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에 내 곁에 다가오는 장마라는 너
장마가 온다.
누군가는 미리 접어둔 우산을 다시 꺼내고, 누군가는 여름 햇살을 미처 누려보지도 못한 채 빗소리에 하루를 건넌다.
늘 이맘때면 우리는 무언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쏟아지는 빗줄기만큼이나 정해진 마감들이 우리 어깨를 두드린다.
하지만 비는 참 이상한 계절의 감각이다.
걸음을 느리게 만들고, 낯선 기억을 데려오고,
무심하게 지나치던 골목의 색까지 문득 짙게 느껴지게 한다.
빗물에 번지는 거리의 불빛은 왜 항상 옛날 생각을 데려오는 걸까.
어느 여름날 젖은 운동화를 신은 채 집에 돌아가던 길,
처음 미래를 고민하며 눈을 감았던 밤,
우산을 같이 썼던 누군가의 체온처럼
지금은 없지만 확실히 존재했던 감정들이 조용히 떠오른다.
장마는 지루하다는 이름을 달고 오지만,
그 긴 우중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라난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날들이 이어져도,
그 불확실함 속에서 나의 방향을 고집스럽게 찾는다.
진로는 늘 답이 없는 문제 같다.
누가 정해주는 것도, 어디엔 정답이 적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외롭고, 그래서 더 막막하다.
그러나 어쩌면 그 불안한 길 위에 내리는 이 비도,
무언가를 잊지 않게 해주는 작은 신호일지 모른다.
‘흠뻑 젖어도 괜찮아, 이건 잠깐의 계절이니까’
비는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다독인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이 빗소리를 들으며, 오늘은 어디까지 왔는지를.
어디까지 흘러가야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만날 수 있을지를.
누군가는 진로를 정하고, 누군가는 아직 망설이고,
누군가는 그저 오늘 하루를 버티는 데에 집중한다.
모두가 제각각의 속도로 걷고 있는 비 오는 교정에서
우리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간다.
세상이 잠시 멈춘 듯 고요한 이 장마 속에서,
당장 비가 그치기를 바라기보다는
이 빗속에서도 내가 나일 수 있는 감각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비 내리는 장마를 지나, 햇살이 돌아오더라도
우리는 이 장마의 감정을 기억해야 한다.
흔들렸고, 고민했고, 그럼에도 나아가던 지금 이 순간을.
그러니 오늘만큼은
우산을 천천히 펴고,
흠뻑 젖어도 괜찮다는 듯 한 걸음씩 걸어보자.
누구보다 나에게 충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