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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칠레 Oct 29. 2016

푸에르토나탈레스 _ 피요르드 항해

나비막페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좁은 공간에는 여행자들로 가득하다. 제일 뒷줄에 서 있지만,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리는 작은 사무실이다. “벌써 몇시간이나 지났쟎아요. 대체 언제쯤 알 수 있는건가요?”


창구에 앉아있는 직원은 곤혹스런 표정이다. 조금 더 기다리라고 답한다. 몇일째 하릴없이 이 도시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여행자들도 많다. 모두들 목적은 똑같다. 남반구 피요르드를 항해한다. 그리고, 작은 알라스카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한다. 오늘 표를 구하지 못하면, 다음 배를 타기위해서는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마음가는대로, 발길 닫는대로 바람 부는대로... 수시로 바뀌는 일정이었지만, 여행 출발전 산티아고에서 이날자 출발예정인 “나미막페리” 표를 사서 지갑 깊숙히 보관하고 있었다.


난 굳이 창구직원과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이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얻었다. 언제 탑선할지, 언제 출발할지 아직 나온건 없다. 오늘 출발할 수 있을지, 내일로 연기 될지도 아직 모른다.

오후 4시 이전에는 아무것도 결정이 나지 않을것이라는 대화내용이다. 앞으로도 서너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오늘 출항할지 못할지 그 결정만도...


93년 초 첫 배낭여행, 호주를 여행 하며 얻은 가장 큰 교훈이다.

내 거대한 배낭은 여행내내 철천지 웬수. 꾸역꾸역 챙겨 메고 다니는 것 중 여행내 한번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절반이다. 특히 옷!!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야 한다. 이 후 어떤 여행에서도 평소 들고 다니는 쌕 보다 큰 배낭을 챙긴 적은 없다. 심지어 겨울철 유럽여행도 그냥 평소 들고 다니는 쌕 하나다. 동남아 배낭여행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당연히 한달이 넘는 이번 칠레 남부 여행도 평소 들고 다니던 작은 배낭 하나다.


매일 입는 쉐타, 파카, 신발은 늘 똑같고, 파자마 하나, 셔츠 한장, 티셔츠 두장, 팬티 두장, 양말 세컬레에 치약, 칫솔, 일회용 면도기, 사진기 그리고 론리플래닛 한권이다. 매일 똑같은 차림덕(?)에 항상 자유롭다.  짐 맡길곳을 찾느라… 웬수같은 커다란 배낭 때문에, 그저 하릴없이 죽치고 앉아서 기다리는 일은 없다.

 

거리 토산품 가게를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죽인다. 거기서 거기일 것 같은 식당 한곳을 들어가 연어 한조각과 감자튀김을 주문한다. 네시에 맞춰 나비막 사무실로 향한다.


저 멀리 여행자들이 분주하다.

'몬가 결정났구나’

나비막 사무실에서 표를 손에 쥔 여행자들이 나오고 있다. 표정이 밝다. 우리가 3박4일 항해할 페리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출항준비를 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기다린 여행자들 모두 그리 기다리던 탑승티켓을 밥는다. 대부분 여행자들이 티켓을 산티아고에서 사전에 구매한다. 산티아고 사무실 판매량과 해외에서 팔린표에 대한 집계가 전혀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객실 클라스별로 몇 장을 팔수 있는지를 현장 사무실에서 알 수 없었던 것 같다.


설마 이정도로 주먹구구는 아니겠지 생각하면서도, 창구에 앉은 직원은 다른 어떤 방법이 있을수 있는가 하는 표정으로 표를 사는 여행자에게 이야기 하고 있다. 참.... 내차례가 왔다. 두번째로 등급이 높은4인실 예매표를 내고, 방호수가 적힌 탑선표와 교환한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대략 300불 정도 지불했다.

  

출처 : navimag 페리 홈페이지

객실은 아주 작고 아담하다. 양쪽 벽으로 2층 침대가 고정되어 있고, 중간에 작은 책상과 의자가 하나 있다. 한사람 간신히 서 있을수 있는 작은 샤워부스가 있는 화장실도 있다. 비행기내 화장실과 비슷한 형태다. 노크를 하니 반응이 없다. 열쇄를 꼽고 돌린다. 우리방엔 내가 첫승객이다. 한쪽 아래편 침대맡에 배낭을 두고, 짐을 풀어 이불위에 푼다. 일단 침상을 확보한다. 조금 후 노크소리가 들린다. 룸메이트 한명이 들어온다.


객실은 남녀 구분을 두지 않는다.

난 조금도, 혹시라도, 어떤 절세 미인이 3박4일 룸메이트로 함께 지낼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 질까봐... ㅎ


아버지뻘 이상되는 백인 노인이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동시에 인사를 건넨다. 일단 인상은 마음에 든다.  

아르헨티나 바리로체에서 여름 휴가를 온 독일계 아르헨티나 아저씨다. 통성명 해보니, 예상한 대로 나이는 우리 아버지 보다 서너살 위다.  이름은 ‘로돌포’, 전형적인 독일 이름.

아침부터 나비막 사무실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표를 사기위해 기다리던 여행자들을 보고, 빈 객실없이 당연히 꽉 차는것으로 알았다.  정박된 밧줄을 풀고, 닷을 올릴때 까지 아무도 노크를 하지 않는다.

더이상 룸메이트는 없다.


로돌포 아저씨와 나 둘이서 4인실을 쓴다. 2인실은 거의 배로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저씨와 난 4인실과 2인실 가격차이 셈을 하면서 좋아한다. 절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살짝 섭섭한 마음은 또 모냐..ㅎ.   


닻을 올린후 몇 시간이 지나도 출항하지 않는다. 하루종일 기다림의 연속이다.

남반구 여름 긴긴해가 넘어가고 어둑어둑해 져서야.. 드디어 ‘빠앙 빵~’  작은 어촌마을이 떠나갈 듯 유세 하며 천천히 물살을 가르기 시작한다. 그 몇년 전 이보다 10배는 더 커다란 배를 3박4일간 경험했지만, 설레는 마음은 이번이 훨씬 더하다.


어떤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얼마나 지났을까, 대양으로 나왔는지 움직임이 심하다. 계속해서 비바람이 조그만 객실창을 때리고,  어둠 속 덩실대는 파도는 공포스럽다. 참아 보려 했지만, 얼마 못가 저녁 먹은것을 모두 토해 버린다. 배멀미라는것이 생각했던것보다 많이 괴롭다. 서너시간 쯤 고통스런 항해를 계속한다.  


해가 밝았다. 바다는 잔잔하다. 우리배는 어젯밤 출발 직후 대양으로 나갔다가 새벽녘에 좁은 해협으로 들어온것 같다. 아침식사를 하고 모두들 갑판에 나와 자리를 잡는다. 대부분 미국, 유럽 젊은이들이고, 스페인어가 제법 들리는 것을 보면, 인근 남미여행객들도 꽤 된다. 수만년전 간빙기에 형성된 피요르드 해안을 감상한다. 초등학교 지리시간에 배운 유자 협곡이 바로 눈앞에 연이어 펼쳐진다.


아무리 좋은 경치도 몇시간 보고 있으면 또 익숙해지면서 감흥이 점점 얇아지기 마련이지만… 좁은 해협을 가로지르며 나가는 페리선 갑판에서 유자 협곡과 빙하 녹은 물이 만들어내는 폭포, 그리고 수시로 배주변에서 고개를 내미는 바다사자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갑판에 있던 여행객들이 갑자기 웅성거리며 앞쪽 난간으로 나간다.

뭐지?

과연 언제 좌초된 것일까?

잭 스페로우가 버리고 간 해적선이었을지...

남으로 남으로 새로운 시장을 열기위해 가득짐을 싣고 항해하던 진취적인 상선이었을지...

꽤 녹슨 철선인것을 감안하면, 넉넉하게 잡아도150년 정도.


세상의 끝, 얼음바다에서 난파된 선원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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