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지쳐가고 사랑도 무뎌져 간다

어느 순간 소중한걸 하나 둘 포기하는 모습이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어

by 서령

언제부터였을까.
이유 없는 한숨이 잦아들고, 이유 없는 웃음도 사라졌다. 하루가 길다는 생각을 한 지 오래고, 대신 시간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흘러가버리는지 모르겠다는 말만 입가에 맴돈다.

예전의 나는 사소한 것에도 쉽게 기뻐했고, 누군가의 온기에 쉽게 기대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늘 곁에 있었고, 내가 사랑을 택했다기보다 사랑이 나를 찾아와 품어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군가의 온기가 버겁다. 진심 어린 말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설렘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지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지만, 나는 지금 그 지침의 끝자락에 서 있는 듯하다.
출근길에 스쳐 가는 사람들, 카페에 앉아 있는 연인들, 골목길을 뛰노는 아이들. 모두들 제각기 살아가고 있지만 어쩐지 그들 사이에서 나는 혼자 떨어져 나와 있는 기분이다. 세상은 여전히 빛나고 있는데, 내 마음만 칠흑 같다.

한때는 그런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왜 예전 같지 않을까. 나만 이런 걸까.
그러다 깨달았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무뎌져 간다는 것을. 삶의 무게에 눌리다 보면, 사랑조차도 어느새 무뎌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그래도 나는 바란다.
아주 사소한 것들에 마음이 움직이던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 첫눈이 오면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가던 나, 밤새 사랑의 말로 서로를 지탱해주던 나, 작은 기쁨에도 벅차올라 눈시울이 붉어지던 나.

지금의 나는 너무 단단해져 버렸다.
하지만 단단함은 때로 차가움이 되기도 한다. 내가 쌓아올린 이 단단함이 나를 지켜주는 동시에, 내 안의 따뜻함을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렵다.

그래서 조금씩이라도 해보고 싶다. 다시 심장이 뛰는 일들을. 다시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들을. 그것이 사랑이든, 삶이든 상관없다.
아직은 지쳤고 무뎌진 나지만, 언젠가 다시 뜨거워질 수 있기를.
이 지침마저도 언젠가 나를 더 단단히 세워줄 과정이길 바란다.

그러니 오늘은 그저 이렇게 말해본다.
괜찮다고.
조금만 더 쉬었다 가자고.
지금은 사랑도 삶도 무뎌졌지만, 언젠가 다시 뛰게 될 날이 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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