물원 홍학은 날지도 못했던 새로 기억하는데, 이곳 야생 플라멩고는 글라이더 날 듯 바람타고 나르는 모습이 우아하다.
살라 데 아타카마에서 보는 석양도 달의계곡과는 또다른 감흥이 있다고 한다. 어지간 하면, 이곳에서 석양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한시간 이상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포기한다.
사막의 석양
이집트 태양신, 마야의 태양신, 잉카의 태양신... 모든 생명의 근원이 태양이다.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그 힘은 무엇보다도 절대적이다. 그 절대신이 떠나는 시간을 경배하는 것이다. 춥고 어둡고 공포스러운 긴긴밤을 살아남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열망하면서..
뷰 포인트에 벌써 사람들이 가득하다. 매일매일 똑같이 뜨고 지는 해는 그대로인데, 어디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가에 대해서 커다란 의미가 부여된다. 간이 트럭에서 엠빠나다를 팔고 있다. 엠빠나다는 칠레식 만두라고 할 수 있겠다. 굶주린 여행자들이 길게 줄을 선다. 아타카마 여행전까지는 그닥 찾아 먹던 음식은 아니었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줄서고 기다리는 사이 혹 해가 넘어가 버리진 않을까 걱정스럽지만, 엠빠나다 부터 챙겨야 한다. 부실한 점심덕에 아타카마 엠빠나다는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난 엠빠나다가 된다.
석양을 바라보는 여행객들의 표정은 장엄하다. 하룻밤 천오백불 짜리 호텔 투숙객이던, 15불 도미토리 침대 투숙객이든 모두 똑같은 풍경화를 바라본다. 아타카마 석양은 공평하게 그자리에 있는 모든 여행객들에게 평생 잊을수 없는 풍경과 감동을 남긴다.
지평선아래로 자취를 감춘다 싶더니, 빠르게 사라진다. 길고 긴 여운을 남긴채…
계곡의 전사
산페드로아타카마에서 Gyeser de Tatio간헐천 가는 길목에 노천 온천이 있다. 위치로 봐서는 간헐천 물이 흘러내려오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를 벗어나면서, 비포장 오르막길을 접어든다. 구불구불 절벽길 반대편으로 화산들이 줄지어 보인다. 문외한이 봐도, 아주 활발한 지층활동이 있었던 곳임을 알수 있다. 중간에 개울도만난다. 렌트한 소형 승용차가 우리 넷을 다 태우고 넘어가기엔 조금 걱정이 된다. 와이프와 아이들은 차에서 내려, 걸어서 개울을 건너게 한다. 이럴땐 운전자가 제일 좋다. ㅎ.
누런 지층 절단면 아래로 녹음이 길게 형성되 있다. 물길이 나있는 곳이다. 주차장에서 계곡길을 따라 걸어내려간다. 설악산 골짜기 선녀탕이 있다면, 아타카마 골짜기에는 달의계곡 여신탕이 있다. 8개 천연 온천탕이 하나씩 줄지어 모습을 드러낸다. 내리막길 코너를 도니 탈의실이 있는 제일 윗탕까지 전경이 나타난다.
단순하고 깔끔한 탈의실이 마련되어 있다. 사막 절단면 계곡속 노천탕. 탕마다 갈대숲들이 서로의 경계를 구분하고 있다. 첫번째 보이는 탕에는 여행객들이 제법 있다.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가 본다. 커다란 바위사이로 흐르는 폭포가 있고, 탕 주변으로는 풀숲이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 바로 여기야.. 기대보다 그닥 따듯하지는 않다. 아무래도 윗탕부터 물이 흘러 내려오니, 더 따뜻한 윗쪽 풀로 이동한다. 태양이 구름속에 가리니, 꽤 춥다. 수건 하나씩으로 좀을 감싸고 후다닥 옮겨간다. 조금 낳다.
모든 인간의 DNA 속에는 수만년 사라지지 않는 본성이 있다. 많은 것들은 퇴화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본능은 주변 상황에 따라 갑자기 폭발적으로 분출되기도 한다. 그중 우리집 큰 아들에게도 다른사람보다 훨씬 더 뚜렷히 드러나는 강한 본능이 있다. 바로 수렵채집의 욕망이다. 더 정확히는 수렵이다.
우리넷은 나란히 물속에 자리잡고 앉아, 조금은 무료하게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큰아들, 갑자기 호흡을 멈추고 동공이 물속 한점을 따라가는 듯 하더니... 철썩 물 튀는 소리와 함께, “오 호~ 까르륵 까까깍..” 원인류라는 호모 헌터스가 사냥에 성공 하고 부르짓던 그 승리의 주술이 바로 이런 괴음이었을 것이다. 오므린 손바닥 위에는 조그만 송사리가 한마리가 헤우적 대고 있다. 노획물을 담기위해 아빠 모자를 낙아채 간다. 플라스틱 타파를 하나 구해달란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오렌지 담았던 통이 있다. 평온하던 온천욕장이 갑자기 생기가 돌며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온천장이 사냥터로 바뀐다. 주위 모든 아이들 전사로 변한다. 사냥감을 쫒고 있다. 그 아이들을 돕기위해 은퇴한 어른 전사들이 참여한다.
계속해서 사냥에 성공하는 전사는 딱 한명. 천천히 숨죽이고 두손은 물속에서부터 먹이감 뒤를 따르다가 결정적인 순간 낙아챈 손에는 어김없이 송사리 한마리. 어릴적 브라질에서 생활할 때 부터, 우리부부는 항상 안타까워했다. 이녀석이 대충 만년전에만 태어났어도 그 탁월한 수렵능력으로 일찌감치 족장자리 꿰차고 떵떵거리고 살고 있었을텐데...
그저 본능에만 충실했던 탁월한 전사는, 동료전사에게 조건없이 모든 노획물을 넘기고 푸리티마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