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늘어지게 되는 날

by 서령

이 글을 쓰게 된 건, 제가 지루함을 느낄 때마다 따라붙는 묘한 압박감 때문이었습니다. 괜히 시간을 허비하는 건 아닐까,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늘 따라붙었거든요. 그러다 보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흘려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두 가지 태도 모두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진 않았어요. 오히려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궁금해졌고, 그 물음이 이 글을 쓰게 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지루함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감정이에요. 우리는 흔히 지루함을 불필요하거나 반드시 피해야 하는 감정으로 여기곤 하죠. 시간이 헛되이 흘러가는 것 같고, 괜히 초조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무료함을 느끼는 순간 휴대폰을 꺼내거나, TV를 켜거나, 새로운 자극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지루함은 단순히 시간을 버리게 하는 불편한 감정이 아니라,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신호일지도 몰라요.


지루함은 대체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 찾아옵니다. 반복되는 일상, 억지로 이어가는 공부, 혹은 하고 싶은 일 대신 해야만 하는 일을 붙잡고 있을 때 우리는 쉽게 지루해집니다. 그래서 지루함은 단순히 "심심하다"는 느낌을 넘어, ‘내 삶이 잠시 멈춰 있다’는 경고처럼 다가오곤 해요. 그 감정은 어쩌면 우리를 깨우기 위한 자연스러운 장치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지루함이 꼭 부정적인 건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이끌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긴 방학 동안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놀이를 만들곤 했죠. 지루함 속에서 태어난 작은 시도가 창의성의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루함은 종종 창의성의 어머니라고 불리는데,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끌어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느껴집니다.


문제는 지루함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대부분은 그 불편함을 피하려고 스마트폰, 게임, 쇼핑, 과식 같은 즉각적인 자극으로 덮어버리려 하죠. 물론 순간은 달콤하지만, 곧 허무와 공허가 밀려옵니다. 지루함이 전하려던 진짜 메시지를 놓쳐버리는 셈입니다. 하지만 잠시 멈추어 그 감정과 함께 머물러 보면, 의외로 중요한 질문들이 떠오르곤 해요.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일까?", "이 시간을 어떻게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은 나를 더 깊이 바라보게 합니다.


결국 지루함은 우리에게 균형을 알려주는 감정이에요. 모든 순간이 즐겁고 자극적일 수는 없으니까요. 음악에 쉼표가 있어야 곡이 완성되듯, 삶에도 여백과 정적이 필요합니다. 그 공백이 있어야 다시 열정을 찾고, 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거든요. 지루함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살아있다”는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지루함은 불편하지만 결코 무가치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이자, 또 다른 가능성으로 이끌어 주는 초대장처럼 다가옵니다. 중요한 건 지루함을 억누르려 하기보다, 그 시간을 내 자신을 바라보는 기회로 바꾸는 일일 거예요. 그렇게 바라본다면 지루함은 더 이상 텅 빈 시간이 아니라, 성장과 창의성을 향해 열려 있는 문이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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