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톺아보기
예술가야말로 시대의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예술가는 시대를 변화시키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시대가 변하는지, 어떻게 기존의 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는지 알기 위해서는 누가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주하며 지금과 여기를 낯설게 여기는 사람, 그렇게 오늘의 길을 천천히 걸으며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이라야 시대를 바꿀 수 있다.
고희동 작가의 <자화상>이 전통의 종언을 고하며 근대를 여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고희동 작가는 단추를 풀어 자신의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노출을 일상의 한 순간에 담아 자화상을 그렸다. 당대의 사람들에게 풀어헤친 저고리와 짧게 자른 머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그는 그림 속에서 마치 아무것도 새로울 것이 없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앉아 있다. 사상가는 변화를 사유하며 이를 언어화하고 개념화하지만, 예술가에게 변화는 그렇게 이름 지어 부르기에도 민망한 삶의 자락이기 때문이다. 텍스트가 현상을 뒤따르는 게 자명한 것처럼 사상가가 예술가를 뒤따르는 것도 당연하다.
물론 도래한 세대가 자리한 세대를 전적으로 대체하지는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을 반-근대주의가 아니라 후기-근대주의라고 말하는 것처럼 새로운 시대는 오랜 시대의 연장을 고스란히 품는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고희동이 수염을 여러 갈래로 뻗쳐 시대와 시대를 잇는 선을 상징하도록 자화상을 그렸다고 보는 건 그렇게 과한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희동의 <자화상>과 고희동의 자화상에서 영원한 과도기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삶에 대해서 가늠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