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에 묻힌 하루를 살펴보며

마음의 온도를 기록하는 법

by 서령

책상 위 구석에 놓인 작은 자물쇠 달린 공책.

아무도 열어보지 않은 그 속에는,

날마다 흘러간 시간들이

숨을 죽이고 웅크려 있다.

일기장은 늘 같은 자세로 나를 기다린다.

잘한 날에도, 망가진 날에도,

심지어 아무 일 없던 날에도

그냥 와서 앉으라고,

오늘의 온도를 적어보라고.

펜을 잡으면 이상하게도

낱말들이 순서를 바꿔가며 나온다.

말로 꺼내면 무겁던 마음도

종이 위에 내려앉으면

낙엽처럼 가벼워진다.

어쩌면 일기장은

미래의 나에게 쓰는 긴 편지인지도 모른다.

그때의 웃음과 울음을

묵묵히 봉인해 두었다가

언젠가 먼 날,

내가 나를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페이지를 덮는다.

조용한 종이 속에,

말하지 못한 하루가 숨 쉬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장마가 가르쳐준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