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기억들
기억은 자주 흐려진다.
처음엔 아주 선명하던 장면도,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 색이 바래고 모서리가 흐릿해진다.
그래서 문득 스치는 풍경이 더 아프게 다가오는 걸까. 어딘가에서 본 듯하지만 도무지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 장면들이, 마음을 오래 붙잡는다.
얼마 전, 낯선 동네를 걷다가 작은 골목 어귀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오래된 벽돌 담과 삐걱이는 철문, 그리고 담벼락에 걸쳐진 햇살.
그 순간 이상하게도 가슴이 저려왔다. 분명히 처음 보는 골목인데, 왠지 누군가와 함께 이 길을 걸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구였을까.
언제였을까.
정확한 얼굴도, 목소리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마음 어딘가 깊은 곳이 조용히 떨렸다.
기억은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고요히 마음만 울렸다.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해서, 가장 오래 품은 것일수록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우연히 만나는 찰나의 순간들이 그 깊은 곳을 두드린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감정, 사라졌다고 믿었던 누군가의 얼굴,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그리움이 다시 피어난다. 마치 오래 덮어두었던 책갈피를 다시 펼친 듯, 바람 한 줄기에 페이지가 저절로 넘겨지는 것처럼.
그날 나는 골목 끝에 한참을 서 있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지만, 어쩐지 누군가 곁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나를 앞서 걷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늦게 도착한 것 같기도 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 순간. 그런 시간이 있다.
돌아보면, 우리는 그런 기억 위에 서서 살아가는 것 같다.
명확하지 않아 더 아름다운, 흐릿해서 더 애틋한,
그 이름 모를 풍경들 사이에서 말이다.
언젠가 다시 그 골목을 걷게 되면, 조금은 달라진 모습으로,
혹시 그때의 그리움을 마주하게 될까.
아니면 또다시 조용히 지나쳐버릴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그 순간의 감정이 사랑이었는지, 외로움이었는지, 혹은 그저 오래된 시간에 대한 향수였는지.
다만 분명한 것은, 그날 이후로도 나는 종종 그런 골목을 찾는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곳에, 마음이 머물다 간 자국이 남아 있음을 이제는 안다.
기억은 흐려지지만,
그때의 공기, 빛, 냄새는 어쩌다 한 번씩 나를 부른다.
이름 없는 그리움이,
가끔은 삶을 더 조용히 아름답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