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대화

by 서령


가을은 늘 모임을 특별하게 만든다. 창문을 스치는 바람은 조금 서늘하고, 나무들은 제 몸의 색을 모두 풀어놓듯 붉고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동아리방 앞마당에 떨어진 낙엽은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에 바스락거렸고, 그 소리는 모임에 늦게 들어서는 나의 마음까지도 차분하게 다독였다.


방 안에는 이미 여러 명의 목소리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어떤 이는 과제의 무게에 눌려 투덜거렸고, 또 다른 이는 연극 연습에서 생긴 해프닝을 늘어놓으며 모두를 웃겼다. 웃음은 가을 햇살처럼 번져 나갔고, 그 옆자리에서는 누군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이 방 안에는 늘 다양한 계절이 공존했다.

나는 그 곁에 앉아 듣는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잘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지만,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평은 자주 들었다. 사실 특별한 재능은 아니었다. 그저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침묵이 흐르면 굳이 깨뜨리지 않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 앞에서 웃음을 터뜨리거나, 눈시울을 붉히며 마음을 내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그것이 참 좋았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가볍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은근한 자부심이자 기쁨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자리를 불안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듣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나도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는 건 아닐까?’


침묵이 찾아오면 괜히 두려워졌다. 그 공백을 내가 메워야 한다는 압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래서 억지 농담을 던지고, 관심 없는 이야기도 끌어내며, 때로는 나답지 않게 과장된 제스처로 웃음을 만들려 애썼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사람들은 웃었고,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단풍이 흩날리는 거리 위에서 나를 감싸는 건 이상한 공허함뿐이었다. 마치 누군가의 옷을 빌려 입은 듯, 낯설고 맞지 않는 모습 속에서 진짜 나는 점점 사라져 갔다.


그 시절 나는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왜 이토록 벅찬가를 자주 고민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말하고 웃을수록, 이상하게 더 지쳐만 갔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관계의 모습은 무엇일까?’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 동아리 모임에서 한 친구가 조용히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모두가 웅성거리며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 나는 본능처럼 그 옆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말 대신 흘러간 건 그저 조용한 침묵뿐이었지만, 친구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나직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되었다. 굳이 내가 분위기를 메우지 않아도, 사람들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충분히 이어진다는 것.


가을의 공기는 차갑지만, 그 차가움 속에 오히려 숨결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웃음을 덧칠한 자리보다, 함께 침묵을 지켜낼 수 있는 순간에 더 깊은 의미가 깃든다. 침묵은 어색함이 아니라 마음이 숨 쉴 수 있는 틈이며, 대화의 공백은 관계가 다시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이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이야기를 듣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가끔은 여전히 불안하다. ‘이렇게만 해도 괜찮을까?’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지만, 이내 스스로를 다독인다. 가을날 동아리방 창가에서 들었던 바람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로도 충분하다는 믿음을 조금씩 키워가고 있다.


앞으로 또 다른 가을이 오면,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침묵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고 그 순간 속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괜찮아. 네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서, 나도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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