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조각 나눠진 얼음

by 서령

창가에 앉아 있으면, 겨울 아침의 유리창에 얼음꽃이 피어오른다. 차갑게 굳어버린 유리 위에 번지는 서리는 마치 누군가 밤새 흰 잉크로 새겨둔 비밀의 문장 같다. 가까이 다가가면 숨결에 닿아 금세 희미해지고, 손끝을 대면 바스러지듯 사라진다. 얼음은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존재다.


컵에 담긴 얼음은 또 다르다. 여름의 오후, 땀이 송골송골 맺힌 잔 속에서 얼음은 맑은 소리를 낸다. 부딪히며 울려 퍼지는 투명한 음색은 마치 작은 종소리 같고, 혀끝에 닿는 순간 번지는 서늘함은 무더위 속에 잠시의 도피처를 허락한다. 하지만 그 청량은 길지 않다. 눈앞에서 녹아내리며, 제 형태를 버리고, 무심히 물이 되어 잔 속으로 스며든다. 짧기에 더 선명한 순간. 얼음은 그 소멸의 시간을 통해, 찰나가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밤의 술잔 속 얼음은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낮게 깔린 조명 아래서 얼음은 유리잔을 은빛으로 반짝이게 한다. 불빛이 얼음의 결을 따라 부서지고, 그 반짝임은 술과 함께 천천히 목으로 흘러들어 간다. 순간의 차가움이 지나고 나면, 몸속에는 은근한 온기가 퍼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얼음은 차가움을 통해 따뜻함을 더 선명히 느끼게 한다.


얼음은 우리의 마음과도 닮아 있다. 굳어 있을 때는 단단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결국에는 녹아내려 가장 유연한 본질로 돌아간다. 차갑게 얼어붙은 감정도 따스한 손길 앞에서는 언젠가 스르르 무너진다. 그 무너짐은 약함이 아니라,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아마 그래서 얼음을 보고 있으면 늘 시간의 얼굴이 떠오른다. 서서히 얼어붙는 과정 속에는 정적과 기다림이, 녹아내리는 순간에는 흐름과 변화가 담겨 있다. 얼음은 정지와 움직임, 단단함과 유연함, 시작과 끝을 동시에 품는다.


결국 얼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모든 것은 잠시 멈추어 선 듯 보여도, 결국 흐른다. 붙잡으려 애써도, 녹아내린다. 하지만 그 찰나의 반짝임은, 사라진 뒤에도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는다.

작가의 이전글기억 주머니